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나일강의 굽이치는 물줄기를 따라 펼쳐진 황금빛 대지에 서면, 인간의 시간이 아닌 신들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수천 년 전 이 땅에 뿌리 내린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태양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아침 어둠의 뱀 ‘아펩’을 물리치고 부활하는 절대신 ‘아문 라(Amun-Ra)’의 현신이었으며, 세상 만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근원적인 에너지였다. 이집트인들이 남긴 거대한 건축물과 섬세한 벽화들은 바로 이 찬란한 빛의 궤적을 쫓아온 인간의 경외심이 빚어낸 예술적 결정체다.
1. 지평선에 걸린 영원의 삼각형: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
사막의 지평선 너머, 피라미드의 거대한 능선 뒤로 태양이 서서히 몸을 숨기는 순간을 바라본다. 이때 대지는 비로소 신화의 무대로 변모한다. 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이 건설한 이 압도적인 구조물은 태양 빛이 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려오는 ‘태양 광선’의 형상을 돌이라는 영구적인 매체로 고착화한 것이다. 파라오는 죽음 이후 이 피라미드라는 계단을 타고 태양신에게로 나아간다고 믿었다. 이 거대한 삼각형의 미학은 이집트 문명의 시작과 끝이 결국 태양이라는 절대 존재를 향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노을을 받아 붉게 달아오를 때, 우리는 그 옛날 파라오들이 꿈꿨던 영생의 욕망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된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함에 따라 태양을 향한 건축적 표현은 더욱 날렵하고 정교해졌다. 고왕국의 피라미드가 육중한 부피감으로 신의 위엄을 표현했다면, 중왕국과 신왕국을 거치며 이집트의 건축은 한층 더 세련된 오벨리스크로 진화했다. 피라미드만큼 거대하지는 않지만, 수직의 날카로운 선을 통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오벨리스크는 더욱 직접적으로 태양과 소통하는 도구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오벨리스크의 정점 역시 피라미드와 같은 삼각형의 ‘벤벤(Benben)’석으로 마감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뾰족한 끝부분은 매일 아침 세상에서 가장 먼저 태양의 첫 빛을 받는 지점이자, 태양신이 지상에 처음 발을 내디딘 장소를 상징한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이 화강암 기둥은 빛의 정수를 한 점에 모으려는 고대 예술가들의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돌을 깎아 만든 한 줄기 빛과 같은 이 구조물들은 시대가 변해도 태양을 향한 이집트인들의 진심은 결코 변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미술적 증거다.
2. 카르낙의 아침: 신전의 어둠을 깨우는 황금빛 선율
신전 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은 인류가 만든 가장 장엄한 ‘빛의 무대’라 할 수 있다. 동이 트기 전, 신전의 거대한 기둥 사이로 흐르는 정적은 태양이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환희로 바뀐다. 신전의 중심축을 따라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차갑던 돌기둥에 황금빛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고대인들은 이 순간 ‘아문 라’가 신전의 어둠을 걷어내고 직접 강림한다고 믿었다. 건축가는 빛의 입사각을 세밀하게 계산하여 태양이 떠오르는 찰나 신전 전체가 빛의 축복을 받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건축적 치밀함은 신전의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곳인 성소에서 절정에 달한다. 커다란 돌문과 좁은 복도를 지나 가장 안쪽 방에 도달하면, 외부의 소음은 차단되고 오직 태양 빛만이 주인공이 된다. 카르낙 신전 안쪽의 성소는 특정 절기나 시간에 태양 빛이 일직선으로 들어와 신상을 정확히 비추도록 설계되었다. 어두운 공간 속으로 파고드는 강렬한 한 줄기 햇살은 신성함을 극대화하는 예술적 장치다.
