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서의 사진을 조명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 파리 포토(Paris Photo).
뛰어난 여성 사진가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프로그램
‘엘르 × 파리 포토(Elles × Paris Photo)’는 전시장을 가득 메운
강렬하고 도발적인 이미지의 미로 속을 새로운 시선으로 거닐게 했다.
프로그램에 선정된 여성 사진가의 작품 50여 점은 전시장 전체를
가로질러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여성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해온 사진 세계를 기념했다.
그 가운데 신체와 그 재현에 집중한 마리끌레르의 큐레이션을 소개한다.
여성의 눈을 통해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여정에 당신도 함께하길.
마리 로르 드 데커
Marie-Laure de Decker
Courtesy of galerie Anne-Laure Buffard et galerie in camera
“거울 앞에서 자신의 라이카 카메라를 감싸안고 미소 짓는 사진가 마리 로르 드 데커의 초상에서는 어떤 마법 같은 기운이 퍼져 나온다.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부터 기쁨이 감도는 미소, 카메라를 부드럽게 감싸 쥔 모습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물린다. 그의 사진에서는 일종의 ‘시선의 전복’이 이루어진다. 마치 카메라가 우리를 응시하는 듯한 구도를 통해 드 데커는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로서 자신을 사유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라이카는 그의 분신이자 사진가의 시선을 확장해주는 또 하나의 감각기관처럼 보인다. 그와 카메라가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듯하다.” 안 로르 뷔파르(Anne-Laure Buffard), 갤러리스트
호리에 미카
Mika Horie
“일본어 ‘후키(Fuki)’는 연꽃을 뜻하는 동시에 여성의 강인함을 상징한다. ‘Fuki’ 연작의 피사체들은 연잎에 감싸인 상태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춤추려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다. 이 연작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나체를 대담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여성만이 지닌 고유한 힘을 강조한다. 이들의 단단한 내면은 자신의 목소리와 사회적 위치를 남성과 동등한 기반 위에 세울 수 있는 힘이 되고, 외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적인 품위까지 지키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말해준다.” 호리에 미카
미리암 불로스
Myriam Boulos
Beirut, Lebanon, Archival pigment print, 90×60cm, 2023 ©MYRIAM BOULOS/MAGNUM PHOTOS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사진이라는 매체에 이끌리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결국 ‘만남’이라는 사실이 늘 흥미롭다. 남성의 시선에서 벗어나 여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를 특정한 상징이나 고정관념으로 환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이가 독립적 존재이자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믿는다.” 미리암 불로스
수전 마이젤라스
Susan Meiselas
“이 자화상은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숙집에서 살던 시절 찍었다. ‘44 Irving Street’ 프로젝트는 모르는 이웃이 사는 집의 문을 두드리고, 그들의 방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도 될지 묻는 일로 시작됐다. 저마다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이 앉고 싶은 자리를 스스로 선택해 촬영에 임했다. 나는 이후 인화지를 들고 그들을 다시 찾아가 사진 속 자신의 모습에 대한 감상을 편지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수전 마이젤라스
이시카와 마오
Mao Ishikawa
“오키나와 고자(Koza)의 한 바에서 일하던 시절, 이시카와 마오는 우연히 미 해병대로 복무하다 제대하고 귀국한 한 남성을 만났다. 이후 고향 필라델피아로 돌아간 그를 찾아가 그곳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오키나와에 주둔했던 많은 흑인 병사들이 빈곤과 인종차별에 시달린 사실을 알고 있던 작가는 그들이 미국에서 어떤 장소에 살고, 어떤 삶을 꾸리는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시카와의 깊은 공감과 연대 의식이 연작
전체를 관통한다.” 가키시마 다카시(Takashi Kakishima), 포에틱 스케이프 갤러리 디렉터
미아 위너
Mia Weiner
raw ruby and 14 carat gold hanuman pendant, 109×175cm, 2024 ©HOMECOMING GALLERY/MIA WEINER
“이 사진을 찍던 당시, 나는 여름 내내 뜨거운 열기와 눅눅한 습기가 온몸을 휘감던 작가 레지던시에 머물고 있었다. 사진의 왼쪽 위를 자세히 보면 내 손에 카메라 리모컨이 들려 있는 게 보인다. 늦은 오후에 직조기를 챙겨 스튜디오로 돌아온 뒤, 나는 사진을 ‘직조’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실이 교차하는 모든 지점을 계획해 하나의 거대한 지도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 작업에서 규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드러움이란 감각이 공간을 가득 메우길 바랐다.” 미아 위너
