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 자비에 크레티에는 자신의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의 실명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가 가르치는 과목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다.
사실 그는 프랑스 정보 요원들의 훈련을 돕고 있다.
"그들이 이 과정에 파견될 때 저는 정보 요원들의 배경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제게 알려진 이름들이 실제 이름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죠."
파리 외곽에 위치한 파리정치대학 생제르맹 캠퍼스는 정보 요원들을 위한 학교로 꽤 어울리는 장소다.
이 캠퍼스에는 20세기 초에 지어진 어둡고 다소 음울한 분위기의 건물들이 차량이 분주히 오가는 회색빛 도로와 크고 위압적인 금속 문으로 둘러싸여 있어, 은밀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이 캠퍼스의 가장 독특한 점은 20대 초반의 일반 학생들과 프랑스 정보 기관의 현직 요원들(대개 35~50세)을 한 교실에 모아 교육하는 이수 과정이다.
이 과정의 공식 명칭은 '정보 및 글로벌 위협 과정(Diplôme sur le Renseignement et les Menaces Globales)'이다.
이 프로그램은 파리정치대학과 프랑스 정보 기관 산하 교육기관인 '정보학교(Académie du Renseignement)'가 공동으로 개발했다.
약 10년 전 프랑스 정부의 요청이 시발점이다. 2015년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 정부는 정보 기관에서 대규모 인력 확충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프랑스의 대표적 명문대학인 파리정치대학에 잠재적 정보 요원을 양성하고, 현직 요원들에게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할 새로운 과정을 개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프랑스 대기업들 역시 보안 인력을 교육 과정에 참여시키고, 젊은 졸업생들을 대거 채용하는 데 관심을 보이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 과정은 4개월 동안 총 120시간의 수업으로 구성돼 있다. 기업에서 파견된 직원이나 정보 요원 등 외부 수강생의 경우 약 5000유로의 수강료를 내야 한다.
과정의 핵심 목표는 위협이 어디에서 발생하든 이를 식별하고 추적하며, 그 대응법을 배우는 것이다. 주요 수업 주제는 조직범죄의 경제학, 이슬람 지하디즘, 기업 정보 수집, 정치적 폭력 등이다.
수업을 참관하며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사전에 프랑스 정보 기관의 신원 조회를 통과해야 했다. 내가 참여한 수업의 주제는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정보'였다.
내가 이야기를 나눈 학생 중 한 명은 '로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40대 남성이었다. 그는 정확하고 간결한 영어로 자신을 투자은행가라고 소개했다.
"저는 서아프리카 전역에서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현지 고객들에게 위험 평가를 제공하기 위해 이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정치적 급진화를 연구하는 크레티에 교수는 최근 수년간 프랑스 정보 기관이 크게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내부 조직'이라고 부르는 부문에는 현재 약 2만 명의 요원이 배치돼 있다고 한다.
프랑스 정보 기관은 해외 정보를 담당하는 DGSE(프랑스 해외정보국)와 국내 안보 위협을 담당하는 DGSI(프랑스 국내정보국)로 나뉜다. DGSE는 영국의 MI6나 미국의 CIA에 해당하며, DGSI는 영국의 MI5나 미국의 FBI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정보 기관의 관심사는 테러리즘만이 아니다. "안보 관련 두 주요 기관 외에도 자금 세탁을 전문으로 다루는 정보 기관 트라크핀(Tracfin)이 있습니다."
그는 "특히 프랑스 남부에서 공공·민간 부문의 부패 등 불법 마약 거래로 인한 막대한 이익이 초래하는 문제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는 모스크바 근무 경험이 있는 DGSE 관계자, 전 리비아 주재 프랑스 대사, 트라크핀의 고위 관계자 등이 강사진으로 참여한다. 프랑스 에너지 대기업 EDF의 보안 책임자도 일부 강의를 맡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도 이 과정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커지고 있다. 방위·항공우주 산업을 비롯해 프랑스의 명품 기업들까지, 사이버 공격과 간첩 활동, 사보타주 위협에 직면하면서 이 학위 소지자 채용에 점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졸업생들은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 방산·항공우주 대기업 탈레스, 그리고 루이비통·디올·돔 페리뇽·크루그 등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한 LVMH 등에 채용되었다.
올해 과정에는 총 28명의 학생이 등록했으며, 이 가운데 6명은 정보 요원이다. 휴식 시간마다 이들은 젊은 학생들과 떨어져 따로 모여 있었고, 내가 다가가도 반가워하지 않는 태도로 자신들의 정체를 추측하게 했다.
그중 한 명은 정확한 직책을 밝히지 않은 채, 이 과정이 사무직에서 현장 업무로 이동하기 위한 빠른 승진 경로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요원은 학문적 환경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출석부에 성을 적지 않고 이름만 기입한 뒤 서명했다.
21세 학생 알렉상드르 위베르는 다가오는 유럽과 중국 간 경제 전쟁을 깊이 이해하고 싶어 이 과정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제임스 본드식 시각으로 정보 활동을 바라보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일은 위험을 분석하고,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하는 직업입니다."
또 다른 21세 수강생 발렌틴 기요는 프랑스 인기 첩보 드라마 '르 뷔로(Le Bureau)'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TV 시리즈를 통해서만 어렴풋이 알던 세계를 직접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저는 정말로 정보 기관에 들어가 일하고 싶어요."
이 수업을 듣는 학생 가운데 거의 절반이 여성이다. 정보 분석 전문가인 세바스티앙-이브 로랑 교수에 따르면, 이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변화다.
그는 "여성들의 정보 분야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새로운 현상"이라며 "이들은 정보 수집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 젊은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면, 매우 강한 애국심"이라며 "이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새로운 변화"라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 지원하려면 프랑스 국적이 필수 조건이지만, 일부 이중 국적자의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크레티에 교수는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나 러시아 출신의 매력적인 여성들이 훌륭한 이력서를 첨부해 지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지원서는 즉시 폐기됩니다."
최근 촬영한 수업의 단체 사진을 보면 누가 정보 요원인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일부가 카메라를 등지고 선 채로 촬영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수업에서 만난 모든 학생들과 정보 요원들은 날렵하고 운동신경이 뛰어나 보였다. 하지만 크레티에 교수는 제임스 본드와 연결된 정보 요원 이미지를 바로잡고 싶어했다.
"신입 요원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프랑스 정보 기관의 대부분 업무는 사무실에서 이루어집니다."
-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
- 중국은 실제로 영국을 어떻게 감시하는가
-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
- 페리에는 광고대로 정말 '천연'일까?…프랑스를 뒤흔든 광천수 스캔들
Copyright ⓒ BBC News 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