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의 '계엄 사태'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시민의 힘으로 내란의 위기를 극복하고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역사적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넘어, 급변하는 글로벌 질서와 AI라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대응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동시에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는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기획분과위원을 역임하고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연구를 마치고 돌아온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를 만났다.
안 교수는 인터뷰 내내 현재 한국 정치가 직면한 '위기'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목격한 '복고적 기술주의'의 부상을 언급하며, 기술 권력과 극단적 세계관이 결합한 새로운 흐름이 국제 관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외풍 속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의 '차가운 내전'을 종식하고, 중도와 합리적 보수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연합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또한 그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한 핵심 키워드로 '감당할 만한 삶(Affordability)'과 '실사구시'를 제시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민생 현장에 온기를 전달하지 못해 실패했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내란 핵심 세력을 단호히 처벌하면서도, 민생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관된 전략과 메시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부에서는 계엄 이후의 헌정 질서 확립, 민생 경제의 위기, 그리고 청년과 교육을 아우르는 정치 개혁 전반에 대한 안 교수의 날카로운 통찰을 담았다.
※ 이 인터뷰는 베네수엘라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25년 12월 30일에 진행되었다.
실리콘밸리의 변화: '복고적 기술주의'의 시대가 열렸다
안병진 교수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복고적 기술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이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미래에 대한 종교적 신념인 '기술주의'와 전근대적인 '기독교주의' 세계관이 기묘하게 결합된 형태다. 과거 스티브 잡스 스타일의 자유주의적 실리콘밸리와 달리, 일론 머스크나 피터 틸 같은 새로운 아이콘들은 우파적 가치를 계승하며 국제 관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 매우 위험한 신호다. 안 교수는 국제적인 혼돈과 변화의 추세에 대해 한국의 준비가 너무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 새로운 흐름의 부상과 향후 전망을 잘 이해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한국은 국제 관계에서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거대한 세계관의 충돌이 시작된 만큼 한국 사회 전반의 각성과 치밀한 대응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재명 정부의 이중 과제: 헌정 질서 확립과 AI 전환
이재명 정부는 계엄 극복 이후 '안정된 헌정주의 질서 구축'과 '세계적 AI 경쟁 속 새로운 전환'이라는 이중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안 교수는 내란을 추구했던 세력들이 여전히 승복하지 않는 상황에서 헌법에 기초해 이들을 단호히 처벌해야 한다고 보았다. 동시에 합리적 보수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여론으로 동조 세력을 고립시키는 신중하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주당 일각의 거친 모습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정보통신법이나 언론중재법 추진 과정에서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 원로들의 의견을 더 수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이를 '21세기 새로운 전투적 민주주의론'이라 부르며, "한국처럼 자유주의적 헌정주의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이러한 과제는 자칫하면 일관된 기준이 부재한 자의성에 휘둘릴 수 있다"며 신중한 추진을 당부했다.
바이든의 실패에서 배우는 '민생 회복'의 중요성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2026년 초부터 '민생 회복' 기조가 전면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안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IRA라는 성과를 내고도 유권자들에게 소구하지 못해 실패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정책의 온기가 민생 현장까지 전달되지 못하면 정체성 투쟁만 하는 것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헌정주의 회복과 더불어 '감당할 만한 삶(Affordability)'의 기초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안 교수는 현재 정부 내 민생 위기감이 약한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대통령실과 내각의 메시지가 새해부터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내년 초부터는 경제와 민생 회복을 전면에 내거는 일관된 전략과 인물, 그리고 메시지가 1년간 단단히 구축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기본사회 담론 역시 이러한 시대정신과 공명하며 구체적인 민생 대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 실용주의에 기초한 폭넓은 연합 정부 만들어야
정치 구도 측면에서 안 교수는 보수 경제통인 김성식 전 의원 등을 기용한 인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폭넓은 통합적 행보를 절대적 과제로 꼽았다. 계엄을 극복한 시민의 민의는 단순한 진보 정부가 아니라, 극우 세력이 다시는 집권할 수 없는 '폭넓은 연합 정부'를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또 정치인은 본인이 어떤 정도 수준의 정치 자본(political capital)을 가지고 있는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사구시'적 DNA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한국 운동권 출신 진보가 갖지 못한 강점을 가졌다는 분석이다. 안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가지는 통합과 실용이라는 노선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좋은 전통을 잇는 것"이라고 평했다. 다만 경제 메시지가 여전히 약하고, 일부 인사에 있어 헌법적 가치보다 실용을 앞세우는 모습에는 성찰적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초당적 이슈 해결을 위한 '대전환'의 정치
안 교수는 자살 예방, 통합 돌봄, AI 초격차, 기후 위기 대응 등을 진보와 보수를 넘어선 '초당적 이슈'로 규정했다. 이러한 과제들은 기존의 이분법적 관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광범위한 연합을 통해 슬기롭게 넘어가야 할 대전환의 과제들이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생명, 보건, 주택, 돌봄, 안전 등은 초당적 이슈들이다"라며 현재 민주당의 생각 방식이 달라져야 함을 역설했다.
