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빛이 가장 오래 머무는 물질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도 금일 것이다.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는 그 금빛으로 신라의 시간을 지금 이 순간까지 끌어온다.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는 신라라는 나라가 어떤 미적 감각과 기술적 야망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증언하는 금빛 문서와 같다. 1915년, 일제강점기라는 격동의 시대에 경주 보문동 합장분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 귀걸이는, 땅속에 묻혀 있던 1500년의 시간을 단숨에 현재로 불러왔다. 이후 ‘국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본질은 여전히 신라인의 삶과 권력,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이 귀걸이는 흔히 ‘굵은고리 귀걸이’라는 전시명칭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식 명칭인 ‘금제 태환 이식’이 말해주듯 구조적으로 매우 독특하다. 귀에 거는 굵은 원형 고리에서부터 여러 겹의 장식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형식은, 장식품을 넘어 착용자의 신분과 권위를 시각적으로 과시하는 일종의 ‘움직이는 상징’이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금빛 장식이 흔들리며 빛났을 모습은, 왕실 혹은 최고 귀족 계층의 위엄을 극적으로 연출했을 것이다.
가장 눈부신 부분은 지름 0.5mm도 되지 않는 수백 개의 금 알갱이와 가는 금실로 만들어진 세공 기법이다. 이 작은 입자들은 거북등처럼 구획된 면 안에 다시 꽃무늬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장식 효과를 넘어 우주와 질서를 상징하는 고대 동아시아적 문양관을 반영한다. 신라인들은 금속이라는 물질 안에 자연과 생명의 리듬을 새겨 넣었다.
거북등 모양의 구획은 장수와 불멸을 의미하는 상징 체계와도 맞닿아 있다. 무덤에 부장된 이 귀걸이가 사치품이 아니라, 사후 세계에서도 착용자의 위상과 영원성을 보장하려는 주술적 도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금이라는 재질 역시 부식되지 않는 영속성 때문에, 죽음 이후의 세계와 연결되는 물질로 인식되었다.
샛장식과 중심 고리를 잇는 부분에 새겨진 가느다란 잎 모양 무늬는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보여준다. 신라의 장인은 금속이라는 차가운 물질로 생명의 따뜻한 곡선을 구현해냈다. 이는 기술의 차원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관을 반영한 조형 언어라 할 수 있다.
샛장식의 구조 또한 인상적이다. 작은 고리들을 연결해 하나의 원을 만들고, 그 둘레에 37개의 나뭇잎 모양 달개를 단 형식은 리듬감 있는 반복과 균형을 만들어낸다. 이 반복적 구조는 신라 장신구가 지닌 음악적, 율동적 감각을 떠올리게 하며,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빛과 형태가 끊임없이 변주되었을 것이다.
가장 아래에 달린 역심엽형, 이른바 하트 모양 장식은 사랑과 생명력의 상징으로도 읽을 수 있다. 현대적 감각으로 보면 장식적 요소에 그칠지 모르지만, 고대 사회에서 이러한 형태는 풍요와 번영, 그리고 혈통의 지속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 합장분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은 이 귀걸이가 부부의 무덤에 함께 묻혔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장신구가 개인의 소유를 넘어 관계와 결합의 상징이었음을 암시한다.
부부총이라는 무덤의 성격은 이 귀걸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신라 사회에서 부부가 함께 묻힌다는 것은 애정의 표현을 넘어, 혈통과 권력의 계승을 중시한 귀족 사회의 구조를 반영한다. 이 귀걸이는 가문의 위상과 정치적 연합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5세기부터 이어져 온 신라 귀걸이 제작 기술의 정점이라는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호암미술관 소장의 금귀걸이나 양산 금조총 출토 귀걸이와 비교해도, 부부총 금귀걸이는 세공의 밀도와 장식의 복합성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신라가 국제 교류와 내부 기술 축적을 통해 동아시아 금속공예의 중심지로 성장했음을 말해준다.
당시 신라는 중국과 북방,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잇는 교역망 속에 있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유입된 기술과 문양, 그리고 재료는 신라 장인들의 손에서 독창적인 양식으로 재탄생했다. 부부총 금귀걸이는 그 결과물로, 외래 요소와 토착 미감이 융합된 신라적 황금미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굴되었다는 사실 역시 이 유물의 역사적 의미를 복잡하게 만든다. 제국주의적 고고학의 시선 속에서 수집되고 분류되었지만, 동시에 이 귀걸이는 한국 고대문화의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이 유물을 국보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 아픈 역사마저도 문화유산의 일부로 포용해 왔기 때문이다.
천오백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금빛은 물질의 안정성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라가 남긴 미적 이상과 기술적 성취가 시간의 풍화를 넘어 오늘까지 살아남았음을 의미한다.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는 그래서 장신구가 아니라, 신라라는 문명의 자화상에 가깝다.
박물관 진열장 속에서 조용히 빛나는 귀걸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과거의 누군가가 귀에 걸고 걸었을 길과 숨결이 겹쳐진다. 화려함 속에 담긴 질서, 섬세함 속에 숨은 권력, 그리고 황금 속에 봉인된 시간. 모든 것이 하나의 작은 장신구 안에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매혹시키는 이유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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