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인하 기조와 원가 부담, 글로벌 경쟁 심화라는 삼중고 속에서도 국내 제약사들이 오히려 투자를 늘리며 사업 영역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구개발(R&D) 중심 성장 전략을 넘어 디지털 헬스케어와 생산 인프라 확보까지 동시에 추진하며,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제약업계에서는 단순한 재무 투자나 일회성 지분 참여를 넘어 사업 방향성과 직결된 전략적 투자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존 의약품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미래 성장 산업과 제조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웅의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투자다. 대웅은 체외진단검사 서비스와 의료 IT 솔루션을 주력으로 하는 유투바이오와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약 121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처분해 유투바이오 지분을 확보하는 구조로, 단순 자금 투자라기보다 전략적 파트너십 성격이 강하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 데이터 기반 서비스, 진단 자동화, 환자 관리 플랫폼 등으로 확장 가능성이 큰 영역이다. 제약사가 이 분야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기존 신약 개발과 의약품 판매 중심 사업 모델을 넘어, 의료 전반의 가치사슬로 사업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를 통해 대웅이 진단-처방-치료-관리로 이어지는 의료 서비스 흐름에서 데이터와 기술 기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본격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약 하나로 승부하는 시대가 아니라, 플랫폼과 시스템 경쟁으로 산업 구조가 이동하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부광약품은 생산 인프라 강화라는 전통적인 제조 경쟁력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부광약품은 한국유니온제약을 인수하며 생산 능력과 제형 포트폴리오 확장에 나섰다. 기존 내용고형제 중심에서 주사제, 항생제 등으로 영역을 넓혀 제품 구성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인수는 단순히 공장 하나를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위탁생산에 의존하던 일부 제품을 자사 생산으로 전환하고 제조 내재화를 강화하려는 구조적 변화로 평가된다. 제조 경쟁력이 곧 수익성과 직결되는 제약 산업 특성상, 생산 인프라 확보는 중장기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특히 한국유니온제약이 보유한 액상주사제 생산시설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로 알려져 있어, 부광약품의 제형 다변화 전략에 실질적인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전문의약품 중심, 특히 만성질환 치료제 분야에서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처럼 대웅은 디지털 헬스케어로, 부광약품은 생산 역량 강화로 서로 다른 방향에서 투자를 단행했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단기 실적 개선보다는 사업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려는 장기 전략이라는 점이다.
제약업계 전반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단순 신약 개발 경쟁을 넘어 데이터와 기술 기반의 디지털 헬스, 안정적인 생산 인프라 확보, 제형 및 치료 영역 다각화, 공급망 내재화
등이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약가 인하와 규제 강화로 기존 의약품 판매만으로는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신약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제약사들은 '확률 게임'에서 벗어나 보다 구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투자 방식도 변화했다. 과거에는 단순 지분 투자나 재무적 목적의 참여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지분 맞교환, 현물출자, 전략적 인수합병 등 사업 연계성이 뚜렷한 방식이 늘고 있다. 이는 투자와 동시에 실질적인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의도가 강하다는 의미다.
다만 이런 확장 전략이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고 규제 환경도 불확실성이 크다. 생산 설비 인수 역시 고정비 부담 증가라는 위험 요소를 함께 안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약사들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의 사업 구조로는 중장기 성장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투자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제약사들의 투자 움직임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재편"이라며 "과거처럼 신약 하나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생산·플랫폼을 함께 갖춘 종합 헬스케어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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