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이란 시위에 대한 정권의 진압이 격화하며 인권단체 집계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정부 행위가 금지선(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며 강력한 선택지를 고려 중이라고 경고했다. 이란 정부는 12일(이하 현지시간) 상황이 통제 중이라며 인터넷 접속 또한 재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 진압 끝에 시위가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대두된다.
11일 미국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이날까지 이란 전역 186개 도시, 585곳에서 발생한 시위 관련 544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 시위참여자가 483명으로 대다수였고 어린이 8명 및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 5명도 숨졌다. 보안군 사망자는 4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날 이 단체가 집계한 사망자 수 116명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인데, 단체는 추가로 사망 보고 579건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혀 사망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단체는 확인된 구금자 수도 1만681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이 또한 이 단체의 전날 집계(2638명)의 4배가 넘는다.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NGO)은 이란 시위에서 시위대가 최소 192명 숨졌다고 집계했다. 그런데 해당 단체는 확인되지 않은 보고 및 소식통들을 언급하며 2000명 이상이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란 정부가 공식 사망자 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고 대부분의 국제 언론이 이란 내부에서 취재할 수 없으며 당국이 인터넷 연결을 차단해 정보를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단체들의 집계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망자 수가 과소 집계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지난달 28일 인플레이션, 화폐 가치 하락 등 경제 불만으로 인해 테헤란의 상인들이 시작한 이번 시위는 곧 체제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이란 정부는 초기엔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 듯 했지만 시위가 가라앉지 않자 지난 8일 인터넷 접속 및 국제전화를 차단해 외부 소통을 막은 뒤 본격적인 강경 진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란 외무 "상황 통제·인터넷도 재개될 것"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 <AP> 통신을 보면 12일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주말이 지난 뒤 "현재 상황이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시위가 트럼프 대통령 "개입 구실을 만들기 위한 폭력적 유혈 사태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아락치 장관은 그러면서 "우리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지만 대화에도 임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아락치 장관은 인터넷이 곧 복구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알자지라를 보면 카타르 조지타운대 이란 분석가 메흐란 캄라바는 이란 지도부가 상황이 통제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인터넷을 다시 여는 것이라면서 "이란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정부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고 협상에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총알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 발사…거리에 피 가득해 전쟁터 방불"
인터넷 접속 제한을 뚫고 간신히 외부에 소식을 전한 이들에 따르면 정부는 시위대에 "총알, 최루탄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사"했고 병원엔 "주검이 겹겹이 쌓였다"고 미 CNN 방송이 전했다. 9일 테헤란에서 시위에 참여한 한 사회복지사는 방송에 당국이 시위대를 공격하며 상황이 "악몽"이 됐고 한 소녀가 "기절할 때까지" 전기충격기를 맞는 것을 목격했으며 동료의 아들도 숨졌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테헤란 사업가 사라(50)가 해외 거주 사촌을 통해 전달한 영상에 의하면 10일 밤 테헤란 안다르즈구 지역에서 가족, 노인, 남성 등 다양한 구성의 시민들이 차분한 분위기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곧 보안군이 근거리에서 소총을 발사하기 시작하며 아수라장이 됐다고 보도했다.
테헤란에서 교육 받은 시카고 의사 모하마드 레잔세제시키는 CNN에 이란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소식을 전하며 "한 정형외과 의사가 응급실에 여러 구의 주검이 들어왔고 최소 30명 이상의 총상을 입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테헤란 안과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눈에 탄환이 박힌 환자 200~300명이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 방송은 테헤란 인근 영안실 영상에서 약 180개의 시신 가방을 봤고 이란 북서부 라슈트의 한 병원에 9일 밤 주검 70구가 이송된 걸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11일 테헤란의 한 소식통은 방송에 "상황이 매우, 매우 나쁘다"라며 "내 친구들이 많이 죽었다. 실탄이 발사되고 있다. 여긴 전쟁터 같고 거리에 피가 가득하다. 주검이 트럭으로 실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강력한 선택지 고려 중"…13일 대응 브리핑 받을 듯
시위대 사망 땐 개입을 시사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워싱턴DC로 돌아오는 전용기(에어포스원)에서 이란 정권이 미국 대응을 촉발할 금지선(레드라인)을 넘었냐는 질문을 받고 "그러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린 그걸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군이 검토 중이고 우린 매우 강력한 선택지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이란 시위 대응 방안을 브리핑 받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 당국자는 방안에 군사 공습, 이란 군 및 민간 시설에 비밀리에 사이버 무기 투입, 정권 추가 제재, 온라인 반정부 세력 지원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신문에 전했다. 이 회의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댄 케인 미 합참의장 등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미 당국자들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이란에 보내 시위대에 당국의 접속 차단을 우회할 수단을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이란에 스타링크를 보낼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우린 일론 머스크와 (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어제 이란 지도자들이 전화했다. 그들은 협상을 원한다"며 외교적 해법 또한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우린 그들을 만날 것이고 회의가 준비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그곳(이란)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회의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재 대응 관련 논의가 초기 단계로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 "미 개입 땐 정권 결집 역효과 우려…트럼프 정부, 완수 역량 없어"
이란은 미국 개입 땐 미군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모하마드 바케르 칼리바프 이란 의회의장은 11일 의회 연설에서 "분명히 해 둔다. 이란에 대한 공격이 발생하면 점령된 영토(이스라엘), 모든 미군 기지 및 함선은 우리의 적법한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전용기에서 취재진에 미군 기지에 대한 그러한 공격이 일어날 경우 "우린 이전에 본 적 없는 수준으로 그들을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섣부른 개입이 외국 배후를 주장하는 이란 정권 입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자지라를 보면 11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국영 방송에 정부가 시위대의 의견을 "경청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폭도"와 "테러 분자"는 막아야 한다며 이스라엘과 미국이 소요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남 바킬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서 미국 개입의 주된 영향은 "취약성이 극에 달한 시기에 엘리트 결속 강화와 정권 분열 억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디언>을 보면 영국에 기반을 둔 서아시아 전문 싱크탱크 보르스앤바자르의 에스판디야르 바트망헬리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개입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레바논에서의 평화 정착 및 시리아와 베네수엘라에서의 정치적 전환에 실패한 점"이라며 "이들은 각 지역에서 과감한 약속을 했지만 실제로 이를 완수할 역량도, 전략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이란 내부 문제" 일단 관망
지난해 6월 이란과 12일 전쟁을 벌인 이스라엘은 이란 시위를 지지하면서도 일단 "내부 문제"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AP> 통신을 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1일 주간 내각회의를 열며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 시민들의 놀라운 영웅적 행위에 경탄"했다며 "폭정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이란과 이스라엘이 관계를 재건하길 희망한다고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시위는 "이란의 내부 문제"지만 "필요시 무력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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