이것은 단순히 건물을 잘 짓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자연의 빛과 결합하여 어떻게 종교적 경외심을 이끌어 내는지를 보여주는 설계자들의 천재적인 건축물인 것이다. 이곳에서 빛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공간의 의미를 완성하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신의 언어’로 작동한다. 현대의 어떤 미학적 공간도 이토록 완벽하게 빛을 통제하고 숭고함을 자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3. 춤추는 원숭이와 벽화 속 찬가: 만물의 경배
태양에 대한 경외는 인간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이집트 벽화와 부조 속에는 자연의 모든 생명이 태양신을 경배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특히 신전의 벽면이나 기둥 하단부에 자주 발견되는, 손을 들고 춤을 추거나 환호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원숭이(바분)’들의 묘사는 고대 예술가들이 실제로 해가 뜰 무렵 개코(?)원숭이들이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소리를 보며 저들이 태양신 아문 라의 등장을 찬양하는 것이라 믿은 것이다.
돌 위에 새겨진 원숭이들의 모습은 익살스러우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낸다.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하기보다는 그들이 느끼는 환희의 감정을 리드미컬한 선과 형태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현대 미술의 추상적인 감각과도 닮아있다. 이러한 조각 예술은 태양이 단순히 하늘에 떠 있는 천체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깨우고 춤추게 만드는 생명의 근원임을 미술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기둥 사이사이에서 발견되는 이 작은 생명들의 경배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 줄 수 있는 차가움을 상쇄하고 따뜻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처럼 이집트의 예술은 동식물과 신, 그리고 인간을 하나의 거대한 빛의 그늘아래 묶어두는 포용적인 시선을 유지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깊은 관찰과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예술적 성취다.
4. 서쪽으로 저무는 해: 죽음 너머 영원을 꿈꾸다.
이집트인들에게 나일강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거대한 경계선이었다. 해가 뜨는 동쪽은 ‘산 자의 땅'이었고,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은 자의 땅’이었다. 나일강 서쪽 지역으로 해가 저물어 가는 풍경은 고대인들에게 곧 ‘죽음’을 상징했다. 태양이 서쪽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며 세상이 어둠에 잠기는 순간은 생명의 기운이 다하는 것을 의미했기에, 나일강 서안에는 파라오의 무덤인 ‘왕들의 계곡’과 수많은 ‘귀족의 무덤’들이 배치되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죽음은 단절이 아니었다. 태양신 아문 라의 가호는 죽은 자들의 영면까지 깊숙이 침투한다. 파라오와 귀족들의 무덤 벽면을 장식한 수많은 벽화는 망자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 이후에도 태양신과 함께 빛의 배에 올라타 영원한 밤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다. 어둠을 뚫고 내일의 해가 다시 뜨듯, 자신의 영혼도 아문 라의 궤적을 따라 부활하기를 바랐던 마음이 화려한 색채 속에 녹아 있다.
무덤 속에 그려진 찬란한 태양은 죽음이라는 어둠조차 빛으로 극복하려 했던 인간의 의지가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미술적 기록이다.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들은 슬퍼하기보다, 다시 태어날 내일의 아침을 꿈꾸며 평온한 안식을 준비했다. 지리적 배치와 종교적 신념,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건축적 질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셈이다.
5. 빛이 빚어낸 대지 미술: 땅과 하늘의 예술적 만남
태양의 예술은 인간이 만든 신전과 무덤을 넘어 대지 그 자체를 거대한 캔버스로 삼는다. 시나이반도의 거친 산맥 위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은 척박한 땅에 강렬한 원시의 색을 입힌다. 인공적인 조명이 없던 시절, 오직 태양만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 명암의 대비는 이집트의 지형과 건축물에 압도적인 입체감을 부여했다.
낮은 각도로 깔리는 노을은 돌의 미세한 질감을 부각하고, 광활한 사막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대지 미술의 정수를 완성한다. 멀리 보이는 피라미드 공원 위로 하루의 마지막 빛이 쏟아질 때, 우리는 다시금 질문하게 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토록 거대한 돌을 쌓고 불멸을 꿈꾸게 했는가. 그 답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저물어 가는 저 태양 속에 있다.
태양은 고대의 땅과 건축물 모두에 예술적 가치를 불어넣는 최고의 ‘큐레이터’이자 ‘아티스트’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유산은 단순히 오래된 돌덩이가 아니라 빛을 이해하고 그 빛 속에 인간의 존재 의미를 투영하려 했던 치열한 예술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이 유적들 앞에서 깊은 감동을 받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를 비추는 저 태양이 고대의 그 찬란한 빛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