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 대한 징계심의 과정에서 형법상 ‘일반이적’에 해당하는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형사재판 결과가 확정되기 전이지만, 군 내부 징계 절차를 통해 해당 행위가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실질적으로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군 당국이 전직 방첩사령관의 이적 혐의를 공식 문서로 인정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 뉴스1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실을 통해 확보된 징계의결서에 따르면 국방부 군인징계위원회는 여 전 사령관이 2024년 이른바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주도적으로 기획·관여했다고 결론 내렸다. 징계위는 해당 작전이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유도해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추진됐다고 판단했다.
징계의결서에는 여 전 사령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공모해 작전을 논의하고 계획한 정황이 적시됐다. 정전 상태에 놓인 북한을 자극해 무력 충돌 또는 이에 준하는 도발을 끌어내려 했다는 것이 징계위의 판단이다. 군사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키는 행위가 결과적으로 적국에 이익을 제공하고 아군의 안전을 위협했다고 봤다.
작전의 핵심은 심리전이었다. 북한 최고지도부의 체면을 손상할 수 있는 내용의 대북전단을 제작해 무인기를 통해 평양을 포함한 북한 주요 지역에 살포하는 방식이었다. 징계위는 이 전단 살포가 단순한 대응 조치가 아니라 정치·군사적 목적을 띤 계획적 작전이었다고 적시했다.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분이 제시됐지만, 실제로는 이를 넘어선 독자적 군사행동이었다는 판단이다.
북한이 평양에서 한국군에서 운용하는 드론과 동일 기종의 무인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지난 2024년 10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국군부깡패들의 중대주권침해도발사건이 결정적 물증의 확보와 그에 대한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 명백히 확증되였다"고 발표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작전 지시는 김명수 당시 합참의장과 이승오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을 거쳐 드론사령부로 전달됐다. 이후 드론사 예하 제101·103·105드론대대가 투입됐다. 이들 부대는 백령도, 경기 연천, 강원 속초 등 서부·중부·동부전선 최전방에 배치된 부대다. 작전에 참여한 장병은 총 59명으로 파악됐다.
징계위 조사 결과 무인기 침투는 2024년 10월 3일 새벽 2시 백령도에서 무인기 2대를 출동시킨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19일까지 총 11차례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투입된 무인기는 모두 18대로, 평양을 비롯해 원산, 개성, 남포 등 북한 주요 지역 상공에 진입한 것으로 적시됐다.
문제는 이 작전이 극소수 지휘계통 인원에게만 공유된 채 진행됐다는 점이다. 전방부대는 물론 미군과 유엔군사령부에도 사전 통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징계위는 이로 인해 북한이 즉각적인 국지 도발에 나설 경우 우리 군이 적시에 대응하지 못할 위험이 컸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작전 사실을 모른 전방부대는 우발 상황 발생 시 대응 계획을 수립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 마을 인공기. 자료사진. / 뉴스1
김명수 합참의장은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이 없었던 2024년 10월 24일부터 11월 17일 사이에도 무인기 출동 지시가 이어지자, 해당 작전의 성격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오물풍선 대응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추가 작전 실행을 거부했다는 내용도 징계의결서에 포함됐다.
징계위는 “해당 작전은 북한의 국지 화력 도발이나 보복 공격으로 이어질 경우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정상적인 작전 공유 절차를 벗어나 비밀리에 진행돼 군의 대비 태세를 오히려 약화시켰다”고 명시했다.
이 무인기 침투 사건은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연례보고서에 정전협정 위반 사례로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 차원에서 한국군의 군사행동이 문제 사례로 기록됐다는 점도 징계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료사진. / 평양 노동신문=뉴스1
국방부는 여 전 사령관의 스마트폰 메모, 피의자신문조서, 방첩사 주요 지휘관들에 대한 군 검찰 조사 결과, 특검 공소장 등을 종합해 일반이적을 포함한 중대 비위 혐의를 인정했다. 이를 근거로 국방부는 지난달 29일 여 전 사령관을 파면했다.
징계위는 형사재판과 징계 절차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징계의결서에는 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공소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충분할 경우 징계가 가능하다는 판단 논리가 담겼다. 군 기강과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선제적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취지다.
여 전 사령관과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은 모두 충암고 동문으로, 현재 내란특검에 의해 일반이적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향후 형사재판에서 군 징계위 판단과 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교차할지에 따라 파장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군 내부 판단이 법적 판단과 상당 부분 일치할 경우, 문민 통제와 군 지휘체계 전반을 둘러싼 논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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