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 병실에서였어요. 밤새 간호사들이 교대하고 인턴들이 지친 눈으로 차트를 들고 뛰어다니는 걸 봤죠. 그때 아이가 말했어요. ‘아빠, 이 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 주면 좋겠어.’”
김중권 아주대 총동문회 고문(72)에게 ‘김수정 장학’은 처음부터 계획된 사업은 아니었다. 2014년 11월 림프암으로 스물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 고(故) 김수정씨를 떠나보낸 뒤 아주대병원 병실에서 마주한 밤의 풍경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꿨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성모병원을 거쳐 마지막으로 옮긴 아주대병원에서 딸은 의료진과 학생들이 밤을 새워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장학사업을 떠올렸다고 김 고문은 회상했다.
딸의 뜻은 곧 실행으로 이어졌다. 김 고문은 병실에서 장학 계약서에 서명했다. 수정씨가 생전에 마련해 둔 3억원을 바탕으로 2015년부터 매년 3천만원씩 학기당 1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김수정 장학’이 출범했다. 그렇게 10년간 이 장학금을 거쳐 간 학생은 모두 200명에 이르렀다. 김 고문은 “그 돈은 전부 아이가 남긴 것”이라며 “저는 부모로서 그 뜻을 이어왔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김 고문은 아주대가 ‘아주공업초급대학’이던 시절 입학한 1회 졸업생이다. “사회에 나가면 ‘아주대가 어디냐’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는 그는 대학의 성장 과정을 졸업생으로서 고스란히 지켜봤다. 학교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은 자연스럽게 장학사업의 방향으로 이어졌다. 수정씨 역시 “아빠가 나온 학교에 장학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남겼고 장학의 터전은 아주대로 정해졌다.
장학사업은 학생들의 삶도 바꾸고 있다. 장학금 수혜 학생 상당수는 사회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았고 김 고문에게는 “취업했다”,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는 안부가 꾸준히 전해진다. 그는 “200명이라는 숫자보다 그 아이들이 지금도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인연을 이어가고자 아주대는 올해 ‘김수정 장학’ 장학생 출신 200명을 초청하는 홈커밍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10년에 걸쳐 이어진 장학의 시간이 다시 학교로 돌아와 서로의 삶을 나누는 장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김 고문은 “장학이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현재 아주대 교정에는 ‘김수정 장학’과 연계된 무인카페 두 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전액 장학금으로 환원된다. 김 고문은 “개인의 기부에 머무르지 않고 학교 안에서 장학이 스스로 굴러가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 고문의 시선은 이미 다음 10년을 향해 있다. 그는 ‘김수정 장학’을 재단 형태로 발전시켜 자신이 없어도 장학이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김 고문은 “20억~3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그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재단을 만들고 싶다”며 “목표는 김수정 장학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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