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안 된다'는 원칙이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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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안 된다'는 원칙이 없는 사회

프레시안 2026-01-13 13:13:5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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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롯데백화점 잠실점 식당가에서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노조 활동가가 출입을 제지당하고 조끼와 머리띠 등을 탈의할 것을 요구받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백화점 보안요원은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여기는 사유지다', '다른 손님이 불편해 한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 사건은 며칠 후 롯데백화점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 얼마 전인 10월 말에는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가 '중국인 출입 금지', 이른바 '노 차이니즈'를 내걸어서 논란이 되었다. 이 카페의 업주는 한국인 손님들이 중국인들을 불편해하고 눈살을 찌푸리곤 해서 이러한 방침을 정했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성동구청이 나서서 방침 철회를 설득했고 카페에서 방침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롯데백화점에서 보안직원이 식사 중이던 손님에게 노조 조끼를 벗어라고 요구해 실랑이가 이는 장면을 담은 영상. X 갈무리.

노키즈존에서부터 반복된 익숙한 논리

비록 두 사건은 사과 또는 방침 철회로 마무리됐지만,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일을 제약할 수 있는 제도나 사회적 규범도 없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가게의 재량이다', '그런 사람들이 불편하고 민폐인 건 사실'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기시감도 느껴진다. 지난 수년간 '노키즈존' 현상에 관해서 비슷한 모습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출입이나 이용을 거부하는 업소, 노키즈존의 논리가 다른 집단에게도 적용되는 일은 종종 있었다. 2016년 서울의 한 식당에서 청각장애인의 예약을 거절하면서 '노키즈존과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노인의 이용을 거부하는 '노시니어존' 카페나 골프장, '아줌마 출입 금지'를 내건 헬스장 등도 나타나고 있다.

노키즈존을 비롯해 이러한 행태를 옹호하는 논리는 누군가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하는 것도 영업자의 자유이며, 어린이 등이 다른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불편하게 만들기에 문제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 구도에서는 마치 (대개 소수자인) 일부 이용자들의 권리 대 영업자 및 다수 이용자들의 권리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특정한 집단에게 상품·서비스 제공을 자의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차별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희박하고,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차별은 안 된다'는 원칙이 세워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공장소'라는 말이 이용자를 향해 에티켓을 지키라고 하는 데만 쓰이고 여러 사람이 공존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으며, 영업자 입장에서는 사유재산·사유지라는 것만 강조되는 모순이 이를 드러낸다.

가령 '흑인 이용 금지' 같은 방침을 내건 식당이 있다면, 노키즈존에 긍정적인 사람들 중 상당수도 '그건 좀 아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에게 피부색에 따른 차별, 인종 차별, 분리 정책 등이 잘못되었다는 (상당부분은 수입된) 상식과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노키즈존 등 다른 형태의 차별로까지 확장되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기반해 세워진 반차별의 원칙은 아직 없어서다. 그래서 여러 집단에 대해 상품·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가 무슨 카페 메뉴를 정하는 일처럼 가게의 재량으로 여겨진다. 사실 그 배경에 있는 것은 사회 다수, 주류의 시선이다. 어린이나 노인의 이용을 제한하는 가게들,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손님을 거부하는 백화점 등이 보여 주듯 그 배제의 대상은 대부분 사회적 소수자,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약자들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관계자들이 2022년 5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단식투쟁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별것 아닌 차별금지법이 중대 과제인 이유

'노○○존'들을 정하는 것이 영업의 자유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 영업의 자유란 공익을 위해 늘상 제한당하는 것이다. 예컨대 음식을 판매하는 곳은 위생 기준을 지켜야 하고, 식재료의 원산지도 표기해야 하며, 건물의 시설이나 용도 등도 감독받아야 한다. 가격표시나 간판, 광고 방식, 냉난방, 일회용품을 제공하느냐 마느냐 등도 모두 정책적 규제 대상이다. 결국 특정 집단을 영업자의 자의적 결정에 의해 거부, 배제하는 차별 행위가 영업의 자유라고 강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반차별을 건강이나 안전, 에너지 절약, 거리 미관만큼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이야말로 인권운동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차별금지법은 그렇게 즉각적인 조치나 체감되는 변화를 곧바로 만들 수 없다. 차별 행위들이 범죄가 되지도 않을 테고, 차별·혐오 행위들에 당장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무엇이 차별인지 일반적 원칙을 정의하고, 차별을 당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반차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게 하는, 어찌 보면 별것 아닌 내용이다. 그럼에도 차별을 인식하고, '차별은 안 된다'라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기에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이 금지되어야 할 차별인지,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평등과 반차별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규범이 형성될 기회조차 없이 차별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다루는 주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재화·용역 등의 제공"이다. 장사를 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나 공간과 서비스, 경험 등을 제공하는 일이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임을 명확히 하는 셈이다.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 노차이니즈존 등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져야 하는 규범과 가치 중 하나로 다른 사람과의 공존과 관용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19년째 통과되지 않고 있는 와중, 2026년 1월 22대 국회에서 이제야 처음으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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