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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부장판사가 나오길 기다렸던 김 전 교수는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1.5m 거리에서 석궁 장전 후 2심 기각 이유를 따졌다. 이 과정에서 석궁이 발사돼 박 부장판사의 복부에 꽂혔다.
당시 박 부장판사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아파트 경비원과 박 부장판사의 운전기사가 달려와서 김 전 교수를 제압했다. 박 부장판사는 옷을 갈아입은 후 119 구조대의 구급차를 타고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박 부장판사는 좌복부에 깊이 1.5~1.8㎝, 직경 1㎝ 상해를 입었으나 다행히 장기를 다치지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겨울이라 그가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던 덕분이었다.
당시 병원 관계자는 “화살이 다행히 복강을 뚫지 않아 장기 손상은 없었으며 환자의 의식 상태도 또렷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교수는 체포 과정에서 “국민의 이름으로 썩은 판사를 심판하려 했다”며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경찰서에서도 “합법적으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는데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직접 따지러 갔다. 바라는 것은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 사법부가 얼마나 썩었는지…”라며 법원 판결에 불신과 불만을 드러냈다.
앞서 김 전 교수는 1991년 3월1일 성균관대 이과대학 수학과 조교수에 3년 임기로 임용돼 근무하다 1993년 3월1일 재임용됐다.
그러다 1995년 1월 대학별 고사 수학 출제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같은 해 부교수 승진대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10월 교수 승진에서 탈락했다.
이에 김 전 교수는 “대학 및 교육부 인사관리지침 상 승진임용요건을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측이 부당한 평가를 해 승진에서 탈락시켰다”며 부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996년 결국 재임용 탈락이 확정됐고 이듬해 항소와 상고도 기각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27부(부장판사 장준철)는 “대학 총장이 조교수로 임용된 자를 부교수로 승진 임용하는 행위는 단순한 승진발령 행위가 아니라, 부교수인 교원을 새로 임용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신분관계를 설정하는 행위”라며 “이같은 승진 임용 행위가 있었던 때라야 비로소 피임용자에게 부교수의 지위가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서성 대법관)도 “임용기간이 만료된 자를 다시 임용할 지 여부는 결국 임용권자의 판단에 따른 재량행위에 속한다”며 “임용권자에게 해당 교원을 승진임용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김 전 교수의 지루한 법정 다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2005년 교수직위확인 소송을 또 다시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3부(부장판사 이혁우)는 “재임용 거부 결정이 위법한 것이거나, 피고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서 무효임을 전제로 한 김 전 교수의 사건 청구는 모두 이유가 없다”며 대학 측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민사2부(부장판사 박홍우)와 대법원 2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도 “김 전 교수의 청구는 모두 이유가 없어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1심과 2심의 판단과 맥을 같이 했다.
이 과정에서 2007년 1월12일 박 부장판사의 항소심 판결이 나온 뒤 사흘만인 같은 달 15일 이른바 ‘석궁 테러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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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에 따르면 김 전 교수는 2006년 11월10일 40만원을 주고 구입한 석궁과 화살로 1주일에 1회 정도 수십발씩 쏘는 연습을 했다.
또 다음 달 28일부터 이듬해 1월11일까지 박 판사의 거주지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 모 아파트를 7번 찾아가는 등 범행현장을 사전답사했다. 8만원을 주고 구입한 회칼 1개도 석궁가방에 넣어다녔다.
이에 김 전 교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집단·흉기 등 상해),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위반, 명예훼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형사 재판으로 넘겨진 뒤 1심을 담당했던 서울동부지법 형사1단독 김용호 판사는 2007년 10월15일 “법치주의의 최후 수호자인 사법부가 재판 결과에 따라 불법적인 위해를 당할 가능성을 현격하게 증대시킨 중대한 범죄”라며 김 전 교수에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석궁 테러 의혹에 대해선 “김 전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판사들에 대해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인체에 치명적인 상해를 가할 수 있는 흉기인 석궁을 미리 구입해 연습까지 한 다음 재판장의 자택을 찾아가 귀가하던 판사를 석궁으로 쐈다”고 혐의를 인정했다.
화살이 복부 근육층까지 침투해 전치 3주의 부상 등을 입혔고 고의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범행에 사용된 화살 1발’이 제출되지 않았던 점을 들어 증거능력을 인정해선 안된다는 김 전 교수 측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후 2007년 11월부터 2008년 3월까지 항소심 공판이 5차례에 걸쳐 열리는 등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뤄졌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동부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신태길)와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가 각각 원심의 판단을 인정, 김 전 교수는 4년간 복역을 해야 했다.
해당 사건은 이후 2009년 출판된 소설 ‘부러진 화살’과 동명의 영화 ‘부러진 화살’로 재조명됐다.
다만 영화의 경우 극적 연출을 위해 실제 상황을 왜곡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타락한 사법부 때문에 김 전 교수가 누명을 썼다”는 인식을 준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영화는 영화로 보라”며 “100% 사실이라는 둥, 90% 사실에 10%를 섞었다는 둥, 영화를 사실로 보라는 둥, 이따위 얘기는 믿지 말라. 허구를 동원해 대한민국 사법부를 비판한 영화”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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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만기 출소한 김 전 교수는 이듬해인 2012년 ‘판사, 니들이 뭔데?’란 책을 출간했다. 그는 책을 쓴 목적에 대해 “대한민국 판사, 검사, 헌법재판관들이 어떻게 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지를 알리고 재판권의 주인인 국민이 반드시 재판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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