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가상자산 시장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농담 코인'이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가총액 약 210억달러(약 28조원) 규모를 유지하며 투자자들을 울고 웃기고 있다. 기술적 혁신도 사업적 비전도 없이 오직 '밈(Meme)'과 한 억만장자의 트윗으로 버티고 있는 도지코인 이야기다.
지난 2013년 12월, IBM 출신 개발자 빌리 마커스와 어도비 출신 개발자 잭슨 팔머가 당시 과열된 코인 시장을 비판하려 만든 이 농담은 초기 개발자들조차 예상치 못한 결제 활용 사례와 커뮤니티 기부 문화가 형성되면서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일본 시바견 밈을 마스코트로 삼은 이 코인은 처음부터 기술적 가치보다는 재미와 화제성에 기대어 출발했다.
도지코인은 출시 초기 수년간 의미 있는 가격 변동 없이 수 원 단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019년부터 도지코인 개발진들과 접촉하고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언급하면서 도지코인의 성격은 단순한 장난을 넘어선 투기적 자산으로 급격히 변모했다. 머스크는 심지어 개발진들에게 개발장려금을 주려고 했으나 개발진 측이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5월 머스크가 미국 NBC방송 SNL에 출연하기 전까지 도지코인은 0.73달러(약 1024원)의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당시 시가총액은 888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고점 대비 80% 이상 급락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2021년 당시 국내에서는 "다시는 코인 안 할테니 제발 원금 좀"이라는 투자자들의 비명이 커뮤니티를 뒤덮었다.
머스크는 2021년 5월 11일 트위터를 통해 "테슬라가 결제 수단으로 도지코인을 허용하길 원하느냐"고 묻는 투표를 올려 도지코인의 가격 상승을 견인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테슬라 온라인 스토어의 일부 굿즈 결제에 도지코인을 도입했다. "비트코인보다 도지코인이 결제 수단으로서 거래 속도 및 비용 면에서 우수하다"는 그의 발언은 투자자들에게 근거 없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2024년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머스크를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 공동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도지코인 투자자들의 맹목적인 기대는 다시 불붙었다. 해당 조직의 영문 약자가 도지코인의 티커 심볼과 동일한 DOGE였기 때문이다. 정부효율부는 행정부 내 정식 부처가 아닌 자문 위원회 격의 조직으로 국가 예산 집행과 규제 철폐를 다루는 한시적 기구였다.
당시 머스크는 공식적으로 특별 정부 직원 직함을 가졌으나 사실상 정부효율부의 얼굴이자 핵심 설계자로 활동하며 도지코인의 상징성을 극대화했다. 비록 도지코인의 가격 흐름과 정부 정책 사이에 엄밀한 통계적 인과관계가 검증된 바는 없으나 주요 정치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투자자들의 기대 심리와 거래량이 급격히 요동치는 현상은 어김없이 반복되어 왔다.
머스크는 지난해 5월 30일 백악관 기자회견을 끝으로 정부효율부 수장직에서 물러났다. "함께 일해 영광이었다"는 작별 인사와 함께였다. 정부효율부는 당초 2026년 7월까지 활동할 예정이었으나 같은 해 11월 인사관리처가 "DOGE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예정보다 8개월 일찍 문을 닫았다.
12일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오전 2시 35분 기준, 도지코인은 약 0.14달러(약 200원) 선에서 거래되며 시가총액 230억달러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역대 최고가 대비 약 80% 이상 하락한 수준이다. 머스크가 정부효율부에서 물러난 이후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정치적 동력은 다소 약화된 모습이지만 테슬라 굿즈 결제 수단 채택 등 그가 던지는 단편적인 메시지에 시장은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과거 고점 대비 크게 하락한 가격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산티먼트에 따르면 최근 6개월 기준 도지코인 보유자들의 평균 미실현 손실률은 약 36%에 달한다. 상당수 투자자가 손실 구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량 측면에서는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실체 없는 생명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도지코인을 기술적 가치가 아닌 대중의 비합리적 심리와 팬덤이 만들어낸 사회적 자산의 전형으로 평가한다. 특정 인물의 행보와 정치적 수사에 따라 거액의 자본이 유입되고 빠져나가는 이 현상은 가상자산 시장이 가진 구조적 취약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난으로 시작된 시바견의 눈빛은 2026년의 가파른 시장 변동성 속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변동성에 노출된 개인들의 깊은 한숨이 서려 있다. 실체 없는 기대감에 기댄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 속에서 도지코인의 운명은 앞으로도 팬덤의 향배와 머스크라는 불확실한 변수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