교육 문제에 있어서도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진보의 '동등성'과 보수의 '엘리트주의'를 넘어, 일론 머스크급의 탁월한 인재를 키우는 동시에 모두가 존엄한 삶을 누리는 '공화주의적 교육'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현재 이재명 정부의 교육 개혁 아젠다가 지구적 긴급성에 비해 너무 약하다며, 인재 형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주문했다.
정치 개혁 핵심은 '시민 헌정주의'와 선거제 개편
정치 개혁의 핵심으로는 '시민 헌정주의'를 제시했다. 헌법은 원로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며, 이를 관철하는 수단이 바로 선거법이라는 시각이다. 양당제 하에서 극단적 팬덤에 휘둘리는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선호투표제나 내각제적 방향 등 개헌과 선거제 개편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의가 다양하게 분출될 수 있도록 '시민의회' 실험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사례를 넘어 한국 특유의 역동성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국정 운영 원리로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사회대개혁위원회, 그리고 이후 시민의회 운동이 개헌 국면에서 시민들의 바람이었던 시민 헌정주의를 국정 운영의 원리로서 구현시킬 수 있어야 내년, 내후년이 빛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승리위한 키워드: 미래, 풍요, 공감 + '청년'
마지막으로 안 교수는 민주당이 잃어버린 화두인 '청년'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을 단순히 영입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도적으로 미래 과제를 제안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K-POP이나 K-뷰티의 성공 공식처럼 젊고 혁신적인 리더들이 정치 전면에 배치될 때 민주당의 지속 가능한 정치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는 '미래·풍요·공감'이라는 세 가지 브랜드를 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가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며, 민주당이 스타트업의 역동성을 해치는 규제 정당으로 인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았다. 안 교수는 "지속 가능한 민주당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어젠다를 만들려면 내년서부터는 크게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뼈아픈 성찰과 변화를 촉구했다.
* 안병진 교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국 정치 전문가이자 문명사적 시각으로 정치를 분석하는 정치학자이다. 서강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뉴욕 뉴스쿨 대학(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단순히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기후위기나 AI 등 거대한 문명적 전환기 속에서 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특히 미국 대선 분석과 한국 정치의 구조적 변동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해 왔다. 주요 저서로는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예정된 위기' '코로나19, 동향과 전망' '위기의 한국 정치와 공화주의 대안'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서 미래 세대를 위한 정치 담론 형성과 문명적 대전환에 대비한 국가 전략 수립에 힘쓰고 있다.
다음은 안병진 교수와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기획분과위원으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인수위나 국정기획위라는 게 어떻게 말하면 통과의례 같은 성격도 있다. 끝나고 스탠퍼드대로 가셨는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원래 제가 올해 1년이 연구년이다. 학자로서 중요한 시기인데, 하필이면 작년 12월에 계엄이 터졌고, 그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미국을 가는 게 좀 그랬다. 80년대를 보낸 사람 입장에서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그리고 국정기획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러다 보니까 세월이 다 지나가고 9월이 됐는데 당시 저는 국제 관계가 너무 급변해서 그에 대한 위기감이 컸다. 그래서 미국 서부에 가서 전 세계의 중심, 실리콘밸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해서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구년이 얼마 안 남아서 3개월밖에 못 갔지만 단행본 분량의 원고도 하나 써서 왔다.
-실리콘밸리가 IT 중심인건 아는데 세계사적으로 그런 의미가 있는가?
