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직후부터 불붙은 관세전쟁…반도체·희토류 앞세워 공방
서로 약점 노출하며 조기 휴전 합의…4월께 트럼프 방중 행보 주목
'자국 우선' 美·'새 세계질서' 中…"항구적 경쟁 상태로 고착될것"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첫 1년 동안 세계의 이목이 미중 간 경쟁과 갈등에 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중국과의 '관세 전쟁'을 발동했고 양국은 양보 없이 충돌했다.
양국은 초고율 관세를 주고받으며 급속히 대결 수위를 높이기도 했으나 '트럼프 1기' 때보다는 빠르게 휴전에 합의했다.
미국은 관세와 첨단 반도체 규제,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등을 앞세워 상대 약점을 공략했고, 양국은 치명상을 피하기 위해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 발씩 물러섰다.
다만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미국과 다자주의를 토대로 한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원하는 중국의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중대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양국 간 갈등은 다양한 형태로 계속될 전망이다.
◇ 트럼프 취임하자마자 '관세 전쟁' 발동…'부산 회담'으로 일시 소강 상태
'트럼프 2기'의 1년 차 미중 관심사는 우선 경제·통상 문제에 집중됐다.
지난해 1월 20일 다시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2월 4일 합성 마약 펜타닐을 문제 삼아 모든 중국산 상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최대 무역 적자국인 중국을 상대로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중국은 처음에는 미국산 에너지·농축산품 등 일부 상품을 대상으로 표적 보복을 했으나, 미국이 4월 들어 상호 관세까지 물리자 대응 수위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보복과 재보복이 반복되면서 4월 중순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총 145%의 추가 관세를, 중국은 125%의 초고율 관세를 각각 적용해 양국 무역이 사실상 단절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양국은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위급 무역 대표 회담을 열고 115%포인트씩 상호 관세를 인하하는 '90일 휴전'에 합의했다.
이어 각종 수출 통제 조치와 제재를 주고받으면서도 영국 런던(6월), 스웨덴 스톡홀름(7월), 스페인 마드리드(9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10월)로 장소를 바꿔가며 상황 관리에 나섰다.
10월 말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부산 정상회담에서 공식적으로 확전 자제에 합의하면서 이번 관세 전쟁은 일단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미국 우위 속에 중국이 끌려다니던 트럼프 1기 미중 무역 갈등 때와 달리 이번 극한 대치가 상대적으로 오래 이어지지 않은 것은 양국 모두 분쟁 장기화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수년 동안 준비해온 희토류 수출 통제나 대두 수입 중단 등 역공에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아킬레스건'을 노출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내수·부동산 침체에 높은 청년실업률, 전기차·태양광 등 전략 육성 산업의 수익성 저하로 고민이 깊어진 중국에도 그나마 경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이 미국발 관세 공세에 흔들리는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자국을 겨냥한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 정책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잠정 유예된 양국의 무역 갈등은 올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계기로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반도체와 희토류라는 강력한 공격 카드를 서로 손에 쥔 미국과 중국이 어떤 형태의 딜을 통해 타협을 이룰지, 아니면 양측 입장차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다시 첨예한 갈등을 빚으며 충돌할지 관심사다.
◇ 미국 우선주의 강화 vs 다자주의 수호자
미국과 중국은 2010년대 이후 글로벌 전략 경쟁을 본격화했고, 트럼프 1기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을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도전자로 규정하면서 경제·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트럼프 2기는 '미국 우선주의'를 한층 더 두드러지게 내세우면서도 중국을 향해서는 종종 경제적 실리를 도모하는 접근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지난해 말 공개된 트럼프 2기의 국가안보전략(NSS)은 중국을 직접 거명해가며 견제하는 표현을 자제했고 "앞으로 우리는 상호성·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해 미국의 경제적 독립성을 회복하기 위해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재조정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핵심 이익에 집중하겠다는 트럼프 2기 NSS의 취지를 '미국을 다시 지역 강국으로'로 요약하며 "향후 세계 질서는 '관리되는 무질서' 상태로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미국 우선주의' 등 트럼프발 세계질서가 구축되는 상황은 중국에는 '숨 쉴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달리 '대만 유사시' 미국의 참전 여부 등 과거 쟁점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는 작년 10월 부산 정상회담에서도 최대 안보 쟁점인 대만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중국은 '대만 무력 통일'을 언급하는 빈도와 '대만 포위 훈련' 등 군사 행동의 폭을 늘리는 한편, 미국이 자유주의적 국제 규범과 다자 무역 체제를 흔든다고 비판하면서 미중 중심의 '세계 양강 구도'를 명확히 하려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서방 세력의 중심으로 개발도상국의 맹주를 자처하며 유엔(UN) 등 국제기구에서 세몰이를 하고 스스로를 '국제질서·다자주의 수호자'로 부르거나 한국 등 미국 동맹국에까지 손을 내미는 전략 등은 중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관련된 행보로 분석된다.
◇ "세계 2차대전 이후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 종언"
전문가들은 최근 미중 갈등 상황 속에서 세계 질서가 급변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마이클 브린즈 미국 예일대 교수는 이달 초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즈 기고문에서 각국이 가치중립적·거래중심적 외교 정책 접근법을 채택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규칙 기반 국제 질서가 종언을 고했다며, 이런 흐름을 이끈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이끌 미래는 다자기구나 국제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소수의 '제국'이 경제적 영향권과 자원, 영토 통제권을 놓고 경쟁한 19세기와 유사할 수 있다고 짚었다.
중국은 유엔 중심의 전후 질서를 지키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고수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일극 체제에서 벗어나 다극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고도 주장해왔다.
자오하이 중국사회과학원 국가글로벌전략싱크탱크 국제정치연구부 주임은 지난달 자국 내 비공개 심포지엄에서 현재의 국제 구도를 미중이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벌이는 '전략적 수용'(strategic accommodation)으로 요약하기도 했다.
트럼프 2기의 향후 미중 경쟁은 근본적·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도 세계적인 범위에서 이익을 놓고 쟁탈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는다.
이와 관련해 이상현 수석연구위원은 "미중 경쟁은 완화 국면 없이 항구적 경쟁 상태로 고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새해 벽두부터 군사력을 동원해 중국의 주요 원유 공급처였던 베네수엘라 장악에 나선 것에서 볼 수 있듯 에너지 분야가 경쟁의 핵심일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자오하이 주임은 "신에너지 체계 구축 강화가 중국의 승부수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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