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검찰청사의 깊숙한 곳, 영수증 없이 집행되던 이른바 통치자금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26년도 총지출 728.0조 원이라는 거대한 재정의 물결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권력의 가장 민감한 구석을 건드리는 법무부와 검찰의 특수활동비 예산이 베일을 벗었다. 지난 12월 2일 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에서 가장 상징적인 숫자는 절반 넘게 잘려 나간 31억 5,000만 원이라는 검찰 특수활동비의 최종 낙찰가였다. 728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에 비하면 미미한 푼돈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 숫자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권력기관의 지출을 어떻게 통제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기록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석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5년 9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6년도 법무부 예산안은 총 4조 6,973억 원 규모였다. 이는 2025년 대비 6.3% 증가한 수치로, 재범 고위험군 관리와 인공지능 법무 행정 시스템 구축에 상당한 재원이 배정되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시선은 엉뚱한 곳에 꽂혔다. 2025년 본예산에서 전액 삭감되었던 검찰 특수활동비 72억 900만 원이 정부안에 슬그머니 다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수사나 정보 수집 활동에 한정해 영수증 없이도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다. 하지만 그동안 검찰이 이 예산을 격려금이나 회식비, 이른바 떡값으로 유용해 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은 이를 좀비처럼 되살아온 특권 예산이라 규정하며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한 법사위 위원은 예산 심사 도중 내역이 입증되지 않는 것은 전액 삭감할 수밖에 없다며 내역을 입증하라고 호통을 쳤다. 특히 시민단체와 뉴스타파 등 언론이 검찰의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을 분석해 오남용 사례를 폭로하자 국회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72억 원의 예산은 단 하룻밤 사이에 31억 5,000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는 단순히 돈을 깎은 것이 아니라, 입증되지 않는 기밀은 존재할 수 없다는 국회의 선전포고였다.
"당신 검사 해봤어?": 특권 의식과 예산 심의의 충돌
이번 예산 전쟁의 이면에는 검찰이라는 거대 권력 기관과 입법부 사이의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 정부라는 이름에 걸맞은 진정한 개혁의 성과를 내려면 권력기관들의 특권적 예산부터 먼저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이 특수계급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 헌법을 무시하고 특활비 사용 내용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심의 과정에서는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체포영장을 거부하며 했다는 "당신 검사 해봤어?"라는 발언이 다시금 회자되며 논란을 불렀다. 야권은 이러한 발언이야말로 검찰의 뼛속까지 찌든 특권의식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영수증 없는 돈인 특활비를 아예 업추비(업무추진비)나 특경비(특정업무경비)로 전환하여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증빙자료를 성실히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의 실무 경비인 특정업무경비까지 삭감 논의 대상에 오른 것은 검찰 구성원 1만여 명의 사기를 꺾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은 특활비 집행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며 제기된 문제의식이 사장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결국 여야는 마약 수사나 공공 수사 등 필수적인 기밀 활동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예산을 남겨두는 타협안에 합의했다.
특정업무경비의 생존과 성과 관리의 압박
특활비가 대폭 칼질을 당한 반면, 검찰 수사관들의 실무 인건비 성격인 특정업무경비는 국회 본회의 합의 과정에서 일부 보전되었다. 이는 수사 기능 자체를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는 여당의 주장과, 증빙 가능한 지출은 허용하겠다는 야당의 원칙이 만난 지점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다. 국회는 이번 예산안에 검찰의 예산 사유화 방지를 위한 강력한 부대의견을 달았다.
이제 검찰은 728조 원이라는 거대한 재정 설계도 속에서 자신의 몫인 31억 원을 쓰기 위해 매 순간 국회의 현미경 심사를 견뎌야 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장우현 소장은 2026년 예산안 토론회에서 적극적인 재정 운용 방향을 제시한 만큼 증거 기반 성과 관리와 성과 평가를 바탕으로 운영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조언은 복지나 연구개발 예산뿐만 아니라, 가장 폐쇄적이었던 검찰의 금고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법무부는 삭감된 특활비 대신 61억 원이 투입되는 인공지능(AI) 법무 행정 시스템 구축이나 54억 원 규모의 재범 고위험군 관리 강화 예산 등 현대적인 사법 행정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권력의 도구로서의 예산이 아닌,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예산으로의 체질 개선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먹칠 뒤에 가려진 민주주의의 비용
검찰 특수활동비 31.5억 원은 2026년 한국 재정이 기록한 가장 치열한 정치적 승부의 산물이다. 728조 원이라는 압도적인 확장 재정 기조 속에서 유독 이 작은 항목이 이토록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돈의 액수가 아닌 돈의 성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의 비밀금고가 존재한다는 의혹과 장부에 먹칠을 한 채 제출된 영수증들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권력자들의 쌈짓돈으로 전락시키지 않겠다는 입법부의 의지는 51.6%라는 위태로운 국가채무 비율 속에서도 한국 민주주의가 지불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비용으로 남았다. 728조 원의 거대 예산 중 18번째 조각은 권력의 심장부를 향한 투명성의 칼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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