짧게 말씀드리면 이런 거다. 제가 거기서 생각한 화두가 '복고적 기술주의의 시대가 부상한다.'라는 것. 이게 저의 가설이다. 약간 학문적 용어긴 한데, 기술주의라는 미래에 대한 종교적 신념(근대)과 기독교주의 등 복고적 세계관(전 근대)이 기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지금 일론 머스크나 팔란티어의 피터 틸, 알렉스 카프 등 현재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아이콘들은 과거 우파들의 단순한 계승이 아니라 복고적 기술주의 경향이라는 새로운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알아온 스티브 잡스 스타일의 기존 자유주의 성향의 실리콘밸리와도 너무 다르다. 이 새로운 흐름의 부상과 향후 전망을 잘 이해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한국은 국제 관계에서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여전히 한국은 국제적 혼돈과 변화의 추세에 대한 관심과 준비가 너무 부족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계엄과 내란이 끝난 게 끝난 게 아니다. 이 화두가 나라 전체를 누르고 있다. 모든 국정의 중심이 거기에 쏠려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보는가?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중심에 이중적 과제가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소위 K-민주주의, 그러니까 전 세계가 놀란 계엄을 시민의 힘으로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속에서 '그러면 제도적으로 어떻게 다시는 내란이나 그런 것이 생기지 않게끔 안정된 헌정주의 질서를 만들 것인가.'라는 것과 동시에 '세계적인 AI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새로운 전환을 할 것인지'.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고민하시는 거 아닌가? 그런데 다만 말씀처럼 극단적인 형태로 내란을 추구했던 세력들이 아직까지는 여전히 승복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내란 극복의 과제가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게 참 어려운 것 같다.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한 헌정주의적인 방식으로 내란 핵심세력을 단호하게 처벌하면서도 합리적 보수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여론으로 이에 동조하는 이들을 고립시켜 나가는 과제에서 조금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민주당 일각에서 보이고 있는 모습이 좀 거칠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게 보이는데, 최근의 정보통신법 개정 문제나 앞으로 과제가 될 언론중재법 같은 부분이다. 이런 부분에서 문제의식은 이해하지만 조금은 더 중도층, 그리고 기존 한국 사회의 합리적 보수 원로들, 이런 분들의 의견을 수렴해 나가면서 조금 더 폭넓은 토대 속에서 추진했으면 한다. 반헌법적 언사에 대해 새로이 단호한 기준을 만들어 가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 모두 차가운 내전의 시대에 중요해진 새로운 과제이다. 나는 이를 21세기 새로운 전투적 민주주의론이라 부른다. 다만 민주당이 조금 더 신중하고 그 동의의 기반을 넓혀나가며 헌정주의 회복과 강화의 과제를 추진했으면 좋겠다. 한국처럼 자유주의적 헌정주의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이러한 과제는 자칫하면 일관된 기준이 부재한 자의성에 휘둘릴 수 있다.
동시에 나는 경제 부분에서 새로운 기조가 2026년 초부터 전면화됐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새 정부의 기조가 실제 민생 회복이라는 점이 핵심 기조로 등장했으면 한다. 그게 제 바람이다. 그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위기감이 좀 약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제가 지금 3개월간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내 느낌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실이나 내각이 메시지 등에서 새해 초부터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고 싶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IRA라는 정말 훌륭한 성과를 냈다. 미국이 신재생에너지로 더 일찍 전환해야 하는데 지금 중국이 신재생에너지도 지배하고 있다. 바이든의 문제의식이 기본적으로는 옳았던 거다. 그런데 IRA라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뜻과 달리 유권자들에게 크게 소구하지 못했다. 실제 민생 현장까지 그 온기가 전달되지 못했다. 그러면서 마치 바이든 대통령이 정체성, 문화 투쟁만 하는 걸로 왜곡된 관념이 생겼다. 그게 나중에 지속 가능한 민주당의 질서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재명 정부가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다. 헌정주의 회복, 그다음에 새로운 번영과 맘다니 뉴욕시장이 말한 감당할만한 삶(Affordability)의 기초를 만들어가야 되는 이 두 가지 과제다. 맘다니의 이 화두는 트럼프조차 수용할 정도로 오늘날 시대정신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맘다니 이전에 제기했고 최근 APEC 등에서 국내외적으로 적절히 제기한 기본사회 담론도 사실 맘다니의 화두와 공명한다. 내년 초부터는 경제와 민생 회복을 전면에 내거는 일관된 전략과 인물, 그리고 메시지가 1년간 단단히 구축됐으면 좋겠다.
