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로봇 사업을 향한 뚝심이 결실을 맺었다. 그룹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나믹스가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세계 무대에서 주목을 받으면서다.
13일 현대차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에서 글로벌 IT 전문 매체 CNET이 선정하는 ‘최고 로봇’ 상을 수상했다. CNET은 “아틀라스는 CES 2026에서 확인한 휴머노이드 로봇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며 “인간과 협업하는 차세대 로봇을 통해 현대차그룹이 제시하는 ‘인간 중심 AI 로보틱스 비전’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완성차 기업의 틀을 깨고 로봇 플랫폼 기업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 정 회장의 ‘뚝심’이 아틀라스의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이었던 2018년 로보틱스를 그룹의 5대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듬해 타운홀 미팅에선 “현대차그룹 미래 사업의 20%는 로보틱스가 맡게 될 것”이라며 그룹 차원의 로봇 사업 육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정 회장은 2020년 회장 취임 후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미국 로봇 전문 기업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했다. 인수 지분율은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 정 회장 20%로 구성됐다. 정 회장은 총 인수금액 약 1조원 중 2400억원을 사재로 출연했다.
현대차의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 당시 시장의 반응은 엇갈렸다. 미래지향적 투자라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지만, 향후 경영 실적 향상이 불투명하다는 우려도 있었다. 1992년 설립된 보스턴다이나믹스는 군사용 로봇 개발에 역량을 집중했지만 상업화와 양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3년 구글, 2017년 소프트뱅크에 인수됐다가 현대차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아들였다.
정 회장의 투자는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양산형 모델 공개로 재조명을 받았다. 더욱이 실제 제조 현장에서 아틀라스의 사용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로봇을 적용하는 단계가 먼 미래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뜨거운 반응에 안주하지 않고 ‘사람을 위한 로봇’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 현장 적용을 목표로 개발된 아틀라스는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360도 회전하는 관절로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최대 50kg의 하중을 견디는 힘을 갖췄다. 배터리가 부족해지면 스스로 충전소로 이동해 배터리를 교체하고 즉시 작업을 재개하도록 설계됐다.
현대차는 데이터 기반 생산 체계를 활용해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역량을 고도화하고, 제조 전문성과 대량 생산 경험을 기반으로 양산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로보틱스 생태계의 외연을 늘리기 위해 국내외 대규모 투자도 단행한다.
정 회장은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양산 라인에 아틀라스를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미 효과가 검증된 부품 분류 작업 등을 먼저 휴머노이드에 맡기고, 2030년까지 반복적이거나 무겁고 위험한 작업 전반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공장 곳곳에 휴머노이드를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는 로봇 생산과 함께 로봇을 키우는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아틀라스가 투입될 HMGMA는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로 운영되는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SDF)이다. 휴머노이드가 작업하며 쌓은 데이터를 다시 AI 학습에 활용하는 구조를 갖췄다. 로봇은 로봇 메타플랜트 응용센터(RMAC)에서 가상 훈련을 거친 뒤 실제 공정에 투입되고, 현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 아틀라스는 공장 환경에 최적화된 상태로 운용할 수 있다.
현대차는 피지컬 AI 관련 첨단 기술 확보를 위해 글로벌 선도기업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지난해 1월 엔비디아와 협력을 발표했고, 올해 1월 5일(현지시간)에는 CES 2026 현장에서 구글 딥마인드와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파트너십도 발표했다.
계열사와 함께 핵심 부품 내재화를 추진하는 등 로봇 제조 원가 절감도 추진한다. 현재 중국 유니트리의 저가형 휴머노이드 G1은 1만3500달러(약 2000만원)다. 테슬라는 장기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의 생산 비용을 2~3만달러(약 3000~4400만원)로 낮출 계획이다. 현대차는 로봇의 가격과 제조 원가 등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룹사별로 현대차·기아는 제조 인프라·공정 제어·생산 데이터 등을 제공하고, 현대모비스는 아틀라스의 양산 시점에 액추에이터를 공급한다. 액추에이터는 신호를 받아 동작을 수행하는 핵심 구동 장치로, 휴머노이드 로봇 원가의 50~6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물류·공급망 흐름 최적화에 나선다.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를 모두 만들면서 로봇까지 제조하는 기업은 현대차가 거의 유일하다”며 “다양한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점도 현대차의 경쟁 우위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로봇 사업의 확산 방식으로 ‘구독형’ 모델 도입도 검토 중이다. 초기 투자 비용을 줄이며 로봇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축적한 운영 데이터를 기반으로 로봇을 고도화해 시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 장재훈 부회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CES 2026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을 멀리 가져가고 범용 로봇을 만드는지가 미래 방향의 열쇠”라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는 공장 근로자의 근로 환경 개선에 초점을 두고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외에도 로봇개 스팟, 근력 보조 로봇 ‘엑스블 숄더’ 등을 개발했다”며 “사람에게 실제로 가치 있고 도움이 되는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점”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로보틱스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해 통 큰 투자를 이어갈 방침이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총125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도 단행한다. AI 기술 고도화를 기반으로 한 로보틱스 분야에 집중하며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국내 로보틱스 생태계 조성에 주력할 방침이다.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60억달러를 투자해 AI·자율주행 등 미래 신기술과 관련된 협력도 확대한다.
정 회장은 최근 신년회에서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움직이는 실체’와 ‘제조 공정 데이터’는 빅테크 기업들도 모방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라며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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