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숫자, 50억원의 은유
2021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대장동 개발 특혜 사건은 단순한 지역 부동산 비리를 넘어 한국 권력 시스템의 취약 지대를 드러내는 축약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사건의 핵심에는 고위 법조인, 정치인, 금융권 인사들의 이름이 섞인 수상한 명단, 이른바 ‘50억 클럽’이 존재했다. 이 이름은 누군가에게는 농담처럼 시작되었으나, 곧 권력과 부패가 어떻게 제도적 보호막을 치고 법망을 피해 나갔는지 보여주는 노골적인 은유로 작동했다. 50억원이라는 숫자는 사법부가 단죄하지 못한 권력 유착의 금액을 상징했으며, 이 사건의 본질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한국 사회 근간을 침식시킨 ‘시스템의 침묵’에 있었다.
구조화된 특혜의 설계: '7시간의 거래'와 천문학적 수익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은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라는 미명 아래 시작했지만, 실상은 김만배(60) 등 민간 사업자에게 막대한 이익이 몰리도록 구조적으로 설계되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화천대유자산관리라는 신생 기업은 5천만원의 초기 자본금만으로 4천억원이 넘는 이익을 독점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공공을 가장한 사유화 모델'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간이 초기 투자금 대비 수천 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리는 이 구조를 설계한 이들은 재무, 법조, 정치, 금융권의 엘리트들이었다.
이런 천문학적 이익 독점의 핵심 메커니즘은 ‘초과이익 환수 조항’의 의도적 삭제였다. 성남도시개발공사 측이 공영 개발을 명분으로 내세웠음에도, 민간 사업자의 초과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장치인 해당 조항이 결정적으로 삭제되었다. 이 과정의 비정상성은 성남도시개발공사 실무자의 법정 증언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한 실무자는 2013년 12월 사업 추진 초기에 특혜 소지가 많다고 생각했으며, 초과이익 환수 문건을 오전 10시에 올렸지만, "오후 5시에 지시를 받고 환수를 뺐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이른바 '7시간 만에 사라진' 조항은 의도적인 고위층의 개입과 비정상적인 의사결정 경로가 특혜 구조를 완성했음을 명확히 시사했다.
초과이익 환수 조항의 의도적 삭제는 권력형 로비를 위한 재원, 즉 4천억원 이상의 초과 수익을 합법적인 개발 이익의 형태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제도적 실패가 직접적으로 화이트칼라 범죄의 원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인물은 사건 초기 대장동 개발사업을 "민간개발 특혜사업을 막고 5,503억원을 시민 이익으로 환수한 모범적 공익사업"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논란이 커지자, 초과이익 환수 조항의 삭제 문제에 대해 10월 9일에는 "초과이익 환수조항 논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10월 18일 국정감사에서는 "초과이익 조항을 삭제한 게 아니고 추가하자고 하는 일선 직원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게 팩트"라며 발언을 번복했다. 이러한 최고 결정권자의 태도 번복은 고위층이 환수 장치 삭제 사실을 인지했고, 이를 묵인 혹은 지시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 구분 | 민간사업자 (화천대유 등) | 공공 (성남도시개발공사) | 주요 쟁점 |
| 초기 자본금 (투자 기준) | ₩5천만원 | 약 ₩50억원 | 민간에게만 ‘초과 이익’ 몰아주기 |
| 확정 배당 이익 | 약 ₩4천억 원 이상 | ₩1,822억 원 (고정) | 공공의 수익이 사전에 상한선이 설정된 구조 |
| 초과 이익 환수 여부 | 환수 조항 삭제됨 | 공공 손실 규모 발생 가능성 | 7시간 만에 사라진 '불로소득 차단 장치' 3 |
권력 카르텔의 그물망: '50억 클럽'의 연루 경위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인사들은 한국 사회의 핵심 권한을 가진 엘리트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에게 약정된 금액은 단순한 뇌물이 아니라 사업의 안정적인 성공을 위한 '권력형 보험'의 성격을 가졌다. 이들은 각자의 핵심 권한을 이용해 대장동 사업의 '개발 리스크'를 '권력 리스크'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곽상도(65) 전 의원은 컨소시엄 이탈 방지 로비를 수행한 혐의를 받았다.
김만배의 화천대유가 참여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하나은행이 이탈하려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곽상도 전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해 이를 막아준 대가로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세후 25억원)을 수수했다는 혐의가 핵심이었다. 검찰은 곽상도 전 의원이 이 컨소시엄이 와해하지 않게 도움을 준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판단했으며, 이 역할이 사업 안정성에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박영수(73) 전 특별검사는 금융 조달 안정화 로비 의혹을 받았다. 그는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핵심인 우리은행으로부터 대출용 여신의향서 발급을 받는 과정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50억원을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또한 김만배가 대주주인 화천대유에 그의 딸이 고용되었고 11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도 포함되었다.
권순일(66) 전 대법관의 연루는 사법적 리스크 관리 의혹을 낳았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직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을 이끌 때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퇴임 직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되어 월 1,500만원, 연봉 2억원 수준의 자문료를 받았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공개적으로 "판결과 관련된 사후 수뢰죄로 의심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대장동 사업 관련 자문은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 화천대유 대표 이성문은 인터뷰에서 권순일 전 대법관이 "일 열심히 한 건 우리 직원들도 잘 안다"며 "대장지구 북측 송전탑 지화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신 것"이라고 밝혀 진술이 엇갈렸다.
