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김기주 기자] 춘천의 한 태권도 도장. 함박눈이 쏟아지는 겨울 한복판이지만 도장 안 공기는 후끈하다. 도복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열한 살 은이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진다. 태권도를 시작한 지 3년. 짧은 시간임에도 은이는 도 대회와 전국 대회를 넘나들며 메달을 휩쓸 만큼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남들보다 앞선 재능보다는, 하루하루 쌓아온 노력의 시간이 은이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
은이가 태권도에 이토록 매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회에서 처음 메달을 따왔던 날, 누구보다 기뻐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 때문이다. 그 미소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은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회에 나갈 때마다 혹시나 조부모님께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은이의 마음 한켠에는 늘 미안함도 함께 자리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은이는 그저 두 분이 오래도록 곁에 있어 주길 바랄 뿐이다.
갓난아이였던 은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부모 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직접 손녀를 키우는 길을 택했다. 한때 무속인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할아버지는 이제 불러주는 곳이 없고, 할머니 역시 뇌동맥류로 두 차례 쓰러진 데 이어 척추 수술까지 받아 거동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손녀 앞에서는 늘 괜찮은 척 웃음을 잃지 않는다.
도 대표 선발전을 한 달 앞두고 체중 감량에 들어간 은이를 바라보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동네를 돌며 전단지와 빈 병을 줍는다. 은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은이 또한 몰래 전단지를 주우며 힘을 보태지만, 혹여 그 모습을 보고 상처받지는 않을지 조부모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을 나이지만, 은이는 그 마음을 숨긴 채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간다.
은이의 꿈은 태권도 세계 랭킹 1위 이대훈 선수처럼 국가대표가 되는 것. 요즘 은이는 저녁 6시가 넘으면 스스로 식사를 조절하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을 때도 달걀만 먹으며 체중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급 회장을 맡을 만큼 책임감도 강하다. “운동을 하더라도 공부는 놓치면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학업과 훈련을 모두 소홀히 하지 않는다.
도장에서의 훈련이 끝난 뒤에도 은이는 혼자 남아 부족한 체력을 채우기 위한 연습을 이어간다. 힘들 때도 있지만 곁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면 언젠가는 꿈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은이. 남들에겐 유난히 차갑게 느껴질 이 겨울이, 은이에게는 누구보다 뜨겁다.
은이의 이야기는 오는 10일 오후 6시, KBS1 ‘동행’을 통해 방송된다.
뉴스컬처 김기주 kimkj@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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