-1월에 윤석열 대통령 1심 선고가 난다. 내년도 올해 못지않은 정치적 격동기라고 본다. 야당 장동혁 대표에 대해서는 '바꿔야 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다. 어떻게 끝까지 '윤 어게인'을 이야기하느냐는 것이다. 여당은 정청래 대표의 조급증이 사법부에 일정 정도 유착됐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내란 문제에 대해 국민들한테 자유롭지 못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청와대 쪽에서 계속 속도조절 이야기를 했는데 잘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결국 김병기 대표가 사퇴했다. 이런 모습들이 어우러지면서 이재명 정부 전반에 대한 신뢰도 역시 흔들리는 상황까지 온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민국이 지금 위기이자 절호의 기회인데, 이걸 못 살아나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저도 사실 위기감이 들어서 조금 세게 말하는 것이다. 대표님도 알다시피 저는 과거에도 민주당에 미리 위기감을 경고해 온 적이 많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지금 위기를 느끼는 건 경제 부분이다. 환율과 부동산은 대통령이 아무리 잘하더라도 구조적 요인이라서 쉽지 않다. 대통령도 얼마 전에 절망감을 토로했다. 부동산은 제갈공명이 온들 2026년에 단기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 사실 불편한 진실이다. 부동산만 그런 게 아니라 환율도 그렇다. 환율도 지금 한미 정상회담의 후과다. 지금까지는 이재명 정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잘 대처했고 국제적 환경도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과연 2026년 어떤 상황이 닥칠지는 알 수 없다. AI 버블이 터질 수도 있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 너무 많다.
그러면 지금부터 충분한 국민들과의 신뢰를 가지고, 또 중도층을 폭넓게 견인하는 토대를 쌓아 놓지 않으면 그런 외풍이 닥쳤을 때 상당히 취약해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지금 중도층이 바라볼 때 정치적으로 오버하는 모습, 사법 개혁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오버하는 식의 모습이 축적된다면 내년 중후반기부터는 사실 위험할 수 있다.
-이번 인사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든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김성식 전 의원 같은 인물들이 포함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이분들은 보수적인 성향이지만 경제민주화라든지 이런 부분에 초점을 두고 의정 활동을 해 온 사람들이다.
저도 그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 지난 윤석열 정부 초기에, 제 기억에 KBS 일요진단에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제일 먼저 당신이 하실 건 총리 임명을 국회 쪽에 공을 넘기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좀 더 폭넓은 연합 정부를 하라는 이야기였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반대로 갔다.
이재명 대통령이 가지는 통합과 실용이라는 노선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좋은 전통을 잇는 것이다. 이번에도 상당히 폭넓은 통합적 행보를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계엄을 극복한 시민들의 바람은 진보 정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저는 진보주의자로서 진보정부가 됐으면 좋겠지만, 선거에서는 민의(Mandate)가 더 중요하다. 선거에서 드러난 민의는 진보 정부가 아니라, 다시는 그런 극단적인 극우 세력들이 집권할 수 없는 폭넓은 연합 정부다.
그런 점에서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두 가지는 아쉽다. 위에서 말했듯이 경제 메시지가 여전히 약하다는 점이다. 내년에는 부동산, 환율, 통합돌봄을 비롯한 시민들의 삶의 기본 조건에 대해 강력한 시그널이 필요하다. 경제 전반이 꼭 코스피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 부분에서 강력한 메시지와 일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 부동산과 환율에 대해 성찰적 메시지가 나왔느냐는 점에서는 의문이다. 환율 방어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일부 팀의 교체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혜훈 임명 문제도 있다. 대통령이 가진 큰 뜻은 이해하지만, 내란과 관련해 반헌법적인 언사를 했던 인물이라면 그에 대한 분명하고 철저한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 이건 대한민국의 기초에 대한 문제다. 실용이라 하더라도 그 실용은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한 실용이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론에서 흔히 실용을 이야기할 때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가치와 결합된 실용이다(pragmatism이란 영어단어는 풍부한 가치가 담긴 말이다).
며칠 전 그분의 발언을 보고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그때 분위기 때문이었다는 식의 설명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헌법을 지키느냐 마느냐는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문제다. 이 정도 자세를 가진 자를 임명하는 것에 난 매우 회의적이다. 그래서 이번 청문회를 통해 이혜훈 후보자가 얼마나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보이는지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중요한 검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재명 정부가 보수까지도 폭넓게 포용하면서 여러 가지 국정과제들을 풀어나가기 원한다고 했는데, 저는 그 부분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늘 비판해 왔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 80%가 지지했다. 탄핵안 가결 때도 국회의원 234명이 찬성할 정도로 압도적 지지로서 이뤄냈기 때문에 촛불 정부가 문재인 혹은 민주당만의 정부는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개혁연대, 범보수까지 포함한 국민통합 정부를 할 절호의 기회였다. 탄핵이라는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에 주어진 역사적 기회였는데, 그냥 민주당만의 정부, 민주당 원팀만 강조했다. 그래서 윤석열이라는 괴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5년 만에, 그것도 탄핵을 일으키고 근본적인 쇄신도 없는 그 정당에 넘어갔겠는가. 그건 문재인 대통령 개인 뿐만 아니라 그 정치 세력이 석고대죄해야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 과제는 남아 있다.
