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 인터뷰] 이지안 도슨트 “프랑스보다 20년 앞선 실험...이탈리아 인상파를 다시 보세요”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TN 인터뷰] 이지안 도슨트 “프랑스보다 20년 앞선 실험...이탈리아 인상파를 다시 보세요”

투데이신문 2026-01-14 11:57:50 신고

3줄요약
미술심리치료사이자 인기 도슨트인 이지안씨는 이탈리아 인상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점,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전시회 등과 관련한 뒷이야기 등을 자세하게 얘기해주었다. [사진=본인 제공]
미술심리치료사이자 인기 도슨트인 이지안씨는 이탈리아 인상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점,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전시회 등과 관련한 뒷이야기 등을 자세하게 얘기해주었다. [사진=본인 제공]

【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그림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언어로도 감상할 수 있다. 도슨트(Docent)는 단순한 그림 설명자가 아니다. 그림의 해석을 다양하게 해주는 관점의 도선사다. 그들은 그림에 대한 감상과 시각의 층위를 다양하게 쌓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지안씨는 명화 속 심리를 읽는 미술치료사이자 마이아트 공식 도슨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양대와 CHA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을 졸업한 재원인 그는 미술관 미술치료 연구와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마이아트뮤지엄에서 도슨트로 활약하며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미술감상법을 전파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이탈리아편, 더블북)도 미술감상서도 펴내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이지안씨를 만나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전시회 뒷이야기와 이탈리아 근현대 미술세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지안씨가 최근 출간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탈리아편(더블북)은 1월 8일 현재 교보문고 온라인 예술/대중문화 부분 판매율 1위를 달리고 있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이지안씨가 최근 출간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탈리아편(더블북)은 1월 8일 현재 교보문고 온라인 예술/대중문화 부분 판매율 1위를 달리고 있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Q.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탈리아 편은 그 구성이 흥미롭다. 어떤 책인가.

지금까지 일반적인 이탈리아 관련 미술감상서들은 대부분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즉 고전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이번 책은 그랜드 투어의 여정을 따라 북부 밀라노에서 남부 나폴리까지 내려가며 고전부터 동시대 미술까지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17~18세기 유럽 귀족들이 교양을 쌓기 위해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그랜드 투어’를 현대적으로 다시 해석했다.

나도 실제로 과거 영국 독일 등의 유럽 귀족들이 지나갔던 그랜드 투어 루트를 혼자 기차를 타고 따라가며 현지의 미술관 작품을 상세하게 돌아보고 이번 책에 그 결과물을 모두 실었다. 맨 처음 밀라노에서 출발해 피렌체를 거쳐 로마가 종착지였는데 그 과정에서 고전부터 현대 미술까지를 모두 다뤄 이탈리아 미술을 시대별로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Q. 이탈리아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인지.

이탈리아 미술에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작년에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트 미술관 콜렉션 전시회를 하면서 도슨트를 했는데 그때 해설을 하면서 이탈리아 그림의 숨은 매력에 깊이 빠지게 됐다. 그 후 직접 이탈리아를 방문해 유럽 귀족들의 그랜드 투어 길의 미술관들을 보고 완전히 반했다.

사실 한국인들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등 이름 있는 곳은 익숙한데 이번에 그랜드 투어 길을 따라 가며 만나본 미술관에는 너무도 다양한 그림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이탈리아 미술책 하면 대부분 고전 쪽에 치우쳐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이탈리아의 동시대 미술까지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루초 폰타나 등의 현대미술도 볼 수 있었고 이탈리아 인상파인 마키아올리 화파의 그림들도 아주 좋았다.

안토니오 폰타네시(레조 에밀리아, 1818 – 토리노, 1882)|토리노의 포 강가에서|ca. 1875|Oil on canvas|55 x 86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안토니오 폰타네시(레조 에밀리아, 1818 – 토리노, 1882)|토리노의 포 강가에서|ca. 1875|Oil on canvas|55 x 86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Q. 인상주의 하면 프랑스만 떠올리곤 한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인상파의 출발은 어디서부터 봐야 할까.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 인상파보다 10~20년가량 앞서 ‘마키아이올리(Macchiaioli)’라는 흐름이 먼저 등장한다. 토스카나를 중심으로 활동한 그때 화가들은 기존 아카데미 양식을 거부하고 야외에서 자연광을 직접 관찰하며 ‘얼룩(마키아)’으로 장면을 구성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당시 이탈리아 미술계에서는 매우 급진적인 실험이었기 때문에 ‘얼룩쟁이들’이라는 비아냥에서 이름이 나왔다.

​Q. 왜 이탈리아 근현대 미술은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을까.

