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 직격탄을 맞고 있는 투발로
남태평양의 한가운데 놓인 파푸아뉴기니와 그 주변 섬들은 지금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지도 위에서는 작고 평온해 보이는 산호섬과 해안 마을들이, 현실에서는 매년 조금씩 바닷물에 잠기고 있다. 카터렛 군도, 타쿠 군도와 같은 저지대 산호섬들은 이미 반복되는 침수로 농경지가 사라지고 식수원이 염분에 오염되면서 주민들의 일상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섬 주민들에게 바다는 생계의 터전이자 삶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제 바다는 위협이 되었다. 만조 때마다 집 안으로 밀려드는 바닷물, 무너지는 해안선, 떠내려가는 묘지와 학교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 기후 변화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있다. 일부 마을은 이미 집단 이주를 시작했고, 주민들은 ‘기후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염분 피해로 말라버린 농경지와 쓰러진 작물들
파푸아뉴기니 인구의 대다수는 여전히 자급자족형 농업과 어업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러나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이 토양으로 스며들고, 강우 패턴이 바뀌면서 전통적인 농사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고구마, 타로, 바나나 같은 주요 작물은 염분 피해와 가뭄, 폭우를 번갈아 겪으며 수확량이 급감하고 있다.
식수 확보도 심각한 문제다. 빗물에 의존하던 섬 지역은 장기 가뭄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면서 저장 시스템이 무너지고, 지하수는 염분에 오염돼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있다. 주민들은 하루 종일 물을 구하기 위해 이동해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 대신 물통을 들고 해안과 언덕을 오르내린다.
바다 역시 더 이상 풍요롭지 않다. 수온 상승과 산호초 붕괴로 어족 자원이 급감하면서 어업 소득은 줄어들고, 단백질 공급원마저 불안정해지고 있다. 식량 위기는 곧 영양실조와 질병 확산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지역 사회의 생존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 폭우로 무너진 산사태 현장과 매몰된 마을
기후 변화는 파푸아뉴기니의 지형과 사회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열대성 폭우는 점점 더 강해지고, 산악 지형이 많은 이 나라는 대규모 산사태와 홍수가 빈발하고 있다. 한 번의 폭우로 수십 개의 마을이 고립되고, 도로와 교량이 끊기며 구호 물자가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재난 대응 인프라는 극히 취약하다. 많은 지역은 도로조차 제대로 연결돼 있지 않고, 의료시설과 통신망도 부족하다. 재난이 발생하면 주민들은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구조와 복구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국제 구호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도착하기까지는 며칠, 때로는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기후 재난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으로 확산되고 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도시 빈민가로 몰려들고, 일자리 부족과 빈곤은 범죄와 사회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자연재해는 이제 파푸아뉴기니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구조적 위기로 자리 잡았다.
불법 벌목으로 훼손된 열대우림과 황폐해진 숲
파푸아뉴기니는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지닌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 숲과 바다는 지금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상업적 벌목, 광산 개발, 팜유 농장 확장은 열대우림을 조각내고 있으며, 이는 탄소 흡수 능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숲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식량 창고이자 약초 시장이며, 전통 문화의 뿌리였다. 숲이 사라지면서 야생 동식물도 함께 사라지고, 주민들은 수천 년간 이어온 생활 방식을 잃어가고 있다.
바다 역시 위기에 놓여 있다. 수온 상승과 해양 산성화는 산호초를 죽이고, 산호초에 의존하던 어류들은 서식지를 잃는다. 이는 어업 붕괴로 이어지고, 해안 공동체의 생계 기반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생태계 붕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곧 인간의 생존 문제로 직결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 위험에 놓인 투발루의 해안 마을
파푸아뉴기니만의 문제가 아니다. 투발루, 키리바시, 솔로몬제도, 피지 등 태평양 섬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해수면 상승과 기후 재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평균 해발 고도가 2미터 남짓한 투발루는 국가 전체가 바닷물에 잠길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일부 국가는 이미 외국 정부와 ‘이주 협정’을 논의하며 국가 소멸 이후의 미래까지 고민하고 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상황이다. 한 나라가 전쟁이나 정치가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해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들 국가의 위기는 단지 지역적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가 만든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자,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반복될 수 있는 미래의 예고편이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이 보내는 구조 신호는 곧 전 지구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파푸아뉴기니와 주변 섬들의 위기는 단일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후, 생태, 식량, 물, 주거, 경제, 문화가 동시에 붕괴되는 복합 위기다. 바다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기후는 가난한 나라부터 덮친다. 남태평양의 섬들이 먼저 무너지고 있지만, 이 위기는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닷물은 섬의 가장자리를 갉아먹고 있다. 그리고 그 물결은 머지않아 더 많은 해안 도시와 섬, 그리고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 밀려올 것이다. 남태평양에서 시작된 위기는 이미 전 세계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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