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기자의 서평 talk] 유치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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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기자의 서평 talk] 유치환의 '행복'

서울미디어뉴스 2026-01-10 19:03:3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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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서울미디어뉴스] 김상진 기자 =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서평 talk]

유치환의 「행복」은 사랑의 성취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의 태도를 말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는 문장은 선언에 가깝다. 이 시에서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선택이며, 보상이 아니라 이미 완결된 감정이다.

시 속 화자는 우체국 창가에 서 있다. 우체국은 수많은 사연이 오가는 공간이지만, 화자의 시선은 오직 ‘너’에게 쓰는 편지에 머문다. 세상의 고단한 이야기들이 분주히 오가는데도, 사랑은 소란 속에서 더 고요해진다. 이 장면은 사랑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또 얼마나 집중된 행위인지를 보여준다.

“진홍빛 양귀비”라는 비유는 특히 인상적이다. 양귀비는 아름답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유치환은 사랑을 영원한 약속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라질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는 감정, 그래서 더 애틋한 감정으로 그린다. 이 시의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기억될 준비가 된 사랑이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라는 문장에는 체념이 아니라 확신이 있다. 사랑했기 때문에, 더 바랄 것이 없다는 확신이다. 여기서 행복은 지속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완성된 상태로 남는다.

「행복」은 우리에게 묻는다. 사랑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유치환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답한다. 사랑은 주는 순간 이미 행복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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