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움의 정의 #4 로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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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다움의 정의 #4 로해 서울

더 네이버 2026-01-13 11:05:05 신고

3줄요약

화로에 물을 끓여 차를 내리는 김동현 대표.

 

무규칙이라는 규칙 

김동현
로해 서울 대표

늘 북적이는 서울 영동대로에서 경기고등학교 뒷골목으로 진입하면 직전의 소란은 간데없이 고요한 세계가 펼쳐진다. 학교 담벼락과 마주한 모던한 건물 안에는 전통 초가집의 요소를 이식한 어둑한 공간이 숨어 있다. 2025년 8월 문을 연 로해 서울이다. 공간에 들어서자 놀란 얼굴의 방문객을 반기는 이는 한국 차와 공예를 연구하는 김동현 대표다. 조선 전기 문인 매월당 김시습의 18대 후손인 그는 미국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뒤 뉴욕 미술관에서 근무하다 한국에 돌아와 조상이 남긴 <매월당집>을 바탕으로 전통차 문화를 소개한다.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어슴푸레 간접조명에 의존한 로해 서울은 매월당이 언급한 대로 바깥세상의 형상을 잊을 만한 망형(忘形)의 공간이라 하겠다.

박공지붕이 돋보이는 로해 서울 내부. 현판에는 ‘조화를 바탕으로 지은 학자의 초려’를 뜻하는 和開是序廬(화개시서려)를 새겼다. 2 새해를 맞아 입구에 오방색 실로 묶은 가래떡을 두었다. 


어린 시절부터 차와 친숙했는지 궁금하다.기억하기 전부터 어머니와 차를 마셨고 다회에도 따라갔다고 한다. 차는 집에 늘 있었기에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였다. 덕분에 차를 좋아하게 되었고 차 연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국내외 차 산지로 여행을 다녔다. 


미술사를 연구하다 한국에서 차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군 전역 후 다시 미국행을 준비하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한국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연이 닿아 재단법인 아름지기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익적 활동을 경험하니 좀 더 상업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전통을 소비하고 값을 치를 때 접점이 생길 것이라 생각해서다. 이후 본격적으로 차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매월당집>이다. <매월당집>은 차 생활에 관해 노래하는 시문집으로, 여유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 매월당이 강조한 삶의 태도를 공유하고자 했다. 이후 <매월당집>을 토대로 여러 브랜드와 협업했고, 차 맛만 소개하기보다 총체적인 경험을 선사하고자 지금의 공간을 마련했다.


여러 후보 가운데 이 건물에 이끌린 이유를 듣고 싶다. 도심이면 좋겠다는 기준을 두고 서울의 여러 지역을 탐색했다. 서촌이나 북촌도 고려했지만 전통을 경험하기 위해 잠시 방문하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았다. 그보다는 우리 전통이 자연스럽게 현대에 녹아들 만한 지역으로 강남을 떠올렸다. 근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녀 동네가 익숙한데, 이 골목은 처음 들어와봤다. 골목 안으로 들어설수록 차분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또한 현대에는 사치로 여기는 박공지붕 건물을 동시대적인 초가로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건물을 발견하고 오픈하기까지 기간은 얼마나 소요됐나? 지금도 품고 있는 꿈은 초가집을 지어 작은 다실을 여는 것이다. 그 생각으로 디자인과 재료를 구상한 지 4년 정도 되었다. 늘 그림을 그렸기에 건물을 발견하고 디자인하기까지 한 달 남짓, 이후 공사 기간도 한 달가량 소요되었다.

1 현대 작가의 작품과 공예품으로 재해석한 ‘표작도’. 2 겨울철 선보이는 유자숙차.


궁중 문화나 양반 문화보다 서민 문화에 주목하고 싶다고 언급했는데.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고, <매월당집>은 소박한 삶에 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김시습 선생은 양반가에서 태어났지만 승려가 되었고, 방랑객처럼 전국을 떠돌았다. 그러면서 존재의 덧없음을 노래하며 청빈한 삶의 태도를 강조했다. 매월당은 차를 마실 때 세속을 잊어야 한다는 뜻으로 ‘망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형태를 잊어야 한다’는 것은 세속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태도가 삶의 지향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 성장기에 곤궁했던 과거 민중의 삶을 의도적으로 지웠다. 전국의 초가집을 조사하다 보니 바닥의 장판은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었고, 민중은 흙 위에 멍석을 깔고 살았더라. 안중근 의사가 살았던 집에도 그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궁중과 양반가의 삶만 전통문화인 양 주목하는 점이 아쉬웠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과 구분되는 한국 차 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 차 문화는 더 편안하다. 중국에서 시작된 차 문화가 한중일 3국에서 각기 발전했는데, 지향점이 조금씩 다르다. 일본의 차 문화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뒤 그 안에 다른 사람을 초대한다. 맛을 평가하는 기준도 뚜렷하다. 우마미를 최상위 기준으로, 떫은맛을 하위 등급으로 여긴다. 중국은 예술의 경지로 발전해 더 아름답게 차를 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맛과 향도 다채롭게 발전했고. 한편 한국 차는 맛이 편하고 구수한데, 이는 차를 소통의 매개체로 사용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다실은 중국, 일본과 달리 차를 내는 사람과 대접받는 사람의 자리가 불명확하다. 처음에는 조상들이 왜 형식을 갖추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파고들어보니 한국 차 문화에서는 형식이 필요 없다는 점을 한결같이 강조하더라. ‘망형지우(외형을 잊고 사귄 친구)’라는 사자성어처럼 마음이 통한다면 형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정신적인 면을 강조했기에 규율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집을 짓거나 정원을 만들고 차를 마시는 등 한국 철학 전반에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가 녹아 있다. 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바로 알아채기란 쉽지 않지만 메시지를 계속 던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전에 보지 못한 공예품이 눈에 띈다. 전시작 소개를 부탁한다. 새해에 안녕을 기원하며 대문에 붙이는 호작도를 과거에는 표작도라고도 했다. 호랑이와 표범을 합쳐 범이라 묶어 불렀는데, 조선시대만 해도 호랑이를 수컷으로, 표범을 암컷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표작도를 새롭게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다 표범 가죽, 그리고 까치를 표현한 수묵화를 걸었고, 정수경 유리공예 작가의 소나무와 영지버섯 작품을 함께 배치했다. 또 출입구 앞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말린 가래떡을 오색실 장명루로 묶어두었다.


최근 한국 문화를 현대적으로 잘 표현한 사례를 떠올려본다면?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직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한국 문화를 세계인에게 스며들게 했다. 판소리를 활용한 배경음악이나 도깨비, 무당 캐릭터, 나무에 금줄을 거는 문화 등이 빠르게 스쳐갔지만 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한 시각은 캐나다에서 자란 매기 강 감독이 내부자이자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봤기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 뉴욕에서 한식이 각광받고 있는데, 파인 다이닝뿐 아니라 한식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기사식당이나 디저트 숍이 생겨나는 현상도 고무적이다.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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