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우리나라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힘을 받으며 2년 연속 '수출 7000억달러 시대'를 향한 출발선을 힘차게 끊었다. 조업일수 감소라는 변수에도 불구하고 일평균 수출이 증가세를 보이면서 연초 수출 흐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구조적 리스크로 지적된다.
정부와 무역업계에 따르면 이달 10일까지 우리나라 수출은 156억달러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소폭 감소했지만, 이는 조업일수 감소에 따른 착시효과에 가깝다. 실제 조업일수를 감안한 일평균 수출은 전년보다 4%대 중반 이상 증가하며 오히려 개선된 흐름을 보여줬다. 연초부터 수출 엔진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반도체가 수출 증가세를 주도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확산, 고성능 반도체 수요 확대에 힘입어 반도체 수출은 두 자릿수 후반에서 세 자릿수에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하며 전체 수출을 견인했다. 반도체 수출액은 다른 주요 품목의 부진을 상당 부분 상쇄할 정도로 강한 상승 탄력을 보였다.
반면 자동차, 선박, 철강 등 전통적인 주력 품목들은 다소 부진한 모습을 나타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주요국 보호무역 강화, 특정 국가의 고율 관세 적용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겹치면서 수출 감소세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와 선박 수출은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고, 철강 역시 수출 단가와 물량 모두에서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반도체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같은 기간 20% 수준에서 올해는 30%에 가까운 수준으로 높아졌다. 단기간에 10%포인트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이는 반도체 호황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반대로 반도체 경기 변동이 수출 전체를 좌우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뜻이 된다.
반도체를 제외한 품목들의 수출은 오히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액은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가 아니었다면 전체 수출 흐름은 상당히 다른 그림이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원툴' 구조가 다시 한 번 선명해지고 있는 셈이다.
국가별로 보면 수출 지형 변화도 감지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으로 향하는 수출 비중은 줄어든 반면, 중국과 베트남, 대만 등 아시아 지역으로의 수출 비중은 확대됐다. 특히 중국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최대 수출 시장으로서의 위치가 다시 강화되는 모습이다. 대만과 베트남 역시 반도체 및 중간재 수요 증가에 힘입어 우리나라 수출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이 미국·유럽 중심에서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AI 산업과 반도체, 전자·전기 산업의 핵심 생산 거점이 아시아에 집중되면서 우리나라 수출 역시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미국의 통상 정책 변화와 관세 강화 기조는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대미 수출 비중이 감소한 배경에는 특정 품목에 대한 고율 관세 적용과 통상 환경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아시아 시장이 이를 보완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특정 지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 또한 또 다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수출 구조 측면에서도 고민이 깊어진다. 반도체가 AI,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확산이라는 구조적 성장 요인을 바탕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반도체 업황은 본질적으로 경기 변동성이 크고 사이클이 뚜렷하다. 업황이 꺾일 경우 수출과 경상수지, 나아가 성장률 전반에 미치는 충격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과거에도 반도체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수출 감소와 함께 우리 경제가 큰 부담을 겪은 사례가 반복돼 왔다. 현재처럼 반도체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구조에서는 그 파급 효과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와 산업계는 품목 다변화와 수출 구조 고도화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이차전지, 바이오, 미래차, 방산, 친환경 에너지, 첨단 소재·부품·장비 등 신성장 산업을 수출 주력군으로 육성해 반도체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참여 확대 역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특정 대기업과 특정 품목에 쏠린 수출 구조에서 벗어나야만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10일 단위 수출 지표는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해석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통상 월초보다는 월말로 갈수록 수출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고, 연초보다는 연말로 갈수록 수출 규모가 커지는 구조적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수치를 단기적인 방향성 지표로 참고하되 과도한 의미 부여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평균 수출 증가라는 지표는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통상 환경 악화 속에서도 우리 수출이 다시 상승 궤도에 진입할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도체라는 강력한 성장 엔진이 살아 있고,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요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도 기대 요인이다.
결국 관건은 '반도체 호황을 어떻게 기회로 바꾸느냐'에 있다. 단기 성과에 안주하기보다는 반도체가 벌어다 준 시간과 자원을 활용해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미래 성장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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