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훈 더봄] 양인심사양인지(兩人心事兩人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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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훈 더봄] 양인심사양인지(兩人心事兩人知)

여성경제신문 2026-01-11 13:00:00 신고

오늘 밤도 9시에 시작된 술 파티는 자정을 넘기고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에 나뒹구는 코냑과 위스키 빈 병 숫자가 늘어가고, 사내들의 혀가 꼬여 갈수록 사내들의 손은 언제나 그랬듯이 더욱 거칠어져 가고 대담해졌다. 

코냑과 위스키는 혜나가 텐 프로 생활 6년 동안 한두 번 마셔 봤는지 못했는지 기억에 가물가물했다. 파티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듣도 보도 못한 술병도 늘어갔다. 술기운 때문인가 눈을 비비고 다시 술병을 내려다봐도 가물가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발렌타인 30년'은 술 취한 눈에도 또렷이 보였으나, 'MACALAN 78'은 '마낄라'로 읽다가 '데낄라'로 읽다가 도무지 헷갈렸다. 코냑 'Hennessy Paradis' 병에 눈길이 머물렀을 때는 학업을 중단한 과거를 원망해야 했다.

신윰복 '월하정인'
신윤복, '월하정인'

처음 이곳에 불려 오던 날 혜나를 비롯해 네 명의 아가씨는 사장과 마담, 실장에게 차례로 불려가 열 번 백 번 철저히 보안 교육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손님들께 언짢은 행동을 하거나,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가는 우리 룸살롱은 그날로 문 닫는 날이고, 거기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밖에 나가 나불댔다가는 그날은 너희도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침까지 튀겨가며 강조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대신 봉사료는 원 없이 받을 테니 무슨 짓을 해도 참고 또 참으라고 신신당부했다.

혜나는 이 오피스텔 704호로 처음 불려 온 날부터 부소장님으로 불리는 사내를 맡았다. 맡았다기보다 부소장의 간택을 받았다. 그날 이후 혜나는 파티 때마다 부소장 옆자리에 앉아 시중을 들었다. 사내들은 파티 첫날부터 그녀를 중전마마 모시듯 했고, 술자리가 파할 무렵이면 으레 짓궂은 한 사내는 아예 ‘중전마마, 이제 방으로 드시지요!’라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부소장과 혜나를 705호로 안내하곤 했다.

술 파티가 무르익어 새벽 1시쯤 되었을 때 혜나의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었다.

‘오늘은 네가 나올 때까지 단 한 발짝도 옮기지 않고 이 오피스텔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다. 5분 만이라도 나왔다가 들어가면 집으로 가겠다.’

정식의 카톡 문자를 확인한 혜나는 무슨 핑계를 대고 나갈까 궁리궁리하다가 부소장의 가슴에 몸을 묻으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오빠, 아무래도 이상해요. 아직은 아닌 것 같은데 아랫배가 땡기는 것이 아무래도 생리할 것 같아요. 잠깐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야, 오늘이 그날이란 말이야? 이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 아냐?”

“설마요, 아무튼 준비는 해 두어야 하니까 다녀올게요. 괜찮죠?”

“예부터 늙어서 젊은 첩을 앉히면 뒷문으로 젊은 놈이 드나든다고 했는데, 이 밤에 혹 어디로 튀는 것은 아니지? 빨리 갔다가 와야 한다. 안 들어오면 마담에게 바로 전화한다.”

혜나는 황급히 오피스텔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자 가로수 밑에 서 있던 정식이 다가왔다.

“오늘도 문제없이 녹음했지?”

“못 봤어? 좀 전에 엘베 내려오면서 카톡으로 녹음 파일 보냈잖아.”

“봤어. 지금까지 녹음된 것으로 충분해. 가자!”

“안 돼. 잠적하는 날에는 언제 어디에서 죽을지 몰라. 무서워. 우리 사장과 실장도 무섭지만 저 연구손지 뭔지 사람들은 알면 알수록 무서워. 세상에 떠도는 얘기 중에 자살당했다는 말도 있잖아?”

정식의 손을 잡은 혜나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정식은 떨리는 혜나의 손을 꼭 잡으며 이곳을 빨리 벗어나자고 재촉했으나 그녀는 정식의 손을 뿌리치며 울먹였다.

“오빠, 나 너무 무서워. 녹음 내용을 들어봐서 알겠지만, 저 사람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야. 처음에는 돈 버는 재미로 드나들었지만 이젠 내가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그게 죽음을 재촉할 것 같아. 오빠, 녹음 파일 다 지워 버리고 조용히 살자, 응?”

“혜나야, 걱정하지 마. 내가 너를 반드시 지켜준다. 지금은 쟤들 세상이지만 영원한 것은 없어.”

“오빠, 내가 오빠 말을 들어야 했어. 후회해 봐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육 년 동안 우리도 세상도 우리 뜻과는 너무 다른 방향으로 흘렀어. 아무래도 녹음 파일을 파기해 버리고 오빠는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가졌던 꿈대로 세상을 구하러 가고, 나는 이미 학업을 포기한 몸 지난 세월 다 잊고 우리 식구들이나 배불리 먹여 살리며 살아갈게.”

정식이 이끄는 방향으로 혜나의 두 발은 모였으나, 얼굴은 어느새 오피스텔 정문을 향해 오르로 꼬았다.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초승달은 시나브로 빛이 바래졌다.

여성경제신문 이진훈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전 영동고 교사 
mokleey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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