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65)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4) 관장의 이혼 소송 파기환송심은 불법 비자금 기여 배제라는 대법원 가이드라인 위에서 재산 산정 시점과 인적 연고라는 새로운 전쟁터로 옮겨갔다. 노소영 관장 측의 청주 연고 대리인단 선임과 주가 상승분을 반영하려는 법리적 시도는 1.4조 원의 가치 격차를 두고 최태원 회장 측의 법리 수성과 격돌하며 한국 자본주의와 법치주의의 현주소를 재조명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법리적 열기는 뜨거웠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2위인 SK그룹의 수장 최태원 회장과 현대사의 상징적 인물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파기환송심 첫 변론이 열린 날이었다. 2024년 봄, 서울고등법원이 1조 3808억 원(약 10억 3000만 달러)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산분할을 판결했을 때만 해도 이는 한 시대의 종언이자 새로운 재산분할 기준의 정립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025년 10월 16일, 대법원은 이 모든 설계를 무너뜨렸다. 대법원 1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을 불법원인급여로 규정하며 이를 재산분할 기여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금은 기여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이제 공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왔고, 양측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타나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노소영 측 연고의 역학: 청주 인맥과 인권 서사의 결합
파기환송심의 서막을 알린 것은 노소영 관장 측의 대대적인 대리인단 개편이었다. 노소영 관장은 대법원의 파기 환송 이후 패색이 짙어진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이른바 '재판부 맞춤형 진용'을 구축했다. 2025년 12월 선임된 법무법인 해광의 서민석, 이완희 대표변호사의 면면은 이번 재판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파기환송심의 재판장인 이상주 부장판사는 청주 지역 법조계의 핵심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이완희 변호사는 이상주 부장판사의 청주 충북고 5년 후배이며, 서민석 변호사 역시 청주고 출신으로 이 부장판사와 같은 지역 연고로 사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한국 법조계에서 학연과 지연이 갖는 보이지 않는 무게를 고려할 때, 이는 재판부와의 정서적 소통을 강화하려는 노소영 관장 측의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서민석 변호사는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정통 법관 출신이자 고 신건 전 국정원장의 사위라는 배경도 갖고 있다. 이완희 변호사 또한 서울고법 고법판사를 지낸 전관으로, 충북 지역 법조계에서 탄탄한 인맥을 자랑한다.
여기에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대표변호사가 합류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김재련 변호사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대리하며 여성 인권의 상징적 인물로 부상했다. 그녀의 합류는 재산분할의 논리를 단순한 숫자 싸움에서 여성의 생애적 기여와 혼인 생활의 신의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노소영 관장은 과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희망이 안 보인다, 원하는 행복 찾아가게 하겠다는 글을 남기며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이 재판에서 김재련 변호사는 법정 밖의 여론과 법정 안의 감성적 변론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노소영 관장은 첫 재판 출석 당시 남색 코트에 차분한 차림으로 나타나 미소만 지은 채 침묵을 지켰으나, 대리인단을 통해 자신의 기여를 입증할 서면을 1월 말까지 제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반면 최태원 회장 측은 승리 공식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상고심에서 극적인 파기환송을 이끌어낸 법무법인 율촌이 그대로 파기환송심을 맡았다. 이재근, 민철기, 김성우, 이승호 변호사로 구성된 율촌 팀은 가사 사건 전문성과 대법원 법리 대응 능력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김성우 변호사는 서울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6년간 근무하며 재산분할의 실무적 관행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최태원 회장 측은 대법원이 그어놓은 가이드라인, 즉 비자금 배제와 이미 처분된 1.1조 원 규모 재산의 분할 대상 제외를 사수하는 수성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 측은 율촌 외에도 추가적인 전문 변호사 선임을 검토하며 노소영 관장 측의 연고 공세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4조 원의 딜레마: 멈춰진 시간인가 흐르는 주가인가
법조계와 시장이 가장 예의주시하는 법리적 화약고는 재산 가액을 산정하는 기준 시점이다. 통상적인 재판상 이혼에서 재산분할의 기준은 사실심 변론 종결일이다. 문제는 이 사건이 대법원을 거치며 이혼 자체가 2025년 10월 16일 자로 이미 확정됐다는 점이다. 여기서 거대한 금액 차이가 발생한다. 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 당시 SK 주식회사 주식의 가치는 약 2조 760억 원이었다. 그러나 최근 주가 상승으로 2026년 1월 5일 기준 주식 가치는 약 3조 5033억 원으로 치솟았다. 기준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분할 대상 재산의 가치가 1조 4273억 원 이상 차이 나는 셈이다.
노소영 관장 측은 파기환송심 역시 사실심이므로 현재의 주가를 반영한 변론 종결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주가 상승이라는 결과물을 최태원 회장 혼자 독식하는 것은 부부 공동재산의 공평한 분배라는 재산분할 취지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반면 최태원 회장 측은 이혼이 이미 확정된 이상, 확정 시점 이후의 주가 변동은 혼인 생활과 무관한 외부적 요인이므로 반영해서는 안 된다고 맞설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2024년 1월 사실혼 파기 관련 판례에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가액 산정 시점을 참작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으나, 이 사건처럼 이혼 확정 후 파기환송심이 진행되는 경우에 대한 명확한 선례는 아직 없다. 재판장인 이상주 부장판사의 판단이 수조 원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 열쇠가 된 이유다.
재판부는 첫 변론에서 1월 말까지 양측의 주장을 모두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명했다. 노소영 관장 측 대리인인 이상원 변호사는 재판을 마친 뒤 재판부가 서면을 검토한 뒤 추가 심리가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바로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잡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는 재판부가 사건의 장기화를 경계하며 신속한 결론을 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대법원이 이미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을 기여도에서 빼고, 최태원 회장이 증여 등으로 처분한 약 1조 1116억 원을 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의 재산분할 모수는 약 2조 8999억 원 수준으로 대폭 축소된 상태다. 여기서 기준 시점마저 항소심 당시로 묶인다면 노소용 관장이 받을 금액은 항소심의 1.3조 원에서 수천억 원대로 급감할 수도 있다.
이 재판은 단순한 이혼 소송을 넘어 대한민국 정경유착의 과거사를 사법적으로 어떻게 청산하고 정돈할 것인가에 대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는 항소심의 판결은 대법원에 의해 불법 자금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법치주의의 원칙 아래 이미 파기됐다. 이제 파기환송심은 그 빈자리를 누가, 어떤 논리로 채울 것인가를 묻고 있다. 노소영 관장 측은 재판부와의 청주 연고와 여성의 헌신이라는 서사로 승부수를 던졌고, 최태원 회장 측은 대법원의 가이드라인과 정교한 민사 법리로 방어벽을 치고 있다. 법정 내부에서 오간 서면의 날카로운 공방은 한국 기업사의 어두운 그림자와 현대 사법 정의의 한계를 동시에 비추고 있다. 1.4조 원의 주가 변동분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그리고 연고라는 중력이 법리라는 궤도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시장과 사회의 시선은 서울고법 가사1부의 판결문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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