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 내무부는 지난주 단속을 통해 불법 체류자 약 1만9천 명을 체포하고, 이 가운데 1만 명 이상을 본국으로 추방
사우디아라비아가 불법 체류자 단속을 대폭 강화하며 중동 국가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인구·노동시장 통제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사우디 내무부는 지난주 단속을 통해 불법 체류자 약 1만9천 명을 체포하고, 이 가운데 1만 명 이상을 본국으로 추방했다고 밝혔다. 단속 대상에는 불법 입국자, 비자 만료 체류자, 불법 취업자가 모두 포함됐다. 사우디 정부는 이를 “국가 노동시장 질서 확립과 사회 안정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사우디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불법 체류자 단속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사우디가 국가 차원에서 인구 구조와 노동시장을 직접 설계하는 체제로 본격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과거 석유 수익에 의존하던 국가 모델에서 벗어나, 비전 2030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개편하고 자국민 고용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사우디는 중동 최대의 이주 노동자 수용국이다.
전체 인구 약 3,600만 명 가운데 외국인은 약 1,300만 명에 달한다. 건설, 유통, 서비스, 운송, 제조업 전반에 외국인 노동력이 광범위하게 투입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사우디 청년층의 실업 문제를 심화시키고, 국가 복지 부담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사우디 정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사우디화(Saudization)’ 정책을 통해 자국민 고용 의무 비율을 강화해 왔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는 사우디 국적자 고용 비율을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영업 제한과 벌금을 부과한다. 여기에 불법 체류자 단속을 결합함으로써 노동시장 전체를 국가 통제 하에 두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단속은 그 강도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우디 정부는 전국 단위 합동 단속을 통해 불법 체류자의 이동 경로, 고용주, 숙소까지 추적하는 방식으로 단속망을 촘촘히 구축했다. 체포된 불법 체류자들은 즉각 보호소로 이송된 뒤 본국 송환 절차에 들어갔다. 고용주 역시 불법 고용이 적발될 경우 형사 처벌과 영업정지 조치를 받게 된다.
사우디 내무부는 이번 단속이 일회성 조치가 아니라 상시 단속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불법 체류를 ‘사회적 일탈’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을 훼손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치안 문제, 복지 재정 누수, 임금 덤핑 구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사우디가 이처럼 인구와 노동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관리하려는 배경에는 경제 구조 전환이라는 절박한 과제가 놓여 있다. 사우디는 석유 수입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장기적으로 탈석유 시대에 대비한 산업 다각화가 불가피하다. 관광, 스마트시티, 방산, 반도체, AI, 콘텐츠 산업까지 광범위한 산업 육성 계획이 추진 중이다.
문제는 산업 전환의 주체가 될 청년 인구의 고용 구조다.
사우디 청년층은 높은 학력 수준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 선호가 강하고 민간 부문 취업 기피 현상이 뚜렷하다. 민간 기업은 상대적으로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해 왔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산업 전환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우디 정부의 판단이다.
결국 불법 체류자 단속은 단순한 이민 통제가 아니라, 사우디식 성장 모델의 토대 재설계 작업이다. 노동시장의 가격 질서를 바로잡고, 자국민의 민간 부문 진입을 유도하며, 국가 재정 부담을 통제하는 복합적 정책 패키지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권 논란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사우디의 단속 방식이 과도한 물리력 사용, 구금 환경 악화, 절차적 권리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특히 아프리카, 남아시아 출신 저숙련 노동자들이 주요 단속 대상이 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사우디 정부는 이에 대해 “불법 체류는 국가 법질서를 위반한 행위이며, 합법 이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 불법 체류자가 늘어날수록 합법 체류 노동자의 임금 하락, 근로 조건 악화, 사회보험 사각지대 확대가 심화된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단속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중동 국가 가운데 사우디의 이번 조치는 새로운 기준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UAE, 카타르, 쿠웨이트 등 역시 대규모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지만, 최근 들어 자국민 고용 확대와 이민 통제 강화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특히 AI와 자동화 기술 확산으로 저숙련 노동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면서 외국인 노동 의존 구조 자체를 재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우디는 이 흐름을 가장 빠르고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국가가 인구 구조를 관리하고 노동 공급을 통제하는 방식은 자유시장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사우디는 스스로를 ‘국가 설계형 성장 모델’로 규정하고, 시장보다 국가의 역할을 앞세우는 전략을 택했다.
이번 불법 체류자 대대적 단속은 그 선언적 출발점에 가깝다. 사우디는 이제 단순한 산유국이 아니라, 인구와 노동, 산업 구조를 통합 설계하는 통제형 발전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중동의 질서가 바뀌고 있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사우디가 있다.
석유 이후를 준비하는 국가의 방식은 각국마다 다르다. 사우디는 시장에 맡기기보다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길을 택했다. 불법 체류자 단속은 그 빙산의 일각이다. 인구와 노동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겠다는 사우디의 선택이 중동 전체의 정책 방향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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