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쿨 경쟁률 급증, AI 취업난에 도피성 진학 늘어
로펌 신입 크게 줄여…톱 14 법대 서열도 빅 6로 양극화
빅테크 시장이 새 수요 창출, 로스쿨 입시경쟁 부채질
한국 "AI로 변호사는 똥값"…인력수급 개편 시급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미국 로스쿨 시장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로스쿨 지원자 수가 전년 대비 20%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열기는 단순한 신분 상승의 욕구라기보다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불안과 생성형 AI 확산이 만들어낸 방어적 선택에 가깝다.
로스쿨이 똘똘한 청년들의 도피처가 된 데에는 AI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AI는 판례 검색, 계약서 초안 작성, 기업 실사 보조 등 과거 주니어 변호사들이 전담하던 업무를 초스피드로 대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뉴욕의 대형 로펌들은 신입 채용 규모를 약 30% 축소하며, 로스쿨 신입생을 입도선매해 내부에서 육성하던 전통적 모델의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로스쿨 서열 구조도 흔들고 있다. 한때 로펌 취업의 보증수표로 여겨졌던 상위 14개 대학(T14)은 이제 하이퍼 3(예일·하버드·스탠퍼드)와 빅 6(컬럼비아·시카고·뉴욕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6대 8' 구조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AI는 평준화를 가져오기보다 오히려 서열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이 로스쿨로 몰리는 이유는 뭘까. 변호사 자격증이 지닌 제도적 힘 때문이다. 기술 변화에 직격탄을 맞은 컴퓨터과학 등 공학 계열과 달리, 법률 시장은 배타적 면허권이라는 강력한 보호막을 갖고 있다.
여기에 대형 로펌의 대안으로 떠오른 사내변호사 시장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의 매출 확대와 함께 개인정보 보호, 반독점 규제, ESG 등 복합적인 법적 수요가 폭증하면서 워라밸과 고연봉이 보장된 사내변호사 자리가 블루오션으로 뜬 것이다.
반면 한국 법조계의 현실은 암담하다. "변호사는 똥값"이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한국 역시 법학적성시험(LEET) 응시자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이는 시장의 성장이 아니라 문과 취업망 붕괴가 가져온 도피성 진입의 성격이 짙다.
더욱 큰 문제는 진출로가 갈수록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판검사, 재판연구원, 로펌, 사내변호사로 굳어진 경로 속에서 배출 인원만 급증하다 보니 과당 경쟁과 수임료 하락이 심화하고 있다. 과거 부장 판검사 출신들이 누리던 전관예우 시장마저 붕괴하고 있다. 여성 판검사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고 사법 투명성이 강화되면서, 인맥에 기대던 전관 특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됐다.
미국의 로스쿨 열풍이 도피처이면서도 AI와 기술 규제가 만들어낼 새로운 수요에 대비하는 성격을 지닌다면, 한국은 출구가 막힌 상태에서 입구만 붐비는 전형적인 동맥경화 현상을 보인다.
이제 한국 법조계는 단순히 변호사 배출 규모를 조절하는 논의를 넘어 왜 미국처럼 법조 인력이 사회 곳곳의 다양한 전문 영역으로 확장되지 못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 사법고시 출신 꼰대 세대가 제도 개편에 앞장서긴커녕 "일찍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말로 현재의 위기를 관전하는 한, 법조 시장의 미래는 달라지기 어렵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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