사법의 장벽: '대가성 입증'의 딜레마와 1심의 역설
검찰은 정영학 녹취록 등 인적 증거를 기반으로 권력자들의 대가성 약속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사법부는 뇌물죄의 엄격한 법리 해석을 통해 핵심 혐의에 대해 연이어 무죄 또는 무혐의를 선고하는 결과를 낳았다.
곽상도 전 의원의 1심 판결에서 법원은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곽상도 부자가 경제적 공동체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주된 이유로 제시했다. 법원은 아들에게 지급된 50억원을 아버지에게 직접 전달된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 판결 논리가 "사회통념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항소했으며, 곽상도 전 의원 부자의 금전 지원 및 자금 관리 현황을 보면 경제적 공동체를 부인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법원이 하나은행 컨소시엄 이탈 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 것 역시 증거 관계 판단 오류라고 주장했다.
박영수 전 특검 역시 대장동 50억 클럽 관련 핵심 혐의에서 벗어났다. 그는 남욱 변호사로부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자금 명목으로 3억원을 수수한 혐의 등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되어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으나 , '우리은행 여신의향서 발급 도움 대가 50억원 약정'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50억 약정 혐의나 딸을 통한 11억원 수수 혐의 모두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50억 약속에 대해서는 정확히 200억원을 약속받았다고 보기 어려우며, 액수 미상의 이익을 제공받기로 한 사실은 인정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사법부가 직접적인 현금 전달이 아닌 ‘약속된 금품’이나 ‘가족을 통한 대가’에 대해 대가성 입증의 문턱을 극도로 높게 설정하는 모습은 대규모 권력형 비리가 법적 처벌을 회피하는 데 유리한 선례를 남겼다.
약속과 침묵의 거래: 녹취록 증거 능력 논란
사건의 스모킹 건이었던 정영학(52) 회계사의 1,300쪽이 넘는 녹취록 은 법정에서 그 증거 능력을 두고 첨예한 논쟁을 낳았다. 검찰은 녹취록에 50억 클럽의 존재와 약속 내용이 담겨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공소사실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곽상도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녹취록 중 일부 내용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된 '전문(轉聞)진술'이라며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김만배 씨가 법정에서 당사자들끼리의 대화라고 인정한 부분까지 전문으로 간주한 것은 판단 오류라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이처럼 법원이 녹취록의 증거 능력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면서, 돈을 주거나 받은 것이 아닌 단지 "주기로 했다"는 약속만으로 뇌물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기존 판례에도 불구하고 법적 처벌이 어렵게 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녹취록에 대한 정치적 공방 역시 계속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녹취록 내용 중 위례신도시 개발 관련 대화였음에도 검찰이 이를 '윗선 지시'로 왜곡하여 특정 정치인을 겨냥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검찰 수사의 정치적 의도를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녹취록의 신빙성이 깨지면 수사는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최근 대장동 1심 재판에서 정영학의 녹음 파일이 원본과 동일성이 인정된다며 조작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대장동 사건은 권력형 비리가 발생했을 때, 수사 당국이 핵심 증거의 유효성을 두고 정치적 공세와 법리적 난관에 동시에 직면하는 한국 사법 시스템의 이중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줬다.
제도화된 불공정: 구조 개혁의 좌절과 정치적 방어
대장동 사태는 개인의 부패가 아닌 '제도화된 불공정'이 한국 사회의 경제적 공정성을 어떻게 침식했는지 보여줬다. 또 부동산 불로소득이 권력자의 '보은성 금전'으로 전달되는 구조는 한국 자본주의의 취약 지대를 드러냈다.
이 사건은 재산 형성, 고문료 지급, 선거판결, 정책 로비, 심지어 수사조차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대장동 사태를 조국 사태에 이은 또 하나의 '불공정' 문제로 규정하며, 국민이 느끼는 분노와 박탈감에 정치권이 진지하게 공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지방 공기업법 개정 및 보완을 통해 공공 개발이 민간의 수익 장치로 전락하는 구조를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움직임은 정치적 방어 시스템에 의해 좌절되었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불참속에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을 포함한 '쌍특검법'을 2023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표결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2024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고 20, 국회 재표결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최종 부결됐다.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은 재석 281명 중 찬성 177표, 반대 104표로 부결된 것이다. 이는 사법 시스템이 개인을 단죄하는 데 실패한 후, 정치 시스템마저 특검을 통한 외부 조사 시도를 거부함으로써 권력형 부패의 진상 규명을 막는 '권력 카르텔의 방어 기제'가 작동했음을 입증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법은 곽상도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박영수 전 특검의 핵심 혐의를 기각했으며, 정치권은 특검을 통해 사건의 뿌리를 파헤치는 시도를 좌절시켰다. 이러한 사법적, 정치적 경로 모두에서 단죄를 피해 나간 '50억 클럽'은 한국 사회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인 질문을 남겼다. 개발 이익 독점 구조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그 부로 사법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을 매수하거나 무력화시키는 '제도화된 불공정'의 메커니즘이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대장동 50억 클럽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취약 지점을 끊임없이 되묻는 질문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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