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설화 ‘세 가지 보물’은 전통 민담의 형식을 빌려 인간의 능력과 사회의 질서를 해부하는 문화적 텍스트다. 작품은 요괴와 호랑이가 등장하는 환상담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재산과 신분 대신 개인의 자질과 선택을 중심에 놓는 민중의 세계관이 정교하게 배치돼 있다. 지팡이, 농짝, 방울이라는 하찮은 물건이 삶을 바꾸는 도구가 된다는 설정은, 물질보다 태도를 중시하는 이 설화의 철학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야기의 출발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한 집안의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유산을 남기며 각자의 길로 보내는 장면은, 혈연과 보호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한다. 이때 주어지는 것은 금이나 토지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초라한 도구들이다. 설화는 바로 이 결핍의 상태에서 인간의 본질적 능력이 드러난다고 본다.
삼형제는 각기 다른 길로 떠난다. 큰아들은 지팡이를 들고 산길을 걷다 둔갑한 여우를 만나고, 여우가 사람들을 해치려는 순간 이를 간파해 처단한다. 여우는 해골을 쓰고 노파로 위장한 존재로, 인간 사회에 숨어든 기만과 탐욕을 상징한다. 큰아들은 여우를 쓰러뜨리고 신부를 살려내며 큰 보상을 얻는다.
둘째는 농짝을 지고 길을 가다 종들에게 쫓기던 여인을 만난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여인을 농짝 안에 숨겨 목숨을 구해 준다. 이 선택으로 둘째는 단순한 행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존재가 된다. 이후 그는 여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며 새로운 삶의 기반을 얻게 된다.
막내는 방울을 들고 숲속을 헤매다 호랑이 무리를 만난다. 나무 위로 피신한 그는 방울을 흔들고, 호랑이들은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무동을 타고 있던 호랑이들은 균형을 잃고 쓰러지며 모두 죽는다. 막내는 호랑이 가죽을 팔아 큰 부를 얻고, 형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삼형제는 다시 만나 자신들이 받은 유산의 의미를 깨닫는다. 지팡이는 악을 가려내는 눈이 되었고, 농짝은 생명을 품는 공간이 되었으며, 방울은 두려움을 무너뜨리는 힘이 되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물건이 아니라 각자의 성향과 가능성을 일깨우는 상징이었다.
서사는 곧 능력에 대한 은유로 확장된다. 지팡이는 이성과 판단력, 농짝은 윤리와 연대, 방울은 감각과 예술을 상징한다. 이 설화는 인간이 가진 서로 다른 자질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어느 하나도 다른 것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이들이 모여 사회의 균형을 이룬다.
여우, 도깨비, 호랑이 같은 존재들은 모두 인간 질서를 위협하는 힘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무력에 의해 패배하지 않는다. 이성, 연대, 예술이라는 인간의 능력 앞에서 스스로 붕괴한다. 이는 권력보다 능력, 폭력보다 문화가 우위에 놓이는 세계를 상상한 민중의 이상을 반영한다.
특히 막내의 방울이 보여 주는 힘은 이 설화의 가장 현대적인 요소다. 음악과 리듬이 야성을 길들이고, 공연이 부와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 내는 장면은 예술이 실질적인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는 오늘날 문화 산업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이 설화가 세계 여러 지역에 분포한 ‘춤추는 맹수’ 모티프와 연결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세 가지 보물’은 모티프를 삼형제 구조와 결합해 개인의 재능이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더욱 강조한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능력이 어떻게 평가되고 환원되는지를 보여 주는 장치다.
비현실적인 요소들은 이 작품의 약점이 아니라 설화의 본질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고, 짐승이 춤추는 세계는 민중이 꿈꾼 이상적 질서의 표현이다. 설화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현실이 도달하지 못한 가능성을 이야기로 구현한다.
‘세 가지 보물’은 결국 인간의 가치를 재산이나 혈통이 아니라 능력과 태도에 두는 이야기다. 이는 전통 사회에서 매우 급진적인 시선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설화가 전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지팡이와 농짝과 방울처럼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인간의 삶을 바꾸듯, 진짜 힘은 겉으로 드러난 조건이 아니라 각자가 지닌 방식과 선택 속에서 형성된다. 세 가지 보물은 그렇게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운명의 다른 이름이 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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