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공급 늪 빠진 주력산업, 정부 주도 재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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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공급 늪 빠진 주력산업, 정부 주도 재편해야”

이데일리 2026-01-11 11: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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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과잉공급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정책을 기존 ‘민간 주도형’에서 ‘정부 주도형 신산업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정부 주도성을 강화해 선제적 사업 재편을 적극 견인하고, 이를 뒷받침할 신속한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따랐다. 내수 중심에서 글로벌 경쟁·경제안보 중심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제기됐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11일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주력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신산업정책의 필요성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화학·철강·배터리 등 주력산업은 생산능력이 유지되거나 늘어나는 반면 가동률은 급락하는 전형적인 ‘구조적 과잉공급’ 국면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데이터처의 광업·제조업동향조사 자료를 보면, 석유화학 분야는 2020년 이후 생산능력지수가 100 이상으로 지속 상승하며 설비 투자가 이어졌지만, 가동률은 2021년을 기점으로 수직 하락해 2025년 현재 역대 최저 수준인 90 이하로 떨어졌다. 철강 생산능력지수는 2014년 전후 정점에 도달한 뒤 10년 넘게 정체된 가운데, 가동률은 2016년 이후 추세적으로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배터리의 경우 2020년 이후 생산능력이 급격히 확대돼 지수가 120을 상회했으나, 2023년 이후 ‘전기차 캐즘’의 여파로 가동률이 급락하며 심각한 유휴 설비 문제가 발생했다.

보고서는 주력산업의 가동률 저하는 단순한 수요 감소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이 중국산으로 대체되는 ‘구조적 시장 잠식’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의 석유화학·철강 세계 시장점유율은 2005년 전후 4%대를 상회하던 수준에서 2024년에는 1~2%대로 떨어진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10%대에서 40~50% 수준으로 확대됐다. 배터리 시장에서도 한국의 점유율은 2010년 5.4%에서 2024년 5.9%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중국은 2010년 49%에서 2024년 67.3%로 올라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이는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이미 예견된 위험이었음에도, 국내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이 미흡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현 상황은 어느 한 기업이 먼저 설비를 줄이거나 생산을 축소하면 시장점유율 하락과 이익 감소를 감수해야 하는 반면, 경쟁사가 먼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구조”라며 “이 때문에 모든 기업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각자가 먼저 이를 감행할 유인은 매우 약하고, 결국 모두가 과잉 설비를 유지한 채 손실을 감내하는 집합적 비효율 상태가 지속되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보고서는 높은 규제 불확실성이 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설비 감축 및 통폐합 논의를 위해서는 생산능력, 가동계획, 원가·수익성 등 경쟁 민감 정보의 교환이 불가피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에서는 이러한 정보 교환이 부당한 공동행위(담합)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 경쟁제한성 판단의 핵심인 ‘시장 획정’ 범위가 내수 기준인지 글로벌 기준인지 불분명해, 기업 입장에서 위법성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매우 낮은 점도 문제로 꼽혔다.

이에 보고서는 규제 패러다임을 기존 ‘내수·가격’ 중심에서 ‘글로벌 경쟁·경제안보’ 관점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의 나프타분해시설(NCC)처럼 기술·규모 면에서 열위에 처한 분야에서 국내 독과점 우려만을 이유로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글로벌 경쟁력 상실은 물론 국내 기초소재 공급망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과거 요소수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단순 점유율 논리를 넘어 공급망 유지와 고부가가치 전환을 지원하는 전략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향후 시장획정 및 경쟁제한성 심사 시 단순 가격·수입대체 가능성뿐 아니라 국내 산업 보호, 공급망 안정, 경제안보, 기간산업으로서의 필요성 등을 균형 있게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정부가 기존의 소극적 ‘사후 승인’ 방식에서 벗어나, 선제적으로 사업 재편 대상을 발굴하고 참여를 권고하는 ‘능동적 지원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성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나열식 지원을 맞춤형으로 고도화하고,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제도와 연계해 지역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산업-지역 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경제안보 관점에서 산업·경쟁 정책을 연계하고 신속한 지원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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