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내란 특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내란우두머리 혐의’ 결심공판에서 특검은 “헌정 수호를 위한 단죄”를 전면에 세웠고, 윤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몇 시간의 계엄, 총알 없는 빈총”을 꺼내 들며 ‘내란 프레임’ 자체를 부정했다. 청와대는 “법과 원칙·국민 눈높이”를 말했지만, 문장은 짧았고 의미는 길었다. 야당은 “사필귀정”을 외쳤고, 여당은 말을 아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문법을 드러냈다.
이 장면은 특검이 구형한 형량만이 아니라 각 주체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세우는 정치적 문법의 충돌을 한 화면에 묶었다. 최종 단죄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이미 공개된 언어만으로도 각 주체가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는지 읽힌다.
특검의 문법, 헌법을 주어로
특검 논고문의 핵심 키워드는 ‘헌법’이다.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무(헌법 66·69조)를 먼저 세운 뒤, 12·3 비상계엄을 “입법·사법 찬탈, 국회 무력화, 선관위 기능 침해, 정치인 체포 시도, 언론 봉쇄 시도”로 묶어 ‘헌정질서 파괴’의 서사로 재구성했다. 다툼의 중심을 피고인 윤석열이 주장하는 “몇 시간”이 아니라 헌법을 위반했는가로 이동한다.
특검은 내란에 국가보안법의 어휘인 ‘반국가활동’을 덧씌운다. 이는 형사법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언어다. ‘반국가세력’이라는 윤석열 측의 단어를 역으로 뒤집어, ‘반국가’의 실체를 국회·선관위·언론을 겨냥한 무력 행위로 지정한다. 즉 “무엇이 반국가행위인가”로 되받아친다.
또 하나의 장치는 ‘역사’다. 1980년의 기억을 호출해, 이번 사건을 ‘44년 만의 헌정 파괴 재현’으로 배치한다. 특검은 여기서 단죄의 강도를 한 단계 올린다. 전두환·노태우 단죄가 있었음에도 친위 쿠데타의 재발 위험이 남았다는 결론을 깔아두고, 그래서 “더 엄정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밀어붙인다. 이 문법은 재판을 ‘과거 청산’이 아니라 ‘재발 방지 장치’로 정의한다.
결정적으로, 특검은 사형을 ‘집행’이 아니라 ‘공동체의 범죄 대응 의지’로 정의한다. 한국이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돼 왔다. 그래서 사형 구형은 현실성 없는 최고형 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특검은 ‘상징 형벌’이라는 논리로 윤석열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상징 형벌에는 “공동체가 받은 충격과 헌정 훼손의 무게에 비하면 최저형(무기징역)도 부족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또한 “사법부가 헌정을 지킨다”는 제도적 신뢰를 보여주기 위함도 포함된다.
윤석열의 문법, ‘국가긴급권’이라는 방패
윤 전 대통령의 최후진술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는 내란이 될 수 없다”다. 여기서 주어는 ‘헌법’이 아니라 ‘대통령’이다. 그는 비상계엄을 국가 비상사태를 국민에게 알리는 대국민 메시지로 규정하며, 목적을 폭동·국헌문란이 아니라 ‘주권자에게 호소’로 재배치한다.
그리고 그는 “빈총”, “소수 병력”, “질서 유지”, “몇 시간” 같은 단어로 사건을 축소하면서, 내란의 구성요건이 안된다고 호소한다. 시간표와 병력 숫자를 촘촘히 제시하는 것도 같은 효과를 노린다. 정치적 정당성의 싸움을 ‘사실의 디테일’로 끌고 가서,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국민 스스로 내리게 만드는 방식이다.
동시에 윤 전 대통령은 ‘가해-피해’의 역할을 바꾼다. 자신을 피고인이 아니라 ‘숙청·탄압의 표적’으로 배치하고, 수사기관을 ‘조작과 왜곡’, ‘이리떼’로 명명한다. 이것은 법리보다는 여론의 언어에 가깝다.
흥미로운 대목은 윤석열이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부분 인용하며 자신의 ‘책임감’을 정당화하는 지점이다. 헌재 결정문에 등장하는 ‘막중한 책임감’ 같은 표현을 근거로, 계엄의 동기를 ‘국정 마비를 막으려는 책임’으로 포장한다. 그는 판단의 책임보다 판단 과정에서의 ‘이해 가능성’을 끌어들인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의 문법은 △내란 프레임 거부(국가긴급권), △규모 축소(빈총·소수·단시간), △피해자 전환(내란몰이·탄압), △국민 직접 호소(계몽·각성)로 구성된다. 이 구성은 재판부를 설득하기보다, 지지자 결집 등 ‘정치적 여론장’을 장악하려는 글쓰기다.
