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미니멀리즘이 설계한 치명적 덫
불타는 상자에 갇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23년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텔슬라의 모델 3 화재 사고의 생존자 케빈 클라우스의 증언은 전기차 혁신의 이면에 가려진 공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고 당시 차량의 모든 전력이 차단됐고, 도어 개폐 버튼은 침묵했다. 케빈 클라우스는 수동 해제 레버의 위치를 몰랐고, 결국 발로 문을 차서 부수고 나서야 화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최근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청원을 제기하며 테슬라가 비상시 직관적으로 찾을 수 없는 곳에 문을 여는 장치를 숨겨뒀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공포는 단순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 통계적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테슬라 차량 충돌 후 발생한 화재 사고에서 문이 열리지 않아 탑승자나 구조대가 진출입에 실패하며 사망한 사례가 최소 15명에 달했다. 특히 충격적인 점은 이들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2024년 11월 이후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테슬라의 보급 대수가 늘어남에 따라 설계의 잠재적 위험이 현실의 인명 피해로 치환되는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니멀리즘의 역설: 일론 머스크가 삭제한 안전의 마지노선
테슬라의 도어 시스템은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주창한 미니멀리즘 철학의 결정체다. 그는 엔지니어들에게 가장 좋은 부품은 부품이 없는 것이다(The best part is no part)라고 강조하며 차량의 모든 기능을 소프트웨어와 전자기기로 통합할 것을 주문했다. 테슬라의 전직 직원들은 모델 3 개발 당시 전자식 문 열림 장치가 전력 차단 시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를 일론 머스크에게 보고했으나, 그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공기역학적 효율성을 이유로 이를 묵살했다. 결과적으로 테슬라의 도어는 12V 저전압 배터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됐다. 사고 충격으로 이 배터리가 손상되거나 배선이 단락되면, 차량 내부의 탑승자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공간에 갇히게 된다.
법정에서도 테슬라의 이러한 설계 철학은 날 선 공방의 중심에 섰다.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위스콘신주 모델 S 사고의 유족 측 변호인은 소장에서 테슬라의 설계 선택은 충돌에서 살아남은 탑승자가 불타는 차량 안에 갇히게 될 매우 예견 가능한 위험을 창출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테슬라가 리튬이온 배터리 팩의 화재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탈출과 구조를 가능케 하는 설계를 도외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테슬라 측은 자사 차량이 연방 자동차 안전 기준(FMVSS)을 준수하고 있으며, 수동 해제 장치가 장착되어 있기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수동 해제 장치의 실효성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모델 3와 모델 Y의 앞좌석에는 윈도우 스위치 근처에 작은 레버가 있어 비교적 찾기 쉽지만, 뒷좌석의 사정은 판이하다. 모델 Y의 뒷좌석 승객이 문을 수동으로 열려면 도어 포켓 바닥의 매트를 걷어내고, 빨간색 탭을 눌러 플라스틱 커버를 제거한 뒤 내부의 케이블을 당겨야 한다. 연기가 자욱하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화재 현장에서 어린이 혹은 노약자가 이러한 다단계 절차를 수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캘리포니아주 사이버트럭 사고로 딸을 잃은 칼 츠카하라는 이 회사의 가치는 1조 달러(약 1,300조 원)가 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면에서 안전하지 않은 기계를 출시할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그의 딸 크리스타 츠카하라의 변호인은 그녀를 위해 차량 설계는 실패했다며 탈출할 수 있는 작동 가능한 수동 조작 장치나 비상 해제 장치가 없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죽음의 탈출 게임: 설계 결함과 규제의 사각지대
테슬라의 설계 방식은 현대자동차나 기아, BMW 등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현대차의 아이오닉 5와 기아 EV6는 테슬라와 유사한 플러시 핸들 디자인을 채택하면서도 기계적 안정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 차량은 전력이 차단된 상태에서도 내부 핸들을 당기면 기계적으로 문이 열리는 직관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외부 진입 역시 핸들 앞부분을 누르면 물리 키를 삽입할 수 있는 구멍이 나타나도록 설계해 구조대의 접근성을 확보했다.
BMW의 iX 모델 역시 전자식 버튼을 사용하지만, 버튼 바로 아래에 시각적으로 구분되는 수동 레버를 배치해 이중 안전 장치를 마련했다. 사고로 에어백이 전개될 경우 도어 잠금이 자동으로 해제되는 시스템 역시 타 제조사들은 더욱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테슬라가 부품 수 절감을 통한 비용 최적화와 심미적 만족을 위해 안전의 기본인 중복성(Redundant) 설계를 희생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479.01달러(약 62만 원) 선에서 거래되는 테슬라의 주가 변동성 뒤에는 이러한 혁신의 명암이 자리 잡고 있다.
규제 당국의 움직임도 가팔라지고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내 결함조사국(ODI)은 2022년형 모델 3 약 17만 9,071대를 대상으로 기계식 문 열림 장치의 결함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당국은 비상 상황에서 탈출 장치가 눈에 띄지 않고, 라벨이 없으며, 직관적으로 찾을 수 없다는 민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국토교통부 역시 미국의 조사 결과와 국내 접수된 결함 신고를 바탕으로 기술 분석을 검토 중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지난 10월 안성시에서 발생한 테슬라 화재 사고 당시 운전자가 뒷좌석에서 문을 열지 못해 사망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전방위적 압박에 테슬라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의 수석 디자이너 프란츠 폰 홀츠하우젠은 최근 인터뷰에서 전자식과 기계식 해제 기능을 하나의 버튼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도어 핸들 설계를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테슬라는 사고 감지 시 전력이 끊기기 전 도어 잠금을 자동으로 해제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도입하고 새로운 안전 페이지를 개설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미 도로 위에 깔린 수백만 대의 기존 차량에 대한 근본적인 리콜이나 설계 수정 없이는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전기차 시대의 진정한 혁신은 얼마나 먼 거리를 주행하느냐가 아니라,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탑승자의 생명을 얼마나 직관적으로 보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고집해온 미니멀리즘이 인간의 생존권보다 우위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15명의 희생자가 남긴 기록이 증명하고 있다. 자동차가 단순한 정보기술 기기를 넘어 인간의 생명을 담보하는 이동 수단이라는 본질을 망각할 때, 그 첨단 기술은 언제든 치명적인 덫으로 돌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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