맞다. 본인이 어떤 정도 수준의 정치 자본(political capital)을 가지고 있는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야 되는데,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그런 감각이 굉장히 떨어진다. 김대중 대통령이 강인덕 장관을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했을 때의 그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번 계엄 이후에 이재명 대통령은 그 점에서는 굉장히 실사구시적이다. 한국 운동권 출신의 진보가 못 가진 DNA를 갖고 계시다. 취임후 정규재와 대화하고, 이번에 국무총리실의 사회대개혁위원회_그러니까 진보적인 어젠다들을 수용하려고 하는 시도와 동시에 김성식 전 의원이라고 하는 걸출한 보수 경제통을 임명하는 그런 균형을 하시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나는 지금 한국의 핵심 과제는 기존 진보와 보수 관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 국무회의나 장관들 보고 받을 때 얘기했던 자살 예방, 그게 진보의 어젠다인가 보수의 어젠다인가? 아니다. 통합 돌봄은 어떠한가? 대표님이나 저나 소위 베이비붐 세대, 그 밑의 X세대들이 지금 회사에서 다 퇴직하고 일부는 요양병원, 그다음에 요양원 등, 굉장히 심각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 그리고 저희 자식들, 청년 세대들이 AI로 인해서 더욱더 일자리가 없어지는 세상. 이게 진보의 이슈인가 보수의 이슈인가? 아니다.
그다음 초격차. AI의 초격차나 기후위기에 대한민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게 진보의 이슈인가 보수의 이슈인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생명, 보건, 주택, 돌봄, 안전 등은 초당적 이슈들이다. 그래서 맘다니의 감당할만한 삶 화두가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시대정신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재명 정부가 맞닥뜨린 이 대전환의 과제들을 초당적인 연합을 통해 우리가 슬기롭게 넘어가야 된다. 그 점에서 대표님이 얘기한 현재 민주당이 생각하는 방식이 내년에는 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얘기하면 이재명 정부에 대해서 아쉬움이 몇 가지 있다. 진보의 정부도 아니고 보수의 정부도 아니라는 건 진보적 과제를 하지 말자는 얘기도 아니고 보수적 과제를 하지 말자는 얘기도 아니다. 좀 더 넓은 토대 위에서 가자는 얘기다. 당장 예를 들어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교육 문제, 세계적인 인재 영입 문제. 이 점에서 진보적인 분들은 문제의식이 너무 약하다.
지금은 일론 머스크 같은 천재도 대한민국에 필요하다. 동시에 일론 머스크가 절대로 할 수 없는 과제, 모두가 함께 동등하게 공존하는 과제는 일론 머스크는 관심 없다. 그 사람은 0.1%의 성공에만 관심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두 가지를 다 해야 된다. 일론 머스크도 키워내야 되고, 모두가 기본적인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인재들도 키워내야 된다. 그런데 과연 현재 이재명 정부의 교육 과제가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을까. 저는 조금 회의적이다. 예를 들어서 현재 서울대 10개 만들기 과제, 그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저는 그 워딩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지역마다 훨씬 더 인재를 키워내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방식만 가지고 일론 머스크급의 인재를 외국에서 데려오거나 키워낼 수 있는가. 지금은 교육과 인재형성의 대대적 수술이 필요한 긴급한 상황이다.
