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디어뉴스] 김혜인 기자 = 이 작품은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승패와 기록 대신, 한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속도를 발견해 가는 시간을 차분히 따라간다. 감독 오쿠야마 히로시는 빙판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발끝, 숨을 고르는 순간의 침묵,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번지는 표정을 집요하게 포착하며 성장의 결을 만들어낸다. 타쿠야의 움직임은 처음엔 어설프고 불안정하지만, 사쿠라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과정 속에서 점차 자신만의 리듬을 얻는다. 이 변화는 기술의 숙련이 아니라 ‘나답게 서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 가깝다.
소년의 변화 곁에는 피겨 스케이팅 코치 ‘아라카와’가 있다. 과거의 선택과 현재의 삶 사이에서 미묘한 균열을 안고 있는 그는 타쿠야에게 단순한 지도자를 넘어, 침묵으로 길을 내주는 어른의 얼굴을 보여준다. 말로 가르치기보다 기다리고, 밀어붙이기보다 지켜보는 태도는 이 영화의 윤리이자 미학이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기대, 그리고 그로부터 어긋나는 순간들이 잔잔한 파문처럼 번져가지만, 영화는 갈등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빙판 위의 균형처럼, 관계의 균형이 어떻게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지를 조용히 응시한다.
시각과 청각의 조합 또한 인상적이다. 눈과 얼음, 겨울빛이 만들어내는 화면은 차갑지만 투명하고, 음악은 감정을 앞서지 않으면서 장면의 온도를 미세하게 조율한다.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연습 장면과 눈길을 가르는 아이들의 실루엣은, 성취의 순간보다 그 이전의 망설임과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감동은 폭발적이기보다 스며드는 방식으로 찾아온다.
결말에 이르러 영화는 쉬운 답을 내놓지 않는다. 선택의 결과는 단정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각자의 속도로 남겨진다. 그 여백은 관객에게 질문을 돌려준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남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리듬을 허락받는가. 빙판 위에서 넘어지는 순간조차 배움이 될 수 있다면, 실패와 주저 역시 성장의 일부가 아닐까.
마이 선샤인은 화려함 대신 정직함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겨울의 끝에서 봄을 약속하지 않으면서도, 햇빛이 비칠 자리를 남겨둔다. 삶의 방향을 막연히 잃어버린 이들에게, 이 작품은 속도를 늦추고 귀 기울여 보라고 말한다. 빙판 위에서 처음으로 균형을 잡던 소년처럼, 우리 각자에게도 조용히 빛나는 ‘선샤인’의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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