우리가 이탈리아 미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대개 고대 그리스·로마, 중세 종교화, 르네상스, 그리고 바로크 시대의 카라바조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18~19세기 이후 미술의 중심이 파리로 옮겨가면서 같은 시기에 활발히 활동하던 이탈리아 화가들은 프랑스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려진 측면이 크다. 하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인상파보다 먼저 이탈리아에서 인상주의가 태동했다는 것은 이탈리아 미술 수준이 여전히 높았음을 의미한다. 그에 따라 이탈리아 국민들의 그들 미술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Q. 이탈리아 인상파와 프랑스 인상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공통점부터 보면 두 진영 모두 야외에서 자연광을 관찰하고 빠른 붓질과 분절된 색채로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프랑스 인상파가 도시의 근대적 풍경·카페·기차역 등 ‘현대성’의 장면에 집중했다면 마키아이올리는 농촌·군인·전쟁·서민 생활 등 현실 사회와 정치적 메시지에 더 무게를 뒀다.

또한 이탈리아 화가들은 르네상스와 고전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완전히 과거와 단절하기보다 고전적 구도와 균형감을 어느 정도 유지한 채 새 기법을 도입했다는 점이 다르다. 프랑스는 단절한 미술적 전통이 비교적 짧았기에 오히려 혁신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됐고 그와 달리 이탈리아는 고대 그리스.로마와 르네상스 등을 거치며 쌓아온 그들만의 강한 미술적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부담’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테파노 브루치(그로팔로, 피아첸차, 1835 – 피아첸차, 1911)|반항아들|1890-1895|Oil on canvas|71 × 113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스테파노 브루치(그로팔로, 피아첸차, 1835 – 피아첸차, 1911)|반항아들|1890-1895|Oil on canvas|71 × 113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Q. 실제로 이번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전에서 본 이탈리아 인상파 작품은 프랑스 인상파보다 덜 파격적이고 푸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느낌은 어디에서 올까.

이탈리아 화가들은 급진적 형식 실험보다는 ‘고전적 질서 속의 변주’에 가깝기 때문에 구도와 인물 묘사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서정적이다. 또한 주제가 농촌·일상·가족·종교 등 삶에 밀착된 장면들이 많아 관람자가 서사와 감정에 쉽게 연결될 여지가 크다. 그리고 색채 역시 강렬한 대비보다는 자연광 아래의 토스카나 풍경, 이탈리아 남부의 빛 같은 정서적인 톤이 강해 ‘날것이지만 과격하지 않은’ 인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번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전시회에서도 이탈리아의 감성적인 인상파 그림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Q. 이탈리아 인상파가 미술사에서 갖는 의미를 정리한다면.

프랑스 인상주의가 ‘근대 도시의 시각 혁명’이라면 이탈리아 인상파와 분할주의는 ‘고전 전통을 품은 채 근대 감각을 실험한 주변부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탈리아 화가들은 르네상스의 전통과 고전적 품격을 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프랑스 인상파보다 20년 앞서 ‘마키아이올리(Macchiaioli)’라는 인상주의 화파가 이탈리아에 이미 등장했다는 것은 이탈리아 미술의 저력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페데리코 잔도메네기(베네치아, 1841 – 파리, 1917)|흰색 칼라를 한 소녀|ca. 1890|Oil on canvas|41 × 33,5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페데리코 잔도메네기(베네치아, 1841 – 파리, 1917)|흰색 칼라를 한 소녀|ca. 1890|Oil on canvas|41 × 33,5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Q. 이번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에서 단연 ‘여인의 초상’이 화제다. 클림트의 유일한 이중 초상화라는 점과 도난 당한 후 극적으로 되돌아온 것 등 이야깃거리가 많다. 특히 처음에는 클림트의 이중 초상화를 모르고 있다가 한 미술학도의 예리한 눈썰미로 밝혀졌다고 하는데.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화가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계기는 아주 우연이었다. 피아첸차에 살던 한 여고생이 클림트 과제를 하다가 오래된 책에서 ‘소녀의 초상’이라는 그림을 봤는데 그것이 리치오디 미술관에서 늘 보던 ‘여인의 초상’의 얼굴과 너무도 닮았다고 느낀 것이다. 이때 이 소녀의 동일작품 확인 작업이 기가 막힌 센스에서 나욌다.

당시엔 스마트폰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라 책 속 ‘소녀의 초상’ 얼굴 윤곽을 투명 종이에 직접 따라 그린 뒤 그 종이를 들고 미술관으로 갔다. 그 투명종이를 ‘여인의 초상’ 위에 대보니 눈·코·입 위치가 정확히 겹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관에 “이 그림 밑에 다른 초상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고 제보했고 미술관이 X선 검사를 해보니 실제로 밑에 같은 인물의 ‘소녀의 초상’이 있는, 이중 초상화라는 사실이 1996년에 공식 확인됐던 것이다. 참으로 우연이자 한 소녀의 기지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Q. 왜 클림트는 같은 여인을 두 번, 그것도 겹쳐 그렸다고 보나.

당시 화가들은 가난해서 캔버스를 재활용하려 그림 위에 덧그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클림트는 달랐다. 밑에 그려진 ‘소녀’는 클림트가 사랑했던 어린 뮤즈였는데 그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클림트는 그녀를 잊지 못해 “만약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상상하며 7~8년 뒤에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다시 그린 것이다. 그래서 첫 그림의 어두운 배경은 죽음과 상실의 기운을, 두 번째 그림의 밝은 옷과 색채는 생명력과 되살림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연인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층층이 쌓인 그림인 셈이다.

