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6년 새해 벽두부터 중국·미국·인도를 잇는 강행군에 나섰다. 일정은 짧았지만 동선은 분명했다. 배터리와 수소, AI와 로보틱스, 그리고 세계 최대 성장 시장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다.
정 회장은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열흘간 세계 경제와 산업 질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 국가를 차례로 방문했다. 중국에서는 공급망과 에너지, 미국에서는 미래 기술의 방향, 인도에서는 생산과 시장의 지속성을 점검했다. 현대차그룹이 ‘현재의 수익원’과 ‘다음 세대의 성장 축’을 동시에 붙잡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행보다.
중국에서는 협력 범위를 다시 그렸다. 정 회장은 대통령 국빈 방중 일정과 연계해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뒤, 배터리·에너지 분야 핵심 기업 경영진들과 잇따라 만났다.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 CATL 쩡위친 회장과는 전기차 배터리 협력과 공급망 안정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중국 최대 에너지 기업 Sinopec 허우치쥔 회장과는 수소 사업 전반을 논의했다. 기아의 중국 합작 파트너인 Yueda Group 경영진과도 장기 협력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중국은 여전히 쉽지 않은 시장이지만, 전기차·수소·배터리를 둘러싼 기술 경쟁과 정책 변화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시험장이기도 하다. 정 회장이 8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은 배경이다.
미국에서는 미래 기술의 속도를 직접 확인했다. 정 회장은 6~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을 찾아 AI와 로보틱스 트렌드를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NVIDIA 젠슨 황 CEO, Qualcomm 경영진 등 글로벌 빅테크 인사들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Boston Dynamics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와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 ‘모베드’는 CES 현장에서 기술력을 입증했다.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구글 딥마인드와 휴머노이드 AI 협력을 공식화한 것도 주목받았다. 현대차그룹이 말하는 ‘피지컬 AI’ 전략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 회장의 발걸음은 곧바로 인도로 향했다. 12~13일 이틀간 첸나이, 아난타푸르, 푸네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공장을 차례로 방문하며 생산과 품질, 인력 운영을 직접 점검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이자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인 성장 시장이다. 동시에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앞세운 글로벌 제조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1996년 인도 진출 이후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현재 인도 시장 점유율은 약 20%, 첸나이·아난타푸르·푸네 공장을 합쳐 연 150만대 생산 체제를 갖췄다. GM으로부터 인수한 푸네 공장은 소형 SUV 베뉴 생산을 시작으로 전략 거점으로 재편되고 있다.
정 회장은 첸나이공장에서 “현대차는 30년간 인도 국민의 사랑을 받아 성장해 왔다”며 “다음 30년을 내다보는 홈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아 아난타푸르공장에서는 “도전적 목표를 세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 DNA가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번 일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현장’이었다. 정 회장은 공장과 전시장, 회의실을 오가며 전략을 점검하는 동시에 현지 임직원과 가족들을 직접 만나 격려했다. “현대차그룹의 인도 성공은 가족들의 헌신 덕분”이라는 말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중국에서 협력의 조건을 점검하고, 미국에서 기술의 방향을 확인한 뒤, 인도에서 생산과 시장의 지속성을 재확인했다. 정 회장의 새해 행보는 단순한 글로벌 순방이 아니라, 현대차그룹의 다음 30년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가져갈 것인가를 현장에서 다시 묻는 과정으로 읽힌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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