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올해 대입부터 학교폭력 가해 이력이 대학 전형 점수에 본격 반영되면서 수시모집에서 탈락하는 수험생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학교폭력 근절’ 기조에 따라 대학들이 학교폭력 기록을 의무적으로 평가 요소에 포함한 결과다.
다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학생의 장래를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법적 분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가 내놓은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 방침에 따라 2026학년도 대입부터 모든 대학, 모든 전형에서 학교폭력 조치 사항이 의무적으로 반영된다.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은 2023년 당시 교육부가 정순신 전 국가 수사본부장 후보자 아들의 학교 폭력 사건을 계기로 삼아 학교폭력 가해자의 꼼수 입학을 막겠다며 제시한 대책이다.
해당 대책에 따르면 출석 정지, 학급 교체, 전학 등 무거운 징계를 받은 학생에 대한 관련 기록이 졸업 후 4년까지 보존된다. 이는 가해 학생들이 재수나 삼수를 하더라도 가해 이력이 입시 결과에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된 방식이다.
2025학년도에는 147개 대학이 자율적으로 반영했으나 이번 대입부터는 모든 대학이 의무적으로 따른다.
실제로 2026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거점 국립대학에 지원한 학교폭력 가해자가 대거 불합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2일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학교폭력 가해 전력이 있는 162명이 서울대를 제외한 9개 거점국립대의 수시 전형에서 불합격했다.
가장 많은 탈락자가 발생한 학교는 강원대로 총 37명이었다. 경상국립대와 경북대는 각 29명, 28명이었다. 그 외 ▲전북대 18명 ▲충남대 15명 ▲전남대 14명 ▲충북대 13명 ▲부산대 7명 ▲제주대 1명 등이었다.
학교폭력은 사안의 경중에 따라 1호(피해 학생에게 서면 사과)부터 9호(퇴학)까지 분류되며 학생부에 기재된다. 특히 △4호(사회봉사)·5호(특별교육·심리치료)는 졸업 후 2년간 △6~8호(출석 정지·학급 교체·전학)는 4년간 △9호(퇴학)는 영구적으로 기록에 남는다. 다만 감점 수준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조만간 발표될 정시 결과까지 포함할 경우 탈락 인원은 한층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학교폭력 이력이 대입 합격 여부를 좌우할 정도로 강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재발 방지에 대한 기대와 함께 학교 현장과 법조계를 중심으로 제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 조치가 학교폭력 방지에 일정 효과는 있지만 과도한 제재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회복의 기회 없이 영구적 낙인을 부여하는 것이 교육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느냐는 지적이다.
더욱이 학교폭력 기록이 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가해학생 쪽이 기록을 지우기 위해 사과 대신 소송을 택하는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분쟁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자 회복 조치 역시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진행된 ‘2026 피해중심 학교폭력 정책토론회’에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 이재성 변호사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에게 가장 시급한 조치는 가해 학생과의 물리적·공간적 분리이지만 현 제도는 분리 조치를 내리기 매우 어렵게 설계돼 있다”며 “대입제도와 직접적으로 연계돼있다 보니 심의위원회에서 가해 학생의 조치 수위를 정할 때 ‘대학 진학을 막을 정도로 중대한가’라는 고민에 놓이고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를 위한 조치는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폭력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엄벌주의 정책이 역설적으로 피해 학생의 보호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으로 학교폭력 조치와 대입의 연계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 학생을 장기간 분쟁상황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이 변호사는 “가해 학생을 대학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중의 응보적 감정을 해소할 뿐 피해 학생의 실질적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입 연계 정책을 단기간 내 수정하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심의위원회에서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 않는 가해 학생의 전학·학급교체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제도가 처벌 강화에 무게를 두는 사이 정작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재 피해 학생이 상담·치료를 받더라도 비용을 먼저 부담한 뒤 사후 공제받아야 하는 구조인 데다 분쟁이나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지원이 중단되는 등 제도적 공백 역시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오는 2029년까지 피해 학생 전담 지원관을 현재의 2배 이상 증원하는 등 치유 지원 체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결국 제도의 성공 여부는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책임 부과와 피해 학생의 실질적 회복 지원 사이에서 균형을 얼마나 세심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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