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대한민국 헌정사는 반복해서 경고해 왔다. 권력은 언제나 자신을 과신하는 순간 가장 잔혹한 형태로 붕괴된다는 사실을. 내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구형된 장면은 단순한 형사 절차의 한 장면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일탈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최후 질문에 가깝다.
이번 사형 구형의 본질은 '처벌 수위'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 질서가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에게까지 동일하게 적용되는가에 대한 시험이다. 1996년 전두환 전 대통령 1심 사형 선고 이후 30년, 역사는 다시 한 번 '권력의 무게'를 법정 위에 올려놓았다. 다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군사 쿠데타의 시대가 아닌, 제도 민주주의 내부에서 발생한 '헌정 질서 파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더 불편하고,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12·12와 5·18은 군부의 물리력이 국가를 전복시킨 사건이었다. 그러나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은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대통령이 스스로 헌정 질서를 부정한 사건이다. 전자가 외부로부터의 폭력이었다면, 후자는 내부로부터의 자기 파괴다. 이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법적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민이 선택한 권력이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순간, 대의민주주의의 근본 전제 '선출된 권력은 헌법을 수호한다'가 무너졌다.
정치권의 반응이 엇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당의 침묵은 단순한 전략적 유보가 아니다. 그것은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보수 진영 내부에서 '정리되지 않은 과거'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탈당한 전직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공식 논평조차 내지 못하는 정당의 모습은 이 사안이 단순한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정치 세력 전체의 정체성과 직결돼 있음을 방증한다. 국민의힘이 '법원 판단 존중'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하는 것은 자기 방어이자, 동시에 자기 고백이다. 윤석열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하지만, 완전한 단절은 지지층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딜레마가 그 침묵 속에 담겨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 사안을 '헌정 수호 프레임'으로 끌어안은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문제는 이 프레임이 6·3 지방선거까지 유효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선거는 언제나 과거 심판과 미래 선택 사이에서 움직인다. 윤석열 사형 구형은 과거를 소환하는 강력한 이슈이지만, 유권자는 결국 "그래서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묻는다. 민주당에게 윤석열 재판은 양날의 검이다.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정치 공세로 읽히고, 너무 절제하면 차별화 동력을 잃는다.
핵심은 2월 19일 1심 판결이다. 만약 1심에서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선고될 경우, 지방선거 구도는 '정권 심판의 연장선'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은 방어적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고, 후보 개인의 경쟁력보다 '정당 리스크 관리'가 최대 변수가 된다. 특히 수도권과 충청권 등 중도층 밀집 지역에서 '윤석열 리스크'는 여당 후보들에게 치명적 핸디캡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형량이 다소 낮아지거나, 법원이 특검의 논리를 상당 부분 제한할 경우, 민주당의 프레임 주도력은 약화될 수 있다. 선거는 언제나 명분보다 결과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중도층의 반응이다. 사형 구형 자체보다 '권력이 어디까지 무너졌는가'에 대한 피로감, 그리고 정치가 이 사안을 어떻게 소비하는가에 대한 냉소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 재판이 정의의 회복이 아니라 정치적 소모전으로 인식되는 순간, 그 불신은 여야 모두에게 돌아간다. 이미 '정치 혐오'가 청년층과 중도층 사이에서 하나의 정서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이번 재판마저 진영 논리로 환원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더 깊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다. 그렇기에 이번 사형 구형은 '집행'을 전제로 한 처벌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선언문에 가깝다. 대통령이라도 헌법을 무너뜨리면 가장 무거운 이름의 책임을 묻겠다는 선언. 문제는 선언 이후다. 그 책임을 제도 개혁과 정치 문화의 진화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이번 사건은 또 하나의 '비극적 이력'으로 남을 뿐이다. 전두환·노태우 재판 이후에도 권력형 비리와 헌정 파괴는 반복됐다. 처벌만으로는 역사가 바뀌지 않는다는 증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법적 운명은 법원이 결정한다. 그러나 그 파장은 정치가 감당해야 한다. 2월 19일 1심 판결은 하나의 결론이 아니라, 6월 3일 지방선거로 이어지는 긴 정치적 연쇄의 출발점이다. 사형 구형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 사건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복원으로 기록될지, 또 하나의 소모적 내전으로 남을지는 정치의 태도에 달려 있다. 역사는 심판하지만, 그 심판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현재를 사는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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