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지영 기자 | 보험사의 지급 구조 방식이 이전의 '만기 도래' 중심에서 '생애 전반'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사망보험금이나 환급금을 생전에 분할 수령하거나 조기 인출할 수 있는 상품이 증가하면서, 보험 상품이 사후 보장을 넘어 생애 현금흐름을 관리하는 금융수단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보험업계를 중심으로 가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험금을 분할 수령하거나, 필요 시 환급금을 조기 인출할 수 있는 이른바 현금 유동화형 상품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이전의 만기환급형이나 종신보험 상품이 장기 보유를 전제로 보험금과 환급금을 만기 도래나 일정 시기, 또는 사망 시점에 지급하던 기존 지급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보험사들은 최근 현금 유동화 구조를 상품 개발의 핵심 축으로 삼고 특약과 선택 옵션을 확대해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종신보험의 생존연금 전환 기능, 건강보험의 생활자금 지급 옵션, 치매·간병보험의 단계별 선지급 구조 등이다.
특히 보장성 종신보험을 중심으로 사망보험금의 활용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전이암 진단 시 사망보험금의 일부를 연금 형태로 미리 지급하거나, 생전에 수령한 보험금을 납입보험료에서 차감한 뒤, 잔여 금액을 환급금으로 돌려주는 방식도 도입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흐름에 대해 보험사들이 상품 설계를 전면 재편하며 보험금 활용 시점을 앞당기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가 전 보험사로 확대되면서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는 9억원 이하 금리 확정형 종신보험에 가입한 계약자가 만 55세 이상이고 보험료를 완납한 경우, 사망보험금의 최대 90% 금액을 연금처럼 전환해 수령할 수 있는 상품이다. 지난 10월 첫 상품 도입된 이후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1200여 건이 신청돼 57억원이 지급됐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신한라이프·KB라이프 등 5개 생명보험사를 중심으로 제도를 시범 운영했으며, 지난 2일부터는 이를 전체 보험사 19곳으로 확대 적용했다. 대상 계약은 총 60만건으로 지난해 11월 말 기준 25조 6000만원에 달한다.
그동안 대면 고객센터나 영업점을 통해 신청이 가능했으나, 앞으론 비대면 신청도 허용된다. 다만 비대면 채널을 통한 신청은 각 보험사의 시스템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또한 제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올해 3월경 1년 치 연금액을 월 단위로 지급하는 새로운 연금형 상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실제로 한화생명은 올해 1월 업계 최초로 사망보험금 유동화에 대한 비대면 신청 시스템을 도입, 모바일 화상상담을 통해 본인 확인부터 신청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특히 고령자나 디지털 활용도가 낮은 고객도 비교적 손쉽게 연금 전환을 선택할 수 있다.
연금 상품 자체의 구조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 신한라이프는 7일 국내 최초로 톤틴(Tontine) 구조를 적용한 '신한톤틴연금보험'을 선보였다. 톤틴연금은 사망하거나 중도 해지한 가입자의 적립금을 생존 가입자에게 재분배해, 생존 기간이 길수록 연금 수령액이 증가하는 구조다. 개인이 아닌 집단이 장수 리스크를 분담하는 방식으로, 초고령 사회에 적합한 연금 모델로 평가받는다.
신한라이프는 연금 개시 이전 사망 시 발생할 수 있는 보장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납입보험료 또는 적립액의 일정 수준을 지급하도록 설계했다. 장기 유지 가입자에게는 연금 개시 보너스를 제공해 안정성을 강화했다.
◆ 조기 지급·연금화 확산…생명보험, 노후소득 관리 수단 진화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소비자 니즈의 전환이 작용하고 있다. 기대수명은 늘어난 반면 정년이 짧아지면서 은퇴 후 소득 공백에 대한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 안정적 현금흐름을 확보하려는 요구가 증가하고 50~60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의료·간병비 부담이 현실화되며 생존 기간 중 보험금을 활용하려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보험을 사망이나 질병 시 보장을 받는 수단이 아니라, 생애 전반의 현금흐름을 관리하는 금융자산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품 구조에 변화가 필요해진 것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조기 지급형 구조는 전략적 의미가 크다.
저축성 보험 판매가 위축되고 보장성 보험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는 환경에서, 차별화된 지급 구조는 영업 현장에서 유효한 경쟁 수단으로 사용된다. 보험금의 일부를 생전에 지급함으로써 가입자의 체감 효용과 계약 유지율을 높일 수 있다. 때문에 조기지급형 특약과 연금 전환 옵션은 주요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조기 수령이 항상 소비자에게 유리한 선택은 아니다. 보험금을 앞당겨 받을 경우 장기적으로 총수령액이 줄어들 수 있으며 기대수명 연장과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노후에 자금 여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조기 지급의 유연성과 장기 보장의 안정성 사이의 균형이 향후 상품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도 설명 의무 강화와 비교 공시 확대 등을 통해 소비자 보호 장치 보완에 나서고 있다. 보험사들 역시 지급 구조 조정과 환급률 차등화 등을 통해 재무 건전성 관리에 힘을 싣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사망 보장에서 생애 소득 관리로 생명보험의 역할이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조기 지급형 특약과 연금 옵션은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며, "단기 판매 경쟁보다 소비자 이해와 장기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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