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이 잇따르면서 시장의 시선이 단순한 경기 둔화를 넘어 최고경영진(CEO)과 그룹 차원의 전략 판단으로 옮겨가고 있다.
물론 글로벌 경기 둔화와 산업 사이클이라는 외부 변수는 분명 존재하지만, 경쟁 그룹과 비교할 때 LG의 부진이 유독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경영 전략의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LG생활건강 등 LG그룹의 핵심 자회사들은 공통적으로 수요 둔화, 원가 부담, 시장 불확실성을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삼성, SK, 현대차그룹 등 주요 경쟁사들도 유사한 거시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선 LG그룹이 사이클형 사업 비중이 높은 포트폴리오를 장기간 유지하면서도, 변동성을 완충할 수 있는 신성장 사업이나 고수익 플랫폼을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외부 환경 악화가 반복될 때마다 실적이 흔들리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투자 방향성보다 투자 관리와 성과 창출 능력이다. LG에너지솔루션, 첨단소재, 친환경 사업 등은 그룹이 강조해 온 미래 성장 축이지만,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가시화는 지연되고 있다.
일부 계열사는 시장 확대 국면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한 이후, 수요 둔화 국면에서 고정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에 놓였다. 이는 단순한 운의 문제가 아니라, CEO들이 업황 전환 시점을 고려한 전략적 속도 조절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LG생활건강의 경우 중국 소비 회복 지연이라는 외부 변수 이전에, 중국·면세 채널 의존 전략을 지나치게 오래 고수한 경영 판단이 문제로 지적된다. 변화 조짐이 뚜렷했음에도 사업 구조 전환이 늦어졌고, 결국 실적 급락 이후에야 CEO 교체라는 사후 처방에 나섰다.
LG유플러스와 미디어·콘텐츠 자회사들 역시 신사업 확장에 비해 수익 모델 구축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평가다. 규모 확대에 집중하는 동안, 통신·미디어 융합 전략의 차별성과 실질적 경쟁력은 시장에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LG그룹의 경영 문화는 오랫동안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운영'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현재의 경영 환경에서는 이러한 기조가 기회 포착의 지연과 구조 개편의 타이밍 상실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비핵심 사업 정리, 과감한 사업 철수, 성장성이 낮은 영역에 대한 구조조정 등은 경쟁 그룹 대비 늦게 진행되거나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자원은 분산되고, 어느 사업에서도 압도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시장의 가장 큰 우려는 실적 부진 그 자체보다도, 위기 국면에서 반복되는 책임 주체의 부재다. 실적 악화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거시 환경과 업황에 집중돼 있으며, 경영 판단의 오류나 전략 실패에 대한 공개적 인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부진은 단기 실적 조정이 아니라, CEO 중심의 전략 설계와 실행력에 대한 시험대"라며 "책임 있는 진단과 명확한 방향 전환이 없다면 LG그룹의 체질 개선은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LG그룹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미래 비전 제시 이전에 현실적인 선택과 고통 분담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성장성이 불투명한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핵심 역량에 자원을 집중하는 결단 없이는 중장기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실적 부진은 LG그룹에 또 하나의 경고음이다. 문제는 경고의 존재가 아니라, 이번에도 이를 흘려보낼 것인지, 아니면 체질을 바꿀 계기로 삼을 것인지다. 선택의 책임은 결국 CEO와 경영진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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