청와대의 문법, 최소 발언 속에 숨은 정치성
청와대의 코멘트는 짧다. “사법부가 법과 원칙, 국민 눈높이에 부합한 판결을 할 것으로 본다.” 이 문장은 사법부 독립 존중이라는 형식적 거리두기인 동시에 ‘국민 눈높이’를 끼워 넣어 사실상 기대 방향을 암시하는 가이드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국민 눈높이’다. 이는 판결의 정당성을 ‘법리’만이 아니라 ‘민심’과 연결한다. 사법부를 압박하지 않는 척하면서, 판결의 정당성 기준을 미리 설정하는 문장이다.
또 하나, 청와대는 이 사안을 ‘정치’로 끌어안지 않는다. 반대로 ‘법과 원칙’이라는 교과서적 표현으로 다시 법정에 밀어 넣는다. 즉, 정권은 ‘정치적 복수’ 프레임을 피하고, 사건의 무게는 ‘사법 절차’로 남겨두려 한다.
그러나 문장이 짧다고 정치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가 이 표현을 택한 순간, 재판은 ‘국가 운영의 법치’를 보여준다. 정권의 문법은 늘 ‘개입하지 않으면서 개입하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야당의 문법, “사필귀정”과 “역사의 심판”
민주당의 언어는 감정과 규범에 먼저 닿는다. 정청래 대표의 “사필귀정”, “전두환처럼”은 사건을 단숨에 역사재판으로 끌고 간다. 이 문법은 “내란은 토론의 주제가 아니라 단죄의 대상”이라는 선언이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국민 주권을 무력으로 뒤엎으려 한 행위에 대해 법이 예정한 가장 엄정한 책임을 묻는 선언이며 상식적 결론”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판결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마지막 관문”이라며 ‘헌정수호’라는 특검의 문법과 결을 같이한다.
조국혁신당은 더 강한 어조의 문장을 쓴다. “주권자의 준엄한 명령” 같은 표현은 사법 판단을 주권의 명령으로 번역한다. 이 문법은 ‘신속 선고’ 요구와 결합될 때 압박의 강도가 커진다. 재판부의 시간표까지 공론장에서 문제 삼으면서, 형량뿐 아니라 판결의 속도도 정의의 일부로 편입시키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문법, 침묵이 남긴 방어적 그림자
국민의힘은 공식 논평을 최소화하는 쪽을 택했다. “당을 떠난 분”이라는 표현으로 윤석열과 선을 그어온 태도를 유지하면서 “차분하고 공정한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거리를 둔다.
이 침묵의 계산은 우선 ‘연루 차단’이다. 전직 대통령과의 정치적 연동을 최소화해 당의 책임 범위를 좁히려는 계산이다. 그리고 지지층 내부의 정서와 중도층의 정서를 동시에 자극하지 않기 위한 저강도 메시지 전략이 깔려있다.
사형 구형이라는 극단적 언어에 추가 문장을 덧붙이면 자칫 내부 분열을 낳기 쉽다. 강하게 옹호하면 ‘동조’의 비난을 받고, 강하게 비판하면 지지층 이탈을 부른다.
하지만 침묵은 때로 회피성 무책임으로 비춰질 수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입장이 없다”가 아니라 “입장을 숨긴다”로 읽히기 쉽다. 정치문법에서 침묵은 종종 ‘정리되지 않은 내부’의 이름이다. 말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메시지가 되고, 그 메시지는 대개 불리하게 해석된다.
선고까지 남은 시간, 재판부의 문법은
특검이 “사형은 공동체의 의지”라고 정의한 순간, 이번 재판은 형량을 넘어 ‘헌정수호’의 기준을 제시한다. 우리나라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지만, 법률상 사형은 존재한다. 존재하되 집행하지 않는 제도라는 틈을 특검은 상징의 언어로 메우려 한다.
윤 전 대통령은 그 틈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국가긴급권 전속’을 말하며 ‘정치의 위기’를 ‘통치의 결단’으로 바꾸려 한다.
이제 재판부의 문법이 남았다. 재판부는 2월 19일 오후 3시 선고를 예고했다. 법원이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사건은 ‘내란’이 될 수도 ‘권한 남용’이 될 수도, 혹은 그 사이의 다른 언어를 가질 수도 있다. 핵심은 법원이 사실관계를 어떻게 엮어 ‘국가권력의 한계’를 설명할지다.
그리고 판결문이 어떤 언어를 택하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번 사건은 한 전직 권력자의 처벌을 넘어, 국가가 스스로를 어떻게 수호하는지를 기록하는 문서가 된다. 특검이든 피고인이든 정당이든, 모두 그 문서의 여백에 문장을 써내려간다. 이제 마지막 문장은 법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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