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로봇 산업의 평가 기준이 달라졌다는 점이 드러났다. 피지컬 AI는 기능 시연을 넘어 실제 투입 시점과 적용 환경을 기준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기술 구현 여부보다 일정·비용·운영 책임을 포함한 실행 가능성이 주요 판단 요소로 부상한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LG전자가 이번 CES에서 처음 공개한 가정용 로봇 ‘클로이드’는 전시 현장의 주요 관찰 대상이 됐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수건을 정리하는 가사 시연이 이뤄진 가운데 작업 속도에 대한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가사 노동을 대체하기에는 동작이 느리다는 평가였다.
속도 논쟁이 부각된 배경에는 전시장 안팎에서 형성된 비교 구도가 작용했다. 같은 CES 무대에서 산업용 휴머노이드와 가정용 로봇이 나란히 제시되면서, 로봇의 ‘움직임 속도’가 단순 비교의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빠른 동작을 선보인 휴머노이드와 비교해 클로이드의 속도가 느리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런 비교 중심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이 공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제조 공정에 투입하겠다는 일정과 함께 공개하며, 빠른 동작과 높은 기동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틀라스는 56개의 관절 자유도, 최대 50㎏ 하중, 혹서·혹한 대응 등 제조 현장을 전제로 한 사양을 갖췄다.
반복 공정과 통제된 작업 환경, 공정 내에서 실패 비용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작업 속도가 생산성 지표로 기능한다. 이런 조건에서 구현된 아틀라스의 속도는 일상 공간이 아닌 제조 공정 기준에 맞춰 설계된 결과다. 반면 클로이드의 적용 공간은 거실·주방·세탁실 등 가정 환경이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동시에 움직이고, 물체의 위치와 상태가 수시로 변하는 비정형 구조가 전제된다. 이 경우 오작동은 안전사고와 사후 책임으로 직결된다.
LG전자가 이족보행 대신 휠 기반 이동 방식을 선택한 것도 이런 사용 환경을 고려한 결정이다. 이족보행은 시각적 효과는 크지만 가정용 제품 기준에서는 안정성, 원가 구조, 유지·보수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 클로이드는 이동 속도보다 안정성과 지속 운용을 우선하는 설계 방향을 택했다.
피지컬 AI의 동작이 더디게 느껴지는 이유를 하드웨어 성능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클로이드는 사물 인식, 위치 판단, 힘 조절, 충돌 회피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7자유도 팔과 독립 관절 손가락을 활용해 파손 가능성이 높은 물체를 다루는 구조에서는 작업 속도가 물리적 이동보다 판단·제어 과정에 의해 좌우된다. 특히 가정 환경에서는 이 과정의 일부를 생략하기 어렵다는 제약이 따른다.
이 지점에서 클로이드를 단일 제품으로만 보는 시선은 한계를 드러낸다. 클로이드의 두뇌와 운영 체계를 담당하는 LG CNS는 속도 문제를 개별 로봇의 동작 성능이 아니 시스템 문제로 정의한다. LG CNS는 로봇 학습용 데이터를 수집·가공, 범용 로봇 두뇌를 현장에 맞게 미세 조정하며 관제·운영·유지보수까지 아우르는 엔드투엔드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로봇이 망설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속도 개선의 본질이라는 판단이다.
현신균 LG CNS 대표가 CES 현장에서 “하드웨어 업그레이드와 함께 행동 학습 데이터 준비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기 시연 속도를 끌어올리기보다 실제 투입 이후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학습 구조를 먼저 완성하겠다는 의미다. LG CNS는 현재 다수의 공장과 물류센터에서 개념검증(PoC)을 진행, 로봇 양산 체제가 갖춰지는 시점을 약 2년 후로 보고 있다.
속도에 대한 압박은 개별 기업 차원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정책과 연구 현장에서도 동일한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12일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 업무보고 자리에서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피지컬 AI와 관련해 “속도가 느리다”며 상용화 일정 단축을 주문했다. 이에 연구 현장은 손동작의 섬세함, 정밀 감속기, 제어 안정성 등 구체적인 성능 지표를 전제로 하지 않은 속도 경쟁은 의미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빠른 로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로봇이라는 인식이다.
속도와 완성도를 둘러싼 시각 차이는 이번 CES에서도 확인됐다. 이번 CES에서 중국 기업들은 휴머노이드와 가정용 로봇을 전면에 내세우며 존재감을 키웠다. 하이센스, TCL, 드리미 등은 춤이나 계단 오르기 등 시각적 임팩트가 큰 시연을 선보였고 관람객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다만 실제 가사나 서비스 투입을 전제로 한 시연은 제한적. 기술적 가능성은 강조됐지만, 안전·책임·운영 구조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반면, LG전자의 클로이드는 접근 방식이 달랐다. 움직임의 속도나 퍼포먼스보다 가사 작업을 하나의 시나리오로 끝까지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속도는 느렸지만, 작업 전·중·후의 판단과 제어 과정을 모두 공개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달랐다는 관측이다. 그럼에도 비교의 기준이 작업 완결성보다 체감 속도에 맞춰지면서 평가가 엇갈렸다.
LG전자가 서두르지 않는 배경에는 기술 성숙을 기다리는 것 외의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클로이드는 단일 제품이 아닌 LG전자가 추진 중인 AI 홈 고도화와 구독 기반 사업 모델, B2B 중심 포트폴리오 전환 전략에 맞춰 설계된 로봇이다.
내년부터 LG전자는 가정 환경에서 실증을 시작, 구독 서비스와 연계해 단계적으로 상용화에 나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전시용 데모를 앞세우기보다, 실제 사용 환경에서의 안정성과 운영 가능성을 먼저 검증하겠다는 접근이다.
이 과정에서 LG가 설정한 속도를 전시장 체감 속도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가정용 로봇은 투입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오작동, 유지·보수 비용을 기업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제품 출시 이후의 책임 범위가 브랜드 신뢰도와 직결되는 만큼, 초기 단계에서의 무리한 가속은 장기 사업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 LG전자가 가정 환경 실증을 전제로 속도 조절에 나선 배경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피지컬 AI의 동작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보이는 것은 단순한 속도 지연의 문제가 아니라 섬세하고 정밀한 판단과 조작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기술적 특성 때문”이라며 “현실 공간에서 로봇이 가볍고 약한 물체를 안전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힘과 질감, 접촉 상태에 대한 센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이를 제어 과정에 다시 적용하는 복잡한 처리 구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은 로봇이 투입되는 물리적 공간이나 사용 환경에 따라 요구 수준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전시장 시연이나 특정 조건에서의 동작 속도만으로 기술 수준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현재 피지컬 AI가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정확성과 안전성을 우선하는 설계 선택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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