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 행정통합, 시민이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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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 행정통합, 시민이 결정해야 한다

프레시안 2026-01-13 05:00:29 신고

3줄요약

2024년 11월 시작된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는 2025년 12월 5일 충남 타운홀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긍정적 언급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으로 지역균형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전과 충남이 단순한 협력 수준을 넘어 대규모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후 대통령과 대전·충남 국회의원 간담회가 열렸고, 대전·충남 통합 및 통합 지자체장 선출 방안이 제안되었다. 민주당 내에는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권 발전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지역 국회의원들은 타운홀미팅과 간담회, 각종 행사장에서 '통합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물게 대통령과 여야 거대 정당, 지역 정치인이 함께 행정통합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통합의 시계는 매우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시계의 주인은 대전·충남의 시민이 아니다. 시민들은 충분한 정보 공유와 학습의 기회 없이, '어' 하는 순간 통합 논의의 급류에 휩쓸리고 있다. 대전·충남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를 중심으로 일부 반대 성명이 발표되고 있지만,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학습과 숙의의 공론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통합 청사의 위치, 통합 시의 명칭과 같은 파편적 정보가 '팝업창'처럼 던져지며, 찬반을 둘러싼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현재의 문제는 현재의 구조로 해결할 수 없다

행정통합에 반대하는 의견을 살펴보면 첫째로 제기되는 쟁점은 '지역정체성'이다. 정체성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누적된 경험과 생활 속에서 형성된 문제 해결의 자산이다. 지방이 분절되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진단의 핵심은 '크기'가 아니라 어떤 기능을 어떻게 묶어 협력할 것인가에 있다. 초광역정부라는 단일한 결정구조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한 기능적협력, 즉 거버넌스가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이른바 '규모의 경제'는 착시에 가깝다는 비판이다. 집약적 도시인 대전과 도농복합 지역인 충남은 산업구조, 생활권, 재정 여건, 정책 수요, 행정구조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를 하나의 행정단위로 묶을 경우 비용 증가뿐 아니라, 오히려 정책의 정밀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비대해진 수도권에 대응하기 위해 메가시티를 만든다는 논리 역시, 수도권의 경쟁력이 통합이 아니라 기능적 집적과 네트워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효율성은 크기보다 구조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셋째, 통합이 균형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균형발전은 집중을 키운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형 거점의 형성은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광역 내부의 격차로 이전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우려다. 행정 단위가 거대해질수록 주민의 목소리는 행정에 전달되기 어려워지고, 광역정부로 권한이 집중되면서 기초지자체의 자율성이 약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사실상 처음 시도되는 초광역 통합임에도 불구하고, 관료와 정치권 주도의 탑다운 방식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들은 지금이라도 통합 논의를 멈추고, 투명한 정보 공개와 함께 주민이 학습과 숙의를 통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론장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찬성 측의 논리는 다르다. 첫째,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지방 주도 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라 말한다. 대통령과 여야 정당, 지역 정치인이 동시에 통합을 언급하는 상황은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 드문 순간이라는 것이다. 중앙집중이 심하고 지방자치 경험이 짧은 한국 사회에서, 통합을 통해 대응력을 높이고 지역 내부의 협력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특별법을 통한 사무·권한 이양이 이루어질 경우, 재정 자율성 역시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둘째, 수직적 권력 구조의 재설계 가능성이다. 약 350만 명 규모의 광역정부가 탄생하면 중앙정부로부터 재정, 입법, 사업 권한을 이양받을 수 있는 협상력이 강화된다. 나아가 특별법에 주민 참여와 자치권 강화를 명시함으로써 광역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기초지자체와 읍·면·동으로 재배분하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셋째, 분절된 행정체계의 극복이다. 이미 대전과 충남의 생활권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대전-금산, 대전-논산 등 인접 지역의 교류는 일상화되었지만, 행정 경계로 인해 교육·소방·복지·농업 등 생활 밀착 정책은 통합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넷째, 규모의 경제를 통한 행정 효율성과 대외 경쟁력 확보다. 중복된 연구용역과 축제, 홍보 비용을 줄이고, 도로·철도·대중교통 체계를 통합해 주민 편의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대전의 R&D 인프라와 충남의 제조 기반이 결합할 경우 연구-제조 선순환 구조의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기대도 제시된다.

이처럼 찬반 논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졸속 통합'과 '실질적 권한을 확보할 기회로서의 통합'이라는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지만, 공통의 문제의식도 분명하다. 현재의 구조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마주한 가장 큰 난관은 이 '강력한 추진력' 그 자체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 지도부가 보여주는 속도감은 효율적일 수 있으나,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는 심각한 결함을 내포한다. 현재의 논의가 엘리트 중심의 '정치적 합의'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가 필요한 이유

정치적 합의는 필요하다. 예산 배분과 권한 이양, 특별법 제정은 제도권 정치의 역할이다. 그러나 그것은 행정구조전환이라는 집의 '골조'를 세우는 일에 불과하다. 주민의 권리와 지역의 미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시민사회의 '사회적 합의'다. 정작 집은 리모델링하는데 거기에 살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기괴한 현실을 만들 수는 없다. 정치적 합의만 있고 사회적 합의가 부재할 경우, 행정구조의 전환 이후 현장에서의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사회적 합의만으로는 정책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필요한 것은 정치적 합의와 사회적 합의가 맞물려 작동하는 민주적 정당성의 구조다.