진보 진영은 동등성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기존의 한국 보수들은 아이비리그 보내는 거에만 관심이 있다. 그런데 현재 이재명 정부가 처한 전환기는 탁월성의 인재도 키우고 영입해야 되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공화주의적 교육도 해야 된다. 이 두 가지를 다 해야 된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의 교육 개혁 아젠다가 현 지구적 상황의 긴급성에 비해 너무 약한 것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면에서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도 다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봤을 때, 그래도 국민들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한국의 그간 정치 발전의 역사를 보면 흥미롭다. 이재명 대통령처럼 지자체장 출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선진국형 유형이다. 미국에는 아시다시피 주지사 출신 대통령이 많다. 그런 점에서 저는 바람직한 유형이라고 본다. 제가 아는 한 지금까지 민주당 역사상 이재명 대통령처럼 구체성을 가지는 리더가 거의 없다. 운동가 유형은 장점도 있었지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다. 그 점에서 발전이다. 그러나 다만 내년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더 발전되셨으면 좋겠다. 세부적인 건 김민석 총리에게 맡기고, 좀 더 굵직하고 큰 어젠다, 대통령이 중점적으로 다뤄야 되고 가장 구조적으로 전환이 힘든 어젠다들을 중심으로 해서 집중적으로 다루셨으면 좋겠다.
지금도 잘하고 계시지만 AI와 기후 에너지 부분, 그다음에 인재 강국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균형 있는 지방사회, 그리고 통합 돌봄 등 존엄한 삶이라든지 이런 주요 이슈만 가지고 매주 회의하면서 진전이 안 되는 부분들을 계속 챙기고, 다양하게 심층 토론하며 진전을 국민들과 확인하는 그런 대통령실을 2026년에는 보고싶다. 2025년에는 충격요법으로서 마이크로매니지가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21세기 복잡한 현실에서는 소소한 부분은 총리에게 맡겨야 한다. 총리와 대통령의 역할 분담과 메시지 전략이 내년에는 조금 더 정교하게 진행됐으면 좋겠다.
-그 말을 받으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게, 저는 정치 개혁이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민생 경제를 국민들이 다 원하니까 경제 성과를 중심으로 가고, 정치는 그러면 여의도에 맡기느냐?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국정기획위원회에 계셨지만, 개헌이 국정과제 1호였는데 지금 사라졌다. 아무도 이재명 정부가 개헌을 추동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개헌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새롭게 탈바꿈할 하나의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다. 그런데 현재는 (우선순위가) 쭉쭉 밀리고 있다. 그 문제를 포함해서 양당제의 극단적인 진영 대결, 이런 부분들이 몇몇 인사로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이 부분도 과감하게 제3당이라든지 선거구제에 대한 이야기를 던져야 된다고 본다. 옛날 노무현 대통령이나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에도 우리나라 정치 개혁을 위해서는 선거구제 개혁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왜 국민의힘이 저렇게 버티느냐. TK를 기반으로 해서 107석 중 대부분이 TK, PK인데 이 사람들이 다음 선거를 치르더라도 이 제도 그대로 가면 온존할 수 있다. 계엄과 내란 속에서 벌어진 이번 대선 결과도 지역주의가 그대로 드러났다. 차이도 얼마 안 난다. 대통령이 50%를 못 넘었다. 그래서 집권 초반에 정치 개혁을 미뤄뒀다가는…. 저는 내년이 마지막 기회라고 본다. 집권 후반기, 지방선거 이후로 가면 할 수도 없다.
이번 계엄 때 시민들은 결국은 자신의 발걸음으로 계엄을 막았다. 그러니까 흔히 미국도 그렇지만 일부 학계가 헌법을 마치 최고의 학벌을 가진 나이 든 원로들만이 만드는 것인 양 오해한다. 그들의 헌법 해석 역할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발로 만들어 나가는 헌법이다. 그것을 나는 학문적으로 시민 헌정주의라 표현해 왔다.
