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 이천영 이사장…공동체 경제로 일궈낸 자립 모델
"게토화는 절대 안 돼"… 강력한 자치와 안전 관리
"고려인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역사마을 1번지'로"
(광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우리 동포들이 중앙아시아를 떠돌며 헐벗은 유랑민으로 살았습니다. 이제 광주 고려인마을은 그들이 단순히 머무는 곳을 넘어,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역사마을 1번지'가 될 것입니다."
지난 12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낯선 키릴 문자와 중앙아시아의 향기가 가득한 고려인마을에서 고려인 동포들의 모국 정착을 돕고 있는 '대부' 이천영(68) 이사장을 만났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독립유공자 후손 등 고려인 동포 7천여 명이 형성한 국내 유일의 자치형 마을 공동체로, 지역아동센터·청소년문화센터·대안학교인 새날학교 등 40여 개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고려인마을교회 목사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02년 우크라이나 출신 불법체류자 신조야(70·여) 씨(현 고려인마을 대표)를 돕기 시작하면서 고려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2022년 고려인마을은 BBC, CNN, NHK 등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이 이사장과 마을 주민들은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현지 동포들을 위해 23억 원을 모았다. 고려인마을 특화거리 빵집과 식당 주인들, 그리고 일부 대기업과 지역 사회가 십시일반 헌금을 모아 일궈낸 결실이었다.
"한 명당 100만~300만원가량의 항공료를 마련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900명의 난민을 이곳으로 데려왔죠." 그는 가족당 보증금 300만원, 3개월 임대료, 일자리 알선, 의료비 지원 등 종합적인 정착 지원을 제공했다.
특히 NHK에서는 40분간 특집 방송을 제작했고, 일본의 수십 개 언론사가 취재를 위해 방문했다. 당시 '현대판 쉰들러 리스트'라고 불렸다.
이러한 포용의 역사는 광주시가 '포용 도시'를 선언하는 계기가 됐고, 고려인마을의 위상은 단순한 이주민 집단거주지를 넘어 국가기록물 등재와 세계기록유산 협약 체결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 이사장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물을 수집해 박물관을 세우려 할 때, 관계 당국은 유물을 '쓰레기'라 치부하며 지원을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박물관을 세우고 김병학 관장이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수집한 1만2천점의 귀한 유물들을 전시하기 시작하자, 뒤늦게 그 가치를 알아본 구청과 시청이 지원에 나섰다.
"백범 김구 선생의 '문화 강국론'을 믿습니다. 우리 광주 고려인마을은 엘리트 계층이 정착하고 문화적 자산이 풍부한 곳이어야 합니다. 홍범도 공원을 조성하고 테마 거리에 벽화를 그린 것도 모두 마을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거죠."
고려인마을 홈페이지는 지난해 하루 평균 약 40만뷰, 연간 1억 2천만 뷰를 기록하는 홍보의 장이 됐다. 이 이사장은 지난 10년 동안 매일 아침 수만 명의 기자와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홍보 메시지를 보내며 마을의 소식을 알렸다. 때로는 욕설 섞인 답장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매일 새벽 2시, 남들이 잠든 시간에 일어나 마을 구석구석을 살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이사장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마을이 슬럼화되거나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게토화'다. 이를 위해 그는 엄격한 생활지도를 한다. 밤늦게 술에 취해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범죄 징후가 보이면 사전에 강력하게 훈육하며 질서를 잡는다.
"밤에 다니기 무서운 동네가 되면 광주 시민들이 우리를 받아주겠습니까? 우리는 촘촘한 관리 체계와 자치 조직을 운영합니다. 마을의 안전이 곧 주민들의 삶을 보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선주민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일명 '주민관광청'을 설립하고 지역 주민 30명을 해설사로 양성했다. 마을의 성공이 고려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월곡동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지도록 시스템을 설계한 것이다.
마을 내 '가족 카페'는 공동체 경제의 핵심이다. 1천만 원으로 시작한 식당 등 작은 점포가 성공 모델이 돼 현재는 30여 개로 늘어났다. 주민들은 마을 안에서 소비하고, 수익의 일부를 십일조로 내 다시 공동체를 위해 사용한다.
"가방 하나 들고 광주에 온 동포가 우리 마을 시스템 안에서 열심히 일해 이제는 매년 수천만 원 넘게 기부하는 자산가가 됐어요. 이런 성공 사례가 줄을 잇고 있죠. 충북 제천 등 인구 소멸 위기를 겪는 지자체들이 우리 마을의 노하우를 배우러 오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말미, 이 이사장은 국적 회복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후손인 고려인들이 여전히 투표권도 없이 이방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1948년 이전 출국자라는 이유로 국적을 주지 않는 법적 모순은 반드시 해결돼야 합니다."
새벽에 마을을 순찰하고, 낮에는 새날학교 교장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밤에는 미래의 미술관 건립을 꿈꾸는 이천영 이사장. 그의 헌신은 차별과 소외의 상징이었던 고려인 동포들을 대한민국 문화의 주역으로 다시 세우고 있다.
"연간 천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고려인의 역사를 배우고, 맛있는 빵을 먹으며 애국심을 느끼는 마을. 그 꿈이 머지않았습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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