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수도 테헤란 심장부인 그랜드 바자르. 평소라면 물건을 나르는 손수레와 상인들의 흥정 소리로 가득했을 이곳은 이제 분노 어린 구호만이 메아리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많다. 최근 이란 리알화 환율은 1달러(한화 약 1,400원)당 142만 리알이라는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2015년 핵 합의 당시 3만 2,000리알 수준이었던 가치가 10년 만에 44분의 1로 쪼그라든 셈이다. 상인들은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거리로 나섰다. 한 상인은 외신과 인터뷰에서 관리들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조차 없다며 이 환율로는 휴대폰 케이스 하나조차 팔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화폐 가치 하락을 넘어 이란이라는 국가 시스템 전반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시장은 공포에 질렸고, 시민들은 리알화를 버리고 달러를 확보하려는 '달러화 현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란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약 100달러(약 14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4인 가족 기준 최저 생계비인 450달러(약 63만 원)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인구의 절반인 4,000만 명이 빈곤선 아래로 추락했고, 그중 700만 명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절대 빈곤 상태다. 마수드 페제시키안(71) 대통령은 내무부 장관에게 시위대의 정당한 요구를 경청하라고 지시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거리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부패의 청구서와 잉크 마를 날 없는 발권기
이란 리알화 몰락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면 2025년 6월에 발생한 이스라엘과의 12일 전쟁과 마주하게 된다. 이 전쟁으로 이란은 GDP의 약 9.2%에 해당하는 최대 350억 달러(약 49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핵 시설과 미사일 기지뿐만 아니라 주요 유류 저장소와 항만 시설이 파괴되며 물류망이 마비됐다. 정권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했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은 인플레이션을 자극했고, 이는 곧바로 리알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국제 사회의 쇠말뚝이 박혔다. 2025년 9월 29일,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3개국이 이란의 핵 합의 불이행을 이유로 유엔 스냅백(제재 신속 복원) 조치를 발동했다. 이로 인해 2015년 이후 해제됐던 국제 제재가 일제히 부활했다. 이란 국영 은행들의 자산은 다시 동결됐고, 원유와 가스 수출길은 좁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 2.0 정책까지 더해지며 이란의 그림자 함대는 정밀 타격을 받았다. 이란은 석유를 팔기 위해 국제 시세보다 배럴당 10달러(약 1만 4,000원) 이상 할인된 가격을 제시해야 했고, 그마저도 대금을 회수하는 데 막대한 금융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내부적인 금융 부패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거대 민간 은행인 아얀데 은행의 파산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 은행이 남긴 7,500조 리알(약 9.8조 원)의 부채 중 90%가 정권 내부 관계자들에게 흘러 들어간 부당 대출이었다. 정부는 이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돈을 찍어냈고, 전문가들은 이 은행 하나로 인해 연간 인플레이션이 5%포인트 추가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이란 의회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의원은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향해 국민들의 뼈 깎는 발소리가 들리느냐며 질타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모하마드 레자 파르진 중앙은행 총재가 사퇴했고, 과거 제재 국면에서 중앙은행을 이끌었던 압돌나세르 헴마티가 구원투수로 재기용됐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석유 수출이라는 돈줄이 막힌 상태에서 수장 교체는 침몰하는 배의 키잡이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테헤란 거리의 분노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고통 분담이라는 명목하의 가혹한 긴축이다. 2026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세수를 62% 이상 늘릴 계획이다. 부가가치세(VAT)를 10%에서 12%로 올리고, 식료품과 의약품 수입에 지원하던 우대 환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반면 공무원과 연금 수급자의 임금 인상률은 인플레이션의 절반 수준인 20%로 묶었다. 실질 소득이 반토막 난 국민들에게 저항 경제를 강요하면서도 혁명수비대와 국영 방송국 예산은 증액했다. 국영 방송 IRIB의 예산은 355조 리알(약 4,970억 원)로 책정되어 민생보다 정권 홍보가 우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구조적인 악재도 이란을 옥죄고 있다. 수십 년간의 인프라 투자 부재로 전력망은 붕괴 직전이다. 매일 전국적으로 3~4시간씩 정전이 발생하며 제조업 가동률은 50% 이하로 떨어졌다. 더 치명적인 것은 수자원 고갈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강수량이 개선되지 않으면 수도 테헤란을 포기하거나 시민들을 대피시켜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물 부족은 농업 생산성을 파괴했고, 이는 식품 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12월 기준 이란의 식품 인플레이션은 72%에 달한다. 계란 한 판 가격은 6월 90만 리알에서 현재 200만 리알로 두 배 넘게 뛰었다.
결국 정부는 리알화에서 0을 네 개나 빼는 화폐 개혁 카드를 꺼냈다. 1만 리알을 1토만(또는 신리알)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하지만 이는 고장 난 엔진은 그대로 둔 채 계기판의 숫자만 고치는 꼴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고 재정 적자를 화폐 발행으로 메우는 관행이 계속되는 한, 아르헨티나나 짐바브웨가 겪었던 초인플레이션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헴마티 신임 총재는 취임 일성으로 통화 가치 안정을 약속했지만, 바자르 상인들은 이미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은 모양새다.
이번 시위가 무서운 점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주역이었던 '바자르 상인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히잡 시위가 젊은 층의 가치관 갈등이었다면, 이번 시위는 생존권의 문제다. 테헤란 곳곳에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함께다'라는 구호와 함께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정치적 구호가 섞여 나오고 있다. 이란 사법부 수장인 골람호세인 모세니 에제이는 환율 조작 배후를 엄벌하겠다고 경고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배고픈 민심을 총칼로 누르기엔 한계가 명확해 보인다. 이란 경제는 이제 핵 협상 타결이라는 기적이나 근본적인 체제 변화 없이는 회복 불가능한 지점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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