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무침을 만들 때 많은 사람이 습관처럼 데친 시금치를 찬물에 헹군다. 색을 살리고 풋내를 빼기 위한 과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단계에서 시금치의 단맛과 향이 함께 빠져나간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겨울 시금치를 기준으로 보면, 조리 방식 하나만 바꿔도 맛의 밀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시금치무침할 때 보통 거치는 과정, '찬물에 헹구기'.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겨울 시금치는 다른 계절과 성질이 다르다. 빠르게 자라지 않고 땅속에서 천천히 에너지를 축적하며 자라기 때문에 수분 함량은 낮고 당도는 높다. 이 때문에 데친 뒤 찬물에 담그면 조직 사이에 머물던 단맛 성분이 물로 빠져나가기 쉽다. 특히 잎이 연한 어린 시금치일수록 손실 폭이 더 크다.
사찰 음식 대가인 선재스님 등에 따르면 시금치무침의 핵심은 데친 뒤 처리 과정이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시금치 230g을 넣어 살짝 데치는 것까지는 일반적인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차이는 건져낸 뒤다. 데친 시금치를 바로 찬물에 담그지 않고, 채반에 고루 펼쳐 담아 한 김 식히는 방식이 풍미를 지키는 핵심이다. 자연스럽게 열기를 빼주면 잎 속 수분과 당분이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데친 시금치를 채반에 펼쳐 한 김 식히면 맛있는 맛이 빠지지 않는다. / 유튜브 'EBSCulture (EBS 교양)'
이 과정에서 색이 탁해질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없다. 시금치는 데치는 순간 이미 엽록소가 안정화되기 때문에 찬물 헹굼이 색을 유지하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오히려 찬물에 담그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맛이 옅어진다. 겨울철처럼 실내 온도가 낮을 때는 자연 식힘만으로도 충분하다.
물기를 제거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손으로 세게 쥐어짜면 조직이 무너지고 풋내가 다시 올라온다. 채반 위에서 물이 빠지도록 두거나, 손으로 가볍게 눌러 수분만 제거하는 선이 적당하다. 시금치무침이 질척해지는 원인은 수분 과다보다 조직 손상에 더 가깝다.
양념은 단순할수록 시금치의 맛이 살아난다. 참기름 1큰술과 간장 반 큰술을 기본으로 하되, 통깨를 그냥 뿌리지 않고 으깨어 사용하는 방식이 풍미를 끌어올린다. 볶은 통깨를 절구나 도구로 으깨면 깨 속 기름 성분이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양념 전체에 고소한 향이 퍼진다. 마지막에 고명처럼 뿌리는 통깨와는 맛의 밀도가 다르다.
데친 시금치 물기는 제거한다. 이때 너무 꽉 짜서 모든 물기를 제거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유튜브 'EBSCulture (EBS 교양)'
가능하다면 참기름도 무치기 직전에 준비하는 편이 낫다. 참기름은 산패가 빠른 기름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둔해진다. 갓 볶은 깨를 바로 빻아 사용하거나, 여건이 된다면 채유기로 소량만 짜 쓰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 경우 기름 맛이 앞서기보다 시금치를 감싸는 역할에 그친다.
마늘과 파를 넣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일반적인 시금치무침에는 다진 마늘이 들어가지만, 마늘 향은 시금치 고유의 흙내음과 단맛을 덮어버린다. 양념을 줄일수록 재료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겨울 시금치처럼 맛이 응축된 재료일수록 효과가 분명하다.
완성 단계에서는 양념장에 시금치를 넣고 손으로 조심스럽게 버무린다. 이때 비비듯 섞기보다 아래에서 위로 가볍게 들어 올리는 방식이 좋다. 양념이 잎 표면에 얇게 입혀지듯 묻는 것이 이상적이다. 과하게 치대면 수분이 다시 나오면서 맛이 묽어진다.
풍미 2배로 올라간 '시금치무침'. / 유튜브 'EBSCulture (EBS 교양)'
이 방식으로 만든 시금치무침은 단맛이 먼저 느껴지고, 뒤에 고소함이 따라온다. 씹을수록 풋내 대신 옥수수처럼 은은한 단향이 올라오는 것이 특징이다. 별다른 양념을 추가하지 않아도 밥 반찬으로 충분한 밀도를 가진다.
찬물 헹굼을 생략하는 방식은 모든 채소에 적용되는 만능 공식은 아니다. 여름 시금치처럼 조직이 연하고 떫은맛이 강한 경우에는 짧은 찬물 헹굼이 필요할 수 있다. 다만 겨울 시금치, 특히 밭에서 바로 수확한 신선한 시금치라면 자연 식힘이 맛을 지키는 쪽에 더 가깝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