[문화N유산] 임진왜란 이후의 외교를 그리다...동래 10폭에 담긴 조선의 자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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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N유산] 임진왜란 이후의 외교를 그리다...동래 10폭에 담긴 조선의 자존

뉴스컬처 2026-01-15 15:01: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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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겨울 바닷바람이 스미는 부산 동래의 옛 풍경 위로, 조선의 국경 외교가 한 폭의 장엄한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동래부에 도착한 일본 사신 맞이’ 병풍은 전쟁의 폐허 위에 다시 짜인 외교의 질서와, 그 질서를 시각적으로 연출한 조선의 정치적 상상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림은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 국제 관계가 어떤 규칙으로 재편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시각적 선언문에 가깝다.

동래부에 도착한 일본 사신을 맞이하는 이 열 폭 병풍은, 전쟁 이후 조선과 일본이 다시 마주 서게 된 긴장과 계산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1609년 기유약조로 국교는 회복되었지만, 일본 사절은 더 이상 한양으로 올라와 국왕을 직접 알현할 수 없었고, 대신 초량왜관에서 왕의 전패를 향해 절을 올리는 방식으로 외교 의례를 치러야 했다. 이는 일본이 조선 왕권에 직접 닿을 수 없는 존재로 규정되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변화였다.

'동래부에 도착한 일본 사신 맞이'.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동래부에 도착한 일본 사신 맞이'.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병풍의 첫째 폭부터 일곱째 폭까지는 동래성에서 출발한 동래부사의 행렬이 초량왜관으로 향하는 과정을 웅장하게 보여준다. 윤산 아래 펼쳐진 성곽과 도로, 질서 정연한 관리와 군졸의 행렬은 이 만남이 국가의 위신이 걸린 공식 외교임을 강조한다. 화면의 중심에 놓인 것은 일본 사절이 아니라, 그들을 맞이하러 가는 조선의 행정과 권력이다.

여덟째 폭에서 일본 사절은 마침내 등장하지만, 그 위치는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 초량객사 뜰 아래에서 그들은 조선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향해 절을 올린다. 국왕의 실체는 화면에 없지만, 전패라는 상징물이 이 공간을 지배하며 일본 사절을 위계적으로 아래에 위치시킨다. 이는 전쟁 이후에도 조선이 외교적 우위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홉째 폭에 그려진 성신당과 빈일헌은 통역과 외교 실무가 이루어지던 공간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세밀하게 묘사된 건물들은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감정이나 우호가 아니라 언어와 문서, 절차를 통해 관리되었음을 말해준다. 전쟁의 기억이 살아 있는 시대, 외교는 곧 통제와 감시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열째 폭의 연향대청은 공식 의례 뒤에 이어지는 연회의 장면을 담고 있다. 음악과 음식,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지만, 이 또한 조선이 주최하고 일본이 초대받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환대는 있었지만 평등은 없었고, 외교는 친교가 아니라 질서의 연장이었다.

병풍의 시점은 부감법, 즉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을 취한다. 이는 관람자가 전체 공간을 한눈에 조망하도록 하여, 동래성에서 왜관, 객사, 연향대청으로 이어지는 외교의 동선을 지도처럼 읽게 만든다. 그림은 풍경이 아니라 체계이며, 조선이 설계한 외교 무대의 설계도에 가깝다.

산과 길, 건물과 지명이 화면에 촘촘히 적혀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병풍은 회화이면서 동시에 기록이며, 동래라는 국경 도시가 어떻게 외교의 현장으로 조직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동래는 남쪽 끝 변방이 아니라, 조선과 일본이 마주 서는 국제 무대였다.

'동래부에 도착한 일본 사신 맞이'.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동래부에 도착한 일본 사신 맞이'.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역사적으로 작품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일본을 어떻게 다시 관리했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시각 자료다. 문헌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의례의 흐름과 공간의 위계, 인물의 위치가 그림 속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어, 조선 후기 외교 질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문화적으로도 이 병풍은 조선 회화가 미적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기억과 권력을 담는 시각 매체였음을 증명한다. 이 그림은 아름답기보다 정확하고, 장식적이기보다 정치적이다. 외교라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색과 선, 공간 배치로 시각화된 것이다.

일본 사절이 등장하는 그림이지만,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조선의 공간과 행렬이다. 일본은 제한된 무대 안에 머물고, 조선의 건축과 지형, 행정이 화면을 장악한다. 이는 외교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없이 보여주는 시각적 전략이다.

오늘날 이 병풍은 과거 한일 관계의 한 장면을 넘어, 전쟁 이후 국가가 어떻게 상징과 의례를 통해 국제 질서를 재구성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총과 칼이 아닌 이미지와 공간, 절차가 외교를 지배하던 시대의 논리가 이 열 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래부에 도착한 일본 사신 맞이’는 결국 조선이 전쟁의 폐허 위에 다시 세운 외교의 무대다. 화해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경계의 선언이며,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조선이 스스로를 어떻게 자리매김했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자서전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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