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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14일 새벽 1시,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을 전격 의결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뭐가 그리 급한지 제1야당 전 대표를 한밤중에 쫓아내버렸습니다.
장동혁 대표는 일단 속이 시원할 것입니다. 한때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통쾌하게 한방 먹인 것도 있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친한계’들에게도 대표의 본때를 보여준 것이 기분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 구형 직후 이뤄진 이번 ‘기습 징계’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장동혁 지도부가 한 전 대표에게 오히려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한 전 대표가 가족을 동원해 당심과 여론을 조작하려 했다는 ‘당게 사건’의 죄질을 오히려 희석시키고 그 프레임을 야당 전직 대표 탄압이라는 쪽으로 몰아가는 최악의 한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번 징계의 핵심 사유인 ‘당원게시판(당게) 사태’는 가족 명의를 동원한 조직적 공론 조작 의혹이라는 점에서 그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창당 이래 그 유례가 없는 ‘이간질 정치’의 장본인인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여론이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한 전 대표가 당게 사건으로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한 전 대표가 당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대통령과 그 부인에 대한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험담과 조롱을 부추기거나 방조했다는 의혹은 보수정치의 품격과 태도에 관한 것뿐 아니라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최악의 ‘정치적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한 전 대표의 변명도 상당히 궁색해 오히려 여론을 더 악화시킨 측면이 있습니다. 한 전 대표는 당원게시판 논란에 대해 “가족들이 비판적인 글을 올린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는 변명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가족들의 게시글 작성이 사실이었음을 본인 입으로 인정한 셈이 됩니다. 법조계에서는 한 전 대표의 하나마나 한 해명에 대해 “전형적인 법 기술자의 변명”이라고 비판합니다. 행위 자체는 부인할 수 없으니 ‘고의성’과 ‘사전 인지’ 여부만 살짝 비틀어 법적, 도덕적 책임을 피해 가려는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여론 조작은 그간의 드루킹 사건 등으로 국민들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입니다. 그런 중요한 사건에 대해 “가족이 하는 일을 몰랐다”는 해명은 대중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 오히려 죄질을 더 나쁘게 보이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차라리 ‘알고서도 가족들을 말리지 못했다. 내 불찰이다’며 깨끗이 사과를 했으면 당게 사건의 정치적 후폭풍도 가라앉았을 것입니다. 한 전 대표의 ‘몰랐다’는 해명은 법률가로서는 계산된 방어였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여론의 감수성을 외면한 치명적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승부라는 것이 아군의 우수한 전략보다 상대의 실수로 판가름나는 것처럼 이번 당게 사건도 한동훈의 실수보다 장동혁의 실수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사실 장동혁 대표로서는 당게 사건으로 한 전 대표를 축출하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 장악력을 높여 보수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욕심도 보였습니다. 당 원로들이 한동훈 제명을 끝까지 말렸지만 장 대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측근 미디어대변인 박민영이 ‘원로들의 평균 나이가 91세’라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하는 것도 방조했습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번 한밤 한동훈 제명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결정문에서 “한 전 대표가 직접 썼는지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도 “상대적 증거의 우월”이라는 모호한 논리로 제명을 강행했습니다.
이러한 무리한 징계 절차는 사안의 본질인 ‘여론조작’의 프레임을 딴 곳으로 돌리고 그 죄질을 희석시키는 최악의 정무적 판단입니다. 장 대표의 이번 징계로 그에게는 ‘정치적 숙청’과 ‘보복 징계’의 주홍글씨가 새겨지게 됐습니다. 엄중해야 할 당의 징계가 장 대표의 ‘사심’으로 변질됐고 한 전 대표의 잘못을 오히려 덮어주는 역효과를 낸 셈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1.5선의 장동혁 대표에 대한 정무적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징계는 제 발등 찍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 새벽 시간을 이용한 기습 발표와 ‘마피아’ 등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한 결정문은 중도층은 물론 당내 소장파들 사이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장동혁 대표의 화풀이성 보복 징계는 한동훈의 정치적 웨이트만 한껏 올려준 결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이후 이렇다 할 정치적 역할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라이브 방송에서 실없는 소리나 하는 것이 대중과의 소통으로 착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 대표의 징계는 그에게 ‘다시 정치를 할 명분’을 제공한 셈이 됐습니다. 징계 확정 직후 한 전 대표는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라는 짤막한 반응만 내놓았습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자신을 ‘민주주의 투사’로 만들어준 장 대표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을 한 문장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인데요. 이제 한동훈은 국민의힘에서 ‘탄압받는 차기 리더’이자 ‘보수의 미래자산’이라는 훈장을 양 어깨에 얹게 생겼습니다. 스스로 얹은 게 아니라 장동혁이 정적에게 훈장을 준 꼴입니다.
기사회생은 이럴 때 쓰는 말입니다. 장 전 대표는 그를 쫓아냈지만 ‘한동훈이 어떻게 재기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점증하면서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더 공고해지는 효과가 날 것입니다. 장동혁과 한동훈. 둘 다 엘리트 법조인 출신에 정치적 경력도 짧습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겸허한 반성보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며 정치적 위상을 끌어올리는 스타일입니다. 둘 다 보수의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 보수정당에는 불행이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야당 복은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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