시민 헌정주의를 관철시키는 가장 핵심적 수단이 무엇이냐. 선거법이다. 왜냐하면 선거법을 통해서 시민들의 아래로부터의 다양하고 다원적인 의견이 관철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표님 말씀처럼 양당제 하에서는 그 양당의 일부를 포획한 사람이 결국은 자의적으로 통치하는 걸 막기가 어렵다. 미국이 그래서 지금 트럼피즘을 아직까지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시민이 주도하는 헌정주의의 수단은 선거법이다. 그리고 개헌까지 연결하자면 결선투표라든지, 흔히 한국 정치에서 합의된 그런 부분들인데, 그 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내년에는 전면화되기를 저도 강력하게 희망한다.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 불신이 크다. 약속을 안 지키기 때문이다. 대선 전에 민주당과 야 5당이 정치 개혁 과제에 대해 합의했다. 그걸 안 지킨다. 국회에서 교섭단체가 되지 않고서는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해나갈 수가 없다. 교섭단체가 지금 20석 이상으로 돼 있는데, 이게 유신 때 소수 야당을 약화시키고, 관제 야당으로 자기들이 컨트롤하기 쉽게 하려고 10석을 20석으로 올린 거다. 우리가 유신은 다 비판하면서 왜 이 뼈아픈 역사는 안 돌리나. 지금 조국 대표가 다시 그때 요구 사항 중에서 약속을 지키라고 나왔다. 그런데 민주당은 회피하고 있다. 시민사회도 힘이 안 모인다. 시민이 우리 헌법을 지켰는데, 지금 그 시민은 국정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선거에서 민의가 무엇이냐를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는 민의가 다양하게 표출되는 광장과 삶터 등 외부와 잘 연결할 때 역동성이 만들어진다. 이번에 만시지탄이지만 어쨌든 총리실 산하 사회대개혁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거기에 좋은 분들도 많이 들어가 있는 걸로 안다. 한편에는 저희 국정기획위원회 일부 분과에서 중요하게 얘기했던 화두 중의 하나가 시민의회다. 그래서 이번 사회대개혁위원회, 그리고 이후 시민의회 운동이 개헌 국면에서 시민들의 바람이었던 시민 헌정주의를 국정 운영의 원리로서 구현시킬 수 있어야 내년, 내후년이 빛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저도 내년에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선거법, 그리고 시민 헌정주의 원리의 구체적 구현이라고 본다. 프랑스와 영국도 시민의회 실험을 했다. 대한민국은 항상 역동적으로 앞서가는 나라니까 프랑스와 영국에서 한계를 가진 실험이었던 시민의회를 더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더 역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글로벌 기본사회 화두와 함께 이 시민의회 화두에서 전 세계 리더들을 선도했으면 한다.
동시에 한국 사회, 특히 민주당이 잊어버린 단어가 있다. 청년이다. 영국에 웨일스라는 자치 지역이 있다. 퓨처(미래) 커미션이라고 해서 청년들이 주도한다. 여기서 미래의 중요한 과제를 제안하고, 리포트를 내고, 그것에 대해서 의회가 반응하게끔 시도한다. 한때 우리가 민주당에 쓴소리하고 제안할 때 이번 선거에는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라, 그래서 영입에 몸부림도 많이 치지 않았는가. 그런데 요즘에는 아예 청년들이 주도하는 뭘 만드는 걸 잘 못 본다. 그래서 저는 그 점도 민주당과 현 정부한테 강력하게 얘기하고 싶다.
제가 이번에 스탠퍼드에 가서 다시 한번 느꼈던 게 지금 미국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 중 청년들이 많다. 한국에서도 관심 있는 맘다니, 34살이다. 그리고 지금 차기 대선 주자이고, 제가 한국에 소개했던 민주당의 스타 AOC도 지금 36세 정도 된다. 그다음 다니엘 루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민주당 시장인데 스타다. 굉장히 잘하는데 거기도 48세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에서 앞서가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 이번에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의 스타트업들과 대화를 조금 나눴는데, 너무 탁월하다. 어떤 스타트업은 한국판 팔란티어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건 저희들이 감히 꿈꿀 수 없는 거다. 그래서 저는 지금 한국 사회가 크게 달라지려면 민주당이 잃어버렸던 화두인 뛰어난 청년들을 'One of them'이 아니라, 그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데 대통령과 정당과 기업이 힘을 실어주는 그런 분위기를 새해부터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역대 진보 정부에서 청년층한테 가장 인기가 없고 신뢰를 못 주고 있는 게 지금 이재명 정부다. 여론조사 보면 어떤 때는 70대 이상보다도 20대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더 낮다. 혹시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청년 문제, 청년 대책, 이 부분을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있는가?
청년 이슈를 검토는 했는데, 일단 저는 구성에서 약간 아쉬움이 있다. 이한주 위원장님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국정기획위원회에 정말 훌륭한 분들, 현장을 제대로 아는 분들이 많이 참여해서 그건 참 바람직했다. 예를 들어서 기획분과의 박홍근 위원장 같은 경우는 현장을 잘 안다. 청년 운동을 통해서 성장하신 분 아닌가.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기획위원들 중 다양한 분야의 청년과 여성의 비율이 적었다. 향후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30대와 40대를 더 전면에 배치하길 희망한다.
