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설계한 건축물 중에 대표작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최근에 받은 적이 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작품성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할 만큼 여러 가지 여유가 없었으므로 마땅히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프로젝트가 없다. 그 여유라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나 마음의 상태도 되겠지만 무엇보다 특출한 디자인을 만들어 낼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생 설계를 했는데 대표작으로 소개할 만한 프로젝트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다가 바탕골 양평예술관이라고 답했다. 젊은 시절 애정을 가지고 설계했고 어려운 인허가를 해결했던 기억이 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는 야산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최근에 환경부에서 매입해서 철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자리가 환경적으로 이슈가 될 자리이긴 하다.
1975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교생이 강남 일대에서 단축 마라톤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말죽거리라고 불렸던 지금의 양재역 인근에 있던 영동중학교에서 출발해서 강남 일대 11㎞를 달리는 코스였다. 당시에는 강남 개발이 시작되던 시기라서 여기저기 구릉을 깎아내리고 도로를 닦고 있었다. 전교생이 달리다 보니 비포장도로에서 엄청난 흙먼지가 날아올랐다. 도로 양측에 펼쳐진 벌건 흙의 황량한 들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로부터 50년. 이제 강남은 거대한 고층 빌딩이 도로 양측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개발 초기에 지어졌던 근린생활시설(근린시설)이나 단독주택 저층 빌라 등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고 1990년대에 설계했던 단독주택이나 근린시설들도 대부분 고층 빌딩이나 고급 아파트로 변해버려서 강남에서 내 설계 작품을 찾기 힘들어졌다.
최근에 지인 자제 혼사가 있어 강남 어느 대형 교회에 갔다가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치과 건물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가 서른 중반에 설계한 치과 건물이 30년이 넘도록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그 치과 건물의 건축 허가를 받고 공사를 시작할 당시 예정 부지 주변 빌라에서 엄청난 민원이 있었다. 근린시설이 근처에 들어오면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고급 빌라의 가격이 하락한다는 이유였다. 민원 조정이 안 되어 결국은 소송까지 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건축주가 승소했고 공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특히 집단민원이 횡행하던 시절이다. 아마도 그 당시 민원을 제기했던 주민 중에 지금도 이곳 치과를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남이 그렇게 천지개벽을 하는 동안 강북은 대체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강남이 주 생활권인 지인이 최근에 우리 동네에 놀러 와서 골목을 같이 걸었던 적이 있다. 간판이 어지럽게 붙어있는 저층 근린시설을 지나 시장 골목을 지나면서 외국 어느 골목을 걷는 것 같다고 했다.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나 고층 빌딩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골목은 너무나 생소한 경관일 테니까.
그런 이유로 서울의 강북에서는 여기저기 내가 설계한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2025년 연말에 음악회 관람차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 가게 되었다. 학교 정문 근처에서 내가 30대 초반에 설계했던 건물이 건재한 것을 확인했다. 3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내 설계 작품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내가 30대 중반에 설계한 3층짜리 건물이 있다. 오랜 세월 피자집으로 운영되다가 최근에 커피숍으로 바뀌었다. 그 커피숍 앞을 지나다니면서 지금 새로 디자인한다면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은 부분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지금 보면 아쉬운 디자인도 많지만 그렇다고 드러내기에 부끄럽지는 않다. 설계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이 모든 것이 나의 대표작이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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