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국내 철강산업이 최근 수년간 지속된 구조적 침체가 올해도 유지될 전망이어서 체질 개선과 함께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미국, 유럽 등으로 수출하던 기존 사업구조의 대전환이 예상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철강산업은 내수 회복이 제한적인 가운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보호무역과 탄소 규제가 강화되며 기존의 생산량·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이 한계에 직면했다.
올해 철강산업은 내수 시장의 감소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출 부진의 영향으로 업황 회복은 지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수출 환경의 악화로 국내 철강 수요 부진을 수출로 만회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글로벌 공급 과잉 지속으로 수입도 크게 감소하기 어려워 지난해에 이어 제철소 생산라인을 멈추는 등 생산 규모 축소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철강 업황을 둘러싼 대외 환경이 녹록지 않다. 주요 수출 시장을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쿼터제를 전면 폐지하고 한국산 철강 전량에 50%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세이프가드 쿼터를 대폭 축소하는 동시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올해부터 본격 적용하며 수입 철강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U는 2024년 기준 국내 철강 수출 물량의 13.4%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처다. EU로 수출하는 기업은 철강, 알루미늄, 비료, 수소, 시멘트, 전력 등 탄소 집약적 6개 품목 제품을 생산할 때 배출되는 탄소량을 측정하고 EU 측 수입업자에게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올해부터는 배출량 측정값에 대한 3자 검증과 배출량에 상응하는 인증서 구매·제출 의무가 추가된다. 이에 따라 철강업계와 EU 지역 수출 기업들은 CBAM을 사실상 관세로 인식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CBAM 도입 후 국내 철강업계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2026년 851억원에서 2034년 550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호무역 기조는 다른 국가로의 전이를 야기하는 도미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캐나다는 지난해 연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대한 철강 저율관세할당(TRQ) 기준을 100%에서 75%로 낮췄고 철강 파생상품에는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멕시코도 올해부터 한국과 중국 등 FTA 미체결국에 최대 50%의 관세를 적용한다. 이 밖에도 베트남과 인도 등 신흥국들도 반덤핑·세이프가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보호무역 확산에 따라 철강제품은 지난해 한국 수출 7000억달러 돌파에서도 비중 없는 조연에 그쳤다. 한국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작년 연간 철강 수출은 2864만3000톤으로 전년 대비 1%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철강 수출액은 309억달러로 전년 대비 7.2% 감소했다.
대외 여건 악화는 생산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세계철강협회(WSA)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조강 생산량은 5610만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연말 감산 기조가 이어지며 작년 연간 조강 생산이 6100만톤 안팎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2010년(5891만5000톤) 이래 15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 역시 침체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4년 세계 총 조강 생산량은 18억8260만톤으로 전년 대비 0.8%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연간 조강 생산량은 6350만톤으로 4.7% 줄며 글로벌 평균보다 감소 폭이 컸다.
문제는 올해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철강 수출 물량이 지난해 대비 6.4% 감소한 2682만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액도 5.0% 줄어든 293억5600만달러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내수 역시 비관적이긴 마찬가지다. 수요 절벽 상황의 지속과 수출 감소에 따라 2026년 철강재 생산은 3년 연속 감소할 것으로 산업연구원은 예측했다. 올해 생산량은 전년 대비 2.0% 줄어든 6350만톤 규모로 예상됐다.
중국 변수도 부담 요인이다. 중국은 내수 부진 속에서 과잉 생산된 철강을 저가로 수출하며 글로벌 가격을 압박해 왔다. WSA는 올해 글로벌 철강 수요가 전년 대비 1.3%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중국 수요는 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정부가 감산과 구조조정을 언급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공급 과잉이 해소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시각도 보수적이다. 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는 일제히 2026년 철강산업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 신평3사는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와 중국발 저가 철강 유입, 보호무역 고착화를 주요 리스크로 지목했다. 건설용 강재와 강관 비중이 높은 철강사일수록 실적 하방 압력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송동환 나신평 책임연구원은 “국내 철강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건설업의 장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며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 부담 요인이 작용해 단기적으로 비우호적인 사업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회는 지난해 11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K-스틸법)’을 통과시켰다. 감산 협의와 설비 조정을 공정거래법상 담합 예외로 인정하면서 업계 차원의 질서 있는 공급 조정과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저탄소 제품의 공공 조달 확대 조항도 포함됐다.
이 시기 산업통상부도 ‘철강 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치권과 정부에서 철강산업에 대한 지원·구조조정을 예고한 만큼 올해는 국내 철강 업계에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업계도 국내에서 제품 생산 후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으로의 수출이란 기존 사업 전략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 확대와 저탄소 공정 투자를 중장기 전략의 핵심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전기로 확대와 수소환원제철 연구개발, 해외 생산 거점 확보가 대표적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일관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며 관세와 탄소 규제에 동시에 대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철강업계의 수출 다각화를 지원하는 등 당국의 경제영토 확장 추진 전략이 요구된다”며 “단기적으로 국내 산업·지역의 급격한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저가 수입 철강재에 대한 시장 방어조치를 강화하고 포항, 당진, 광양 등 철강 도시에 대한 투자 및 고용, 협업 지원 등을 포함하는 산업 위기 선제 대응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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