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한민하 기자] 국내 뷰티 산업의 무게중심이 변하고 있다.
글로벌 수준에 도달한 국내 ODM 기술의 상향 평준화로 브랜드 간 기술적 격차가 줄어들자 이전까지 기술력이 ‘기본 공식’으로 작용해왔던 뷰티시장의 판도가 마케팅 전략에 따라 승부가 좌우되는 양상으로 치달으며 시장의 경쟁 판도마저 뒤바뀐 것이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판관비 가운데 광고선전비 비중이 20.7%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신흥 브랜드들의 마케팅 비중은 더 높았다. 에이피알은 해당 기간 광고선전비 비중 32.5%를 기록했고, 달바글로벌 역시 40% 수준을 웃돌았다.
연구개발 투자에서도 기업 간 차이가 확인된다. 아모레퍼시픽의 연구개발비는 1015억원으로 매출 대비 3.29% 수준에 그쳤으며, 에이피알도 매출의 0.4%에 그친 43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다만 에이피알은 화장품 부문은 주로 ODM 생산에 의존하나 뷰티 디바이스 분야에서는 기획부터 생산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뷰티 기업들의 자본 투입 축이 연구개발에서 인지도 확보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제품 성능의 체감 차이가 희미해질수록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얼마나 자주 노출되고 선택되는지가 매출을 결정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 기술이 워낙 높아지다보니 브랜드사 입장에서는 굳이 큰 비용을 들여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것보다 마케팅에 투입해 플랫폼 노출을 극대화하는 것이 매출 증대에 훨씬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케팅 비중 확대의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국내 ODM사의 기술 발전이 자리한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주요 ODM사들이 제조 전반 기술과 생산 역량을 고도화·표준화 하면서, 신규 브랜드는 대규모 설비 투자나 장기간의 자체 연구 없이도 검증된 기술 기반 위에서 빠른 제품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제품 자체로 차별화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고 경쟁의 무게추는 유통 채널과 마케팅 집행 역량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 간 제품력 격차가 축소되며 SNS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콘텐츠 운영, 인플루언서 네트워크, 플랫폼 내 노출 전략 등이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했다. ‘잘 만든 제품’만으로는 성장이 어려워지고, 어떻게 발견되고 기억되느냐가 성과를 가르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가 장기 경쟁력 측면에서는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 상향평준화가 자체 기술 축적의 동기를 약화시키면 결과적으로 브랜드들이 유사한 제조 기반 위에서 마케팅 경쟁만 반복하는 양상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특정 ODM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기 더 어려운 환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성장한 뷰티 기업을 중심으로 인수·매각이 이어지며 브랜드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신생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해 필요하긴 하지만 지속적일수록 사실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부분도 있다”며 “트렌드에 집중하는 부분에서 대체될 위험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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