사비하 치멘
Sabiha Çimen
Photography, 50×50cm, March, 2020. ©SABIHA ÇIMEN/MAGNUM PHOTOS, COURTESY LOOCK, BERLIN
“튀르키예 함맘의 차가운 대야에 담긴 오렌지. 튀르키예 사람들이 공중목욕탕의 무거운 증기와 열기를 피해 몸을 식히는 방식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기억에 남은 풍경이다. 나는 주변화된 여성들과 어린 소녀들이 카메라를 들 때, 세계는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다고 믿는다. 그들은 더 이상 타인이 써놓은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자신만의 서사를 써나가는 저자가 된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일종의 저항이 되어, 이름표와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세상에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그들의 이미지 안에서 아름다움은 회복력이 되고, 부드러움은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한다. 이때 젠더는 고정된 무언가가 아니라 유동적으로 흐르고, 자율에 의해 선택되고, 살아 움직이는 개념이 된다.” 사비하 치멘
피파 가너
Pippa Garner
“피파 가너의 작업에 단순히 여성적 시선을 적용할 수는 없다. 그는 이미 이 개념을 초월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점, 그 혹은 그녀만의 고유한 시선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진이 찍힐 당시, 그는 아직 필립 가너(Philip Garner)였다.” (피파 가너는 1980년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따라 성별을 바꾸며 ‘필립’에서 ‘피파’로 개명했다.) 유르겐 말페이트(Jurgen Maelfeyt), 아트 페이퍼 에디션 디렉터
일디즈 모란
Yıldız Moran
“일디즈 모란의 시선은 매우 추상적이고 촉각적이다. 동시대 남성 작가들이 기록 자체를 중시했다면, 그는 현실을 정확히 기록하는 일보단 사진에 특정한 질감을 남기는 데 더욱 집중했다. 원본 네거티브에는 창가에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한 남성의 시선이 담겨 있었지만, 모란은 그 부분을 어둡게 처리해 그의 시선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결국 오롯이 남은 건 작가 자신의 시선이다.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데니즈 아르툰(Deniz Artun), 갤러리 네브 디렉터
이브 아널드
Eve Arnold
Lifetime gelatin silver print, 40×50cm, 1954 ©EVE ARNOLD/ MAGNUM PHOTOS
“1954년에 쿠바 아바나에서 작가 이브 아널드가 매그넘 포토스의 초기 촬영 과제를 수행하던 시기에 찍은 사진이다. 언뜻 보기에는 영화의 한 장면 같거나 그가 찍은 셀러브리티의 백스테이지 사진처럼 보이지만, 그가 여기서 진정으로 포착한 것은 음울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고립의 순간이다. 아널드의 접근 방식은 섬세한 관찰과 절제에 기반한다. 조용히 그리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맞춰 적응하고, 그 순간을 자신의 작업 안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여기, 이토록 소란스럽고 남성 중심적인 세계 한가운데에서, 아널드는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사색적인 순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클레망스 비샤르 라로크(Clémence Vichard-Larroque), 매그넘 포토스 갤러리 디렉터
헬렌 채드윅
Helen Chadwick
©COPYRIGHT OF THE ESTATE OF HELEN CHADWICK
“여성 예술가들은 자신이 보이고 싶은 방식대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사진에서 채드윅은 정면으로 서서, 관람자의 두 눈을 담대하게 응시하며 전통적 여성 누드의 관습을 비튼다. 기존의 여성 누드가 비스듬히 눕거나 혹은 생각에 잠긴 채, 아니면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여성을 타인의 시선 아래 놓이게 했다면 채드윅은 이 누드 자화상에서 시선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는다. 그는 주방 오븐의 금속 프레임 안에 들어가 가만히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프레임에 담았다. 두 개의 열판이 양쪽 가슴을 가리지만 다른 신체 부위, 특히 성기는 그대로 드러난다. 선구적 여성 예술가가 남긴 대담하고도 상징적인 작품이다.” 리처드 살툰 갤러리
줄리아 마거릿 캐머런
Julia Margaret Cameron
“캐머런은 마돈나와 아기 예수, 그리고 세례요한으로 이루어진 성가족을 주제로 삼는다. 부드러운 초점과 조명이 회화적인 질감을 만들어내며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캐머런은 전 생애에 걸쳐 예술가로 인정받았고, 그의 작품은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과 콜나기 갤러리에 전시되기도 했다. 19세기 여성 사진가 중 드물게 예술가로서 제도권에 호명된 인물이다.” 한스 P. 크라우스(Hans P. Kraus), 갤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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