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13일 일본 나라현을 방문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과거사·경제·민생 전반에 걸친 한일 협력 확대에 뜻을 모았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 이후 약 석 달 만에 성사된 것으로, 셔틀외교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다.
양 정상은 이날 소인수·확대 회담을 포함해 약 88분간 회담을 진행한 뒤 공동 언론발표문을 통해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일 양국이 협력의 깊이를 더하고 그 범위를 넓혀 나가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협력 강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과거사 문제 가운데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와 관련해 구체적인 진전이 도출됐다. 양국은 1942년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에서 발생한 수몰 사고로 숨진 한국인과 일본인 희생자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세부 사항은 당국 간 실무 협의를 통해 조율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낼 수 있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고, 다카이치 총리는 “DNA 감정 협력을 위한 양국 간 조정이 진전되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등 민감한 사안 대신 상대적으로 합의 가능성이 높은 사안에서 성과를 낸 점이 주목된다.
안보 분야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한일, 한미일 삼각공조를 지속·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대북 공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이 대통령은 “동북아 지역 한중일 3국이 최대한 공통점을 찾아 함께 소통하며 협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한중일 협력의 중요성도 함께 언급해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중국과 갈등 국면에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이 중일 관계 개선의 가교 역할을 모색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는 협력 확대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양 정상은 교역 중심의 협력을 넘어 경제안보와 과학기술, 국제규범을 함께 만들어 가는 포괄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이를 위한 관계 당국 간 논의를 공식 개시하기로 했다. 인공지능(AI), 지식재산 보호 분야에서도 실무협의를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또 지난해 출범한 ‘한일 공통 사회문제 협의체’를 지방 성장 등 공통 현안으로 확대하고, 스캠 범죄를 비롯한 초국가 범죄 대응을 위해 한국 경찰청 주도의 국제공조 협의체에 일본이 참여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인적 교류 확대 방안으로 출입국 절차 간소화, 수학여행 장려, IT 분야에 한정된 기술자격 상호인정의 타 분야 확대 등을 제안했으며, 일본 측의 긍정적 반응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이번 회담 장소가 일본 고도(古都)인 나라에서 열린 점에 의미를 부여하며 “1500여 년 전 이곳에서 시작된 한일 교류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며 “온고지신의 지혜로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지난 60년의 한일관계를 돌아보고 새로운 60년을 준비하는 출발점”이라며 “한일 양국과 양 국민이 더욱 밀도 있는 교류와 협력을 통해 진정으로 더 가까워지는 ‘새로운 60년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방일을 통해 한일 양국은 과거사 관리와 안보 공조를 병행하면서 경제·사회 협력을 확대하는 실용적 관계 복원의 흐름을 이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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