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하의 알고리듬] 리메이크는 '실패'라는 공식 깬 '만약에 우리'···이 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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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하의 알고리듬] 리메이크는 '실패'라는 공식 깬 '만약에 우리'···이 점이 달랐다

여성경제신문 2026-01-15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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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우리가 반지하방으로 이사 안 갔으면 우리 안 헤어졌을까?" 
"만약에 네가 나 끝까지 기다려줬으면?" 
"만약에 내가 그날 지하철 탔으면, 타서 잡았으면?"
-영화 <만약에 우리> 대사 中-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 /네이버영화 캡처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 /네이버영화 캡처

누구나 한 번쯤은 한때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놓치고 후회한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 앞에서 '만약'을 되뇐다.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멀티 엔딩 게임의 무한한 루프처럼 지나쳤던 선택을 하나씩 바꿔보며 기억을 되감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낸 영화 <만약에 우리> 가 개봉 2주 차 만에 관객 115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할리우드 대작 <아바타: 불과 재> 를 제치고 관람객 평점도 9점 초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영화는 2018년 중국에서 개봉한 <먼 훗날 우리> 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이다. 원작은 개봉 당시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누적 13억 위안대 흥행을 올렸고 이후 한국에서도 넷플릭스 등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공개돼 호평받았다.

흥행작의 리메이크는 대체로 불리하다. 서사와 감정의 결이 이미 관객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멜로 장르에서는 음악이나 시간 구조처럼 인상적인 장치를 다시 꺼내 들수록 '재해석'이 아닌 '요약본'처럼 보이기 쉽다. 

대만 원작을 리메이크한 <말할 수 없는 비밀> 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원작의 상징적 장치가 지나치게 잘 알려진 상태에서 새로움을 제시하지 못했고 지나친 원작 충실은 오히려 시대적·문화적 간극을 부각했다. 번역기를 거친 어색한 문장처럼 감정 전달 과정에서 불필요한 이질감을 남겼다.

<만약에 우리> 가 리메이크 작품으로서 호평받는 이유는 이 공식에서 벗어난 선택에 있다. 작품은 원작을 재현하거나 이를 넘어서기 위한 경쟁에 나서기보다 서사와 감정 밀도, 시대성이 이미 완결돼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변주하는 방식을 택했다.

먼 훗날 우리에서 리젠칭과 펑샤오샤오가 함께 동거했던 쪽방 사진 /바이두 캡처
먼 훗날 우리에서 리젠칭과 펑샤오샤오가 함께 동거했던 쪽방 사진 /바이두 캡처

원작 <먼 훗날 우리> 는 중국의 2007년경 개혁·성장기 이후 치열한 경쟁 속 대도시에 정착해 가는 과정을 배경으로 한다. 지방 출신 청년들은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로 이동해 안정된 직장과 주거 없이 삶을 이어간다. 집값 급등과 일자리 부족 속 일용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수도권 대학 출신이 아닌 청년들이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남자 주인공 리젠칭은 게임 개발자로서의 성공을 목표로 하고 여자 주인공 펑샤오샤오는 사랑과 무관하게 베이징 출신의 학벌과 직업을 갖춘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꾼다. 매년 춘절마다 고향으로 내려가면 그저 부모 일을 도우며 결혼해 아이를 낳고 평탄한 삶을 살길 희망하는 고지식한 부모와 마주하고 대도시에서는 원룸보다 작은 쪽방살이를 버텨야 한다. 

개인의 욕망과 가족과의 이해관계 충돌, 돈 없는 현실에 쪼들리며 삶의 무게가 선명해진다. 처음 상경해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은 이러한 과정 속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사랑의 방식도 현실적이다. 가난하지만 함께 성장해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기존 멜로와 달리 작품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 과연 서로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당시 도시 청년들이 공유하던 감정이 과장 없이 드러난다.

두 영화에서 소파는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끝내 미래를 함께하지 못한 선택을 상징하는 핵심 장치로 인용됐다. /네이버영화, 바이두 캡처
두 영화에서 소파는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끝내 미래를 함께하지 못한 선택을 상징하는 핵심 장치로 인용됐다. /네이버영화, 바이두 캡처

<만약에 우리> 는 비행기에서의 재회, 흑백 화면 구조, 게임 서사, 버려진 소파 등 원작의 주요 장치를 유지하되 이야기를 한국의 2008년대로 옮겨 인물 관계와 감정의 흐름에 초점을 맞췄다. 

싸이월드와 폴더폰, 고시원 생활, 등록금과 생계 문제로 꿈꾸던 건축학과 대신 장학금이 나오는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해야 했던 현실은 세대를 관통하는 공감을 불러낸다. 원작이 중국 대도시 청년의 '첫 좌절기'를 그렸다면 영화는 좌절이 이미 일상화된 이후의 청년 세대를 담아냈다.

부모의 태도 역시 한국 정서에 맞춰 조정됐다. 부모가 마련한 온실을 벗어나 대도시의 경쟁과 불안 속으로 뛰어드는 자식의 선택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원작과 달리 영화 속 부모는 지방보다 도시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자식의 결정을 응원한다. 게임 개발이라는 꿈 또한 부정의 대상이 아닌 감내와 지지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기존 리메이크 실패작에서 종종 지적됐던 '원작 정서를 한국 멜로 문법에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과는 결이 다르다. 영화는 원작 팬을 향해 "내가 만든 게 더 낫다"고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 결과 영화는 원작을 본 관객과 처음 접하는 관객 모두 감정선에 무리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균형을 만들어냈다. 흥행 성적과 무관하게 영화는 '리메이크는 위험하다'는 통념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함을 보여줬다. 이를 정답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이후의 리메이크를 평가할 때 참고할 만한 좌표를 남겼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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