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가 미국과의 원유 공급 협상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밝히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은 물론 한국의 에너지 수급 전략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미·베네수엘라 관계 변화가 글로벌 원유 흐름에 영향을 미칠 경우, 수입 원유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 역시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DVSA는 최근 성명을 통해 미국 측과 원유 판매 조건을 놓고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거래가 성사될 경우 국제 시세를 기준으로 한 상업적 가격이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해당 협상이 정치적 거래가 아닌 순수한 상업 계약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존 해외 파트너들과 적용해온 조건과 유사한 틀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의는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산 원유 접근을 일부 허용하면서 본격화됐다. 미국은 자국 석유 기업의 베네수엘라 진출 가능성을 열어두는 동시에, 장기간 이어진 제재 기조를 부분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베네수엘라 측은 원유를 빚의 대가나 정치적 보상 수단으로 제공하는 방식에는 선을 그으며, 국제 가격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태도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글로벌 원유 시장의 공급 구조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제재와 시설 노후화로 생산과 수출이 크게 위축돼 왔다. 만약 미국과의 협상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경우,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국제 시장 유입 물량이 늘어나며 가격 변동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에너지 업계 역시 이러한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에너지 수급 불안이 확대될 수 있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해 왔으며, 중남미와 북미 지역 역시 잠재적 대안 공급처로 꾸준히 검토돼 왔다.
현재 한국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를 중심으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산 원유를 일부 도입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과거에도 한국으로 수입된 전례가 있으나, 제재 강화 이후 사실상 거래가 중단된 상태다. 업계에서는 미·베네수엘라 관계 개선이 현실화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베네수엘라산 중질유가 다시 아시아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에너지 수급 안정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제 원유 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비축유 관리와 수입선 다변화 전략을 병행하고 있으며, 특정 지역 리스크가 전체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 중이다. 미·베네수엘라 협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중장기적으로 분석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기간 내 한국이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직접 도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미국의 제재 정책 변화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고, 베네수엘라의 생산 인프라 복구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공급 구조가 변화할 경우 국제 유가 흐름에 영향을 주고, 이는 곧 국내 유가와 물가, 산업 전반에 연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이번 베네수엘라 원유 협상은 특정 국가 간 거래를 넘어 국제 에너지 질서 재편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한국으로서는 직접적인 거래 여부를 떠나, 글로벌 원유 공급 지도 변화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한 분석과 대응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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