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육아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손주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니 왠지 애를 끓이는 조바심에서는 벗어난 느낌이다. 제 몸의 상태와 기분까지 막힘없이 이야기를 하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상황까지 되자 이제는 한숨 돌리는 편안함이 있다.
조리원을 나온 손주와 딸 내외와 한집에서 석 달을 함께 지냈었다. 산후휴가가 3개월이었는데 역대급으로 더웠던 2018년 여름이었다. 신생아가 있어서 그나마 밤에만 잠시 에어컨을 껐던 기억이 난다.
너무 덥다는 기억만 있을 뿐 하루하루 갓난아기와의 적응 기간이어서 더운 푸념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딸이 복직을 하고 할머니 혼자의 육아가 시작되면서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아프거나 다치면 어쩌나였다. 엄마가 키워도 상황은 마찬가지겠지만 말 못 하는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할머니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까. 자는 아이 얼굴을 보면서도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다.
돌까지는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면역력으로 병치레를 안 한다더니 어린이집 입학 전까지는 감기도 안 걸렸던 것 같다. 어린이집을 들어가면서 공동생활 시간이 늘자 상황이 달라졌다. 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며 함께 지내니 한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순차적으로 모두 옮겨간다.
병원 진료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청진기만 대도 울기 시작해서 주사라도 맞을라치면 두세 명이 붙잡아도 발버둥을 쳐서 한바탕 소란이 일고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분들이야 일이지만 손주를 못 움직이게 찍어 누르는 할머니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만다.
약 먹이기는 또 얼마나 힘든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사람의 본능인데 어느 아기가 쓴 것을 삼키려 하겠는가. 우유에도 타보고 입을 벌리고 억지로도 먹여 보고 조금 큰 후엔 달콤한 비타민으로도 꼬셔보지만 콧물만 슬쩍 비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있다.
자라며 자연스럽게 약을 먹어야 낫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음을 깨달아야 약 먹이기의 실랑이에서 벗어난다.
웬만한 아이라면 몇 바늘 꿰매고 입원도 하고 깁스도 한다는데 다행히 손주는 그런 일 없이 무난하게 자라줬다. 수족구병에 걸려 닷새쯤 등원을 못 했던 것이 가장 큰 병이었지 싶다. 손과 발에 발진이 생기고 고열에 입안이 다 헐어 밥을 못 먹는 법정 감염병이었다.
발병 후 5일이 지나 의사의 완치 판정이 있어야 등원할 수 있는 전염력이 강한 병. 밥 한술에 희비가 엇갈리는 할머니가 우유만 마시는 손주를 닷새 지켜보며 덩달아 입맛을 잃었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갖 일과 사건 사고가 있지만 그러려니 해야 하고 애는 아프면서 자란다는 옛말도 있지만 열이 나서 벌게진 손주의 얼굴을 보는 일은 할머니로서는 참기 힘든 고통의 순간이었다.
오십견 치료를 받으러 가끔 재활의학과를 방문한다. 어린아이 환자들도 섞여 있다. 휠체어를 타고 오거나 유모차에 누워있는데 그냥 가만히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파 천장을 바라보며 대기실에 앉아 있는다.
아이는 움직이고 뛰고 떠들고 웃어야 한다. 병으로 움직임과 생기를 잃은 아이들을 보면서 약을 먹든 주사를 맞든 낫는 병에 걸리는 거야 무슨 걱정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거의 상처가 없는데도 밴드 붙이기를 좋아하던 손주는 쿵 부딪쳐 아파 보이는데도 안 아픈 척하는 허세를 부릴 만큼 자랐다. 어딘가 누구에게라도 감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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