자코모 그로소(캄비아노, 1860 – 토리노, 1938)|거울 속|1914|Oil on canvas|200 × 75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자코모 그로소(캄비아노, 1860 – 토리노, 1938)|거울 속|1914|Oil on canvas|200 × 75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Q. 이 그림이 리치오디 미술관에 오게 된 과정도 이채롭다.

리치오디라는 이탈리아 백작이 “이탈리아는 고전 미술만 유명하고 근현대에 와서는 프랑스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아쉬움에서 이탈리아 근현대 화가들 작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만든 컬렉션이 리치오디 미술관이다. 이 중 ‘여인의 초상’은 1925년에 구입했는데 그 당시에는 이중 초상인지 전혀 모른 채 그냥 하나의 초상화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한 소녀의 눈썰미로 1996년에 이중 초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을 1997년에 열려고 했다. 그런데 전시를 앞두고 그림이 통째로 사라졌다. 액자만 남기고 그림만 사라져버렸고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그런데 22년 10개월이 지난 2019년 12월, 미술관 정원사가 외벽을 덮고 있던 담쟁이덩굴을 치우다가 잘 쓰지 않는 작은 철문을 발견했다. 그 철문 밑의 작은 문을 열어보니 돌더미와 쓰레기 같은 것들이 있고 그 안에 검정 비닐봉투가 하나 있었다. 당연히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열어봤는데 그 안에서 ‘여인의 초상’ 그림이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놀랄 정도로 그림은 거의 멀쩡했다. 그래서 “도대체 누가, 왜, 언제 여기에 다시 가져다 둔 것인가”가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그림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검사해보니 아주 옛날의 것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 밝혀져 누가 그림을 훔쳐갔다가 검은 비닐봉지에 대충 싸서 나중에 다시 돌려놓은 게 아니냐는 추정만 있을 뿐이다. 그때 발견 시기가 크리스마스 무렵이라 이 사건을 두고 ‘크리스마스의 기적’, ‘리치오디의 기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Q. 이탈리아 미술을 다루는 책 표지에, 오스트리아 작가인 클림트를 커버에 올렸다. 이유가 있는가.

이탈리아에 있는 클림트 작품이 단 세 점뿐인데 그 중 한 점이 바로 이번에 한국에 온 ‘여인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쉽게 내줄 수 없는 작품”이라 대여를 굉장히 주저했고 결국 한 점이 한국에 오면서 “이탈리아에는 이제 두 점만 남았다”고 농담 섞인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또한 이 작품이 클림트의 유일한 이중 초상으로, 리치오디 미술관의 정체성과 이번 전시의 제목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바움가르텐, 1862 – 빈, 1918)|여인의 초상|1916|Oil on canvas|68 x 55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구스타프 클림트(바움가르텐, 1862 – 빈, 1918)|여인의 초상|1916|Oil on canvas|68 x 55 cm. [사진제공=리치오디미술관]

Q. 클림트의 화풍과 그 안에서 ‘여인의 초상’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잘 아는 클림트의 ‘키스’는 금박을 대담하게 쓴 이른바 황금기 작품이다. 이 황금기는 실제로 약 5년 정도의 짧은 시기였다. 이후 후기에는 앙리 마티스의 표현주의 영향을 받아 금색 대신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는 화풍으로 바뀌는데 최근 경매 시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들은 모두 이 후기 작품들이다. ‘여인의 초상’은 바로 이 후기, 클림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그린 작품이다. 황금기의 금빛 대신 색면과 패턴, 그리고 인물의 시선과 자세가 주는 정서적 긴장이 중요하고 여기에 “죽은 연인을 다시 살려낸 초상”이라는 서사까지 겹치면서 현재 클림트 평가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Q. 마지막으로 이지안씨만의 미술 감상 비법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한국 관객은 루브르 가면 모나리자, 우피치 가면 비너스의 탄생 같은 ‘교과서에 나온 그림’만 확인하듯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방식은 이미 굳어진 해설과 편견을 들고 가서 자신의 감각보다 ‘정답’만 확인하는 감상이 되어버린다고 본다. 미술관에 가기 전에 일부러 깊이 공부를 하지 말고 가서 먼저 한 바퀴를 훑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다음 자신의 눈에 특히 인상적인 작품을 직관적으로 고르는 게 좋다.

또한 모나리자, 비너스의 탄생처럼 유명한 작품이 있을 경우 그 작품만 보고 끝내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유명 작가의 대표작을 볼 때는 그 시기를 전후해 그려진 그림도 같이 보는 게 좋다. 그러면 그 대표작 이후에 무엇에 영향을 주었는지가 연결되면서 작품이 미술사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는지, 큰 흐름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미술관을 돌다가 스태프, 큐레이터, 아니면 경비원이나 자원봉사 도슨트 등 미술관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꼭 그들의 추천작품과 그 이유를 묻는 게 좋다. 그러면 그 나라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자부심과 그들이가장 아끼는 작품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