이 지점에서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정치적 합의와 사회적 합의를 결합할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시민의회를 제안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여론 수렴 기구를 넘어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시민의회는 무작위 추출(Sortition)과 숙의(Deliberation)라는 두 축을 통해, 대의제가 포착하지 못했던 주민의 진의와 공공성을 정교하게 드러낸다. 시민의회는 수만 개의 픽셀이 모여 하나의 정밀한 이미지를 완성하는 디지털 사진과 같다고 한다. 개별 픽셀은 각기 다른 색을 지닌 평범한 존재일지라도, 성별·연령·지역·정치적 성향이라는 인구통계학적 정밀성을 갖춘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대전·충남이라는 공동체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무작위추출의 표본'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특정 이익단체나 목소리 큰 소수가 여론을 왜곡하기 쉬운 기존 공청회와 달리,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평범한 상식을 가장 정확하게 대변한다. 또한 제도권 정치인의 정파성과 공천이익 때문에 치우쳐지는 의견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다. 이것이 바로 엘리트 민주주의가 도달하지 못한 '시민대표성'이다.

둘째, 시민의회는 정보에 기반한 숙의를 통해 여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일반적인 여론조사가 충분한 정보 없이 즉각적으로 표출되는 '반응(Reaction)'이라면, 시민의회의 결론은 전문가의 설명을 학습하고 찬반 양측의 논거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도출된 '판단(Judgment)'이다.

시민들은 시민의회라는 장 안에서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며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내 지역에 무엇이 이득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 공동체 전체를 이롭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게 되는 이 과정은 단순한 다수결을 넘어 공공선에 대한 합의로 나아가는 민주적 성장의 경험이다. 행정통합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일수록, 이러한 숙의의 과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마지막으로 시민의회는 정치권이 통합 여부를 둘러싸고 정쟁에 빠질수록, 정파성에서 자유로운 평범한 시민들이 도출한 권고안은 그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사회적 권위를 갖는다. 시민의회는 정치인들에게는 정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민주적 출구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직접 결정에 참여했다는 주체적 만족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부여한다.

물론, '시민의회'에 대한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는 대표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과연 무작위로 선출된 일부 시민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기존 대의민주주의에서 대표성이 '투표를 통한 위임'에 기반한다면, 시민의회의 대표성은 '축소된 전체 시민', 다시 말해 대전과 충남의 인구 구성비(성별, 연령, 지역, 통합 찬반 성향 등)를 미시적으로 복제한 '작은 대전·충남'을 구성하는 데서 나온다. 또한 무작위추출은 '침묵하는 다수'의 상식적판단을 공론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이것이 바로 엘리트 민주주의가 도달하지 못한 진정한 대표성이다. 결국 대표성의 문제란, 주민의 의사가 얼마나 정확하게 정책 결정 과정에 투사되고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과연 평범한 시민이 복잡한 행정통합 문제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시민의회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투표하는 장이 아니다. 시민들은 전문가로부터 객관적인 정보를 학습하고, 찬반 양측의 논거를 충분히 청취하며,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토론 촉진자)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이고 정교한 토론을 수행한다. 숙의 과정을 거친 시민들은 더 이상 개인적 이해에 매몰된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책임지는 능동적 정치 주체, 나아가 '입법적 주체'로 성장한다.

마지막으로 시민의회가 결국 무작위 추출된 소수의 의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 결합을 통해 충분히 보완될 수 있다. 시민의회에 AI 민주주의 기술을 접목하면, 숙의의 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참여의 외연을 대폭 확장할 수 있다. AI는 토론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소수 의견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복잡한 쟁점을 데이터로 분석·시각화하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민의회 외부의 수만 명의 시민과 쌍방향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시민의회는 훨씬 풍부하고 다층적인 공론을 생산할 수 있다.

결국 방법론으로서의 시민의회는 행정통합의 찬반을 가르는 단순한 심판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지방행정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민주적 혁신의 장이 될 수 있다.

대전·충남 통합, 시민들이 민주주의 주인으로 등장할 시간

대전·충남행정통합은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문제이다.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이라는 위기는, 지금의 국가 운영과 지방 행정 구조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행정 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구조로 결정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 것인가다. 즉 통치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한 때다.

지금과 같은 정책 결정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당 의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대통령 중심제와 여의도 엘리트 정치가 지닌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문제 해결의 한계에 봉착한 관료제와 엘리트 정치가 여전히 탑다운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과 다르지 않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적·법적 개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생활권, 정체성, 그리고 지방자치의 미래에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더 나아가 이 논의는 향후 대한민국 전반의 초광역 통합 정책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이 과정이 민주적으로 설계되지 못한다면, 그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시민의회를 열어 시민들이 새로운 사회계약의 주체로서 함께 논의하고, 판단하고, 그 결과를 다시 피드백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지역의 미래 비전을 스스로 그리고, 그 비전을 정책 결정 과정 속에서 직접 구현해 나가는 로컬 민주주의의 강화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질문을 멈출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공동체를 어떤 원칙과 가치로 운영할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결론이 아니라 그 질문을 시민 스스로 던지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민주주의의 시간이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 간담회에서 충남·대전 통합 관련 참석자들의 의견을 거수로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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