그러니까 지금 K-뷰티, K-민주주의, K-POP, 이런 부분들이 세계적이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K-뷰티도 기존 레거시 기업이 아니라 김병훈 대표 등 젊고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K-POP은 말하지 않아도 알 거다. 그러면 왜 한국의 정부는 안 되는가. 왜 진보 정부도 보수 정부도 한계를 가지는가. 왜냐하면 K-POP의 성공 공식, K-뷰티의 성공 공식을 안 따르기 때문이다. 보다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정치에서도 보고싶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세계의 기업가들, 세계의 정치가들과 좀 더 젊게 이야기할 수 있는 리더들을 많이 키워냈으면 좋겠다. 그게 민주당이 지속가능한 정치질서를 만들어 낼 길이다.
-그래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 어젠다로 199만 원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 기탁금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경쟁이 안 돼서 아예 선거운동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거다. 신선한 제안이다. 이런 걸 민주당이 해야 된다. 그런데 요즘 민주당이 뭔가 침잠해 있다. 그러니까 김병기 원내대표 문제도 바로 처리하지 못하고 이게 또 어디까지 당에 번질지 모른다.
선거에서 민주당 같은 세력이 최근 이기는 방법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생각보다 간단하다. 브랜드가 미래지향적이냐, 그리고 풍요를 지향하느냐, 세 번째 다수 사람들과의 공감이다. 소위 말하는 클린턴의 유명한 표현, 'I Feel Your Pain'. 약한 사람, 배제된 사람, 가난한 사람, 이런 분들과 얼마나 고통을 공감하느냐. 공감, 미래, 풍요, 이 세 가지다. 지난번 미국에서 해리스가 낙선한 건 이 세 가지에서 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미래? 트럼프의 암호화폐 국가를 젊은 남성 유권자들은 더 미래지향적으로 받아들였다. 풍요? 민주당은 왠지 규제만 하고, 스타트업의 역동성을 해치는 정당처럼 인식됐기 때문에 에즈라 클라인이라는 탁월한 저널리스트가 '풍요'라는 책을 써서 미국에서 화제가 됐던 거다. 공감? 많은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더 자신들의 마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민주당이 풍요‧미래‧공감, 이 세 가지에서 어떤 브랜드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지속 가능한 민주당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어젠다를 만들려면 내년서부터는 크게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제3지대, 양당 외에 새로운 제3당이 대한민국에서 가능한가? 그리고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는가.
가장 어려운 이슈다. 욕먹을 얘기이긴 한데, 저는 오래전에 존경하는 노회찬 전 대표께 감히 조언을 드렸던 게 있다. 당시 한국의 지형상 안타깝지만 제3당 실험은 쉽지 않다, 미국 모델로 가자는 거였다. 그러니까 민주당 안에 진보 블록이 있는 모델이다. 미국의 민주당 모델은 한계는 있지만 지금 뉴욕 시장도 탄생시켰고, AOC도 당장은 대통령이 되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도 그 당시 미국 모델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나간 이야기이다.
대표님도 잘 알지만 노회찬 전 대표가 저를 만날 때마다 자랑하던 게 "안 교수, 나는 자유총연맹에도 내 팬이 있어"였다. 그게 유능한 진보의 모습다. 버니처럼 미국의 뛰어난 진보도 그렇다. 그런 유능한 분이 민주당의 진보 블록이 될 수 있었다.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은 그 모델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면 추상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새로운 제3당은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못하는 걸 해야 한다. 6411 버스가 상징하듯이 보이지 않은 사람들을 정치 전면에 드러내는 것은 진보 고유의 임무이다. 현장에서 지금도 이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진보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에 더해 특히 젊은 세대와의 결합이 중요하다. 기술과 삶 등 영역에서 기존 정당이 갖지 못한 미래 감각을 가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어젠다를 치고 나가면서 각 지역에서 틈새와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정원오 구청장이 각광받는 이유는 다들 '젠트리피케이션은 안 된다, 어쩔 수 없다'라고 포기하고, 이런 인식이 거의 신화처럼 한국 사회의 진보 진영을 지배해 왔는데 정원오 구청장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가 노력하면 완화시킬 수 있다'는 어젠다를 제시했고, 그게 성공했다. 또 민주노동당이 제기했던 무상급식. 최소한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밥을 먹여야 하지 않느냐는 진보의 화두가 이제는 더 이상 진보만의 화두가 아니라 메인스트림이 됐다. 그래서 저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제3의 세력들이 대대적으로 지자체 차원의 실험을 하고, 그 성공을 가지고 총선과 대선에서 제대로 한 번 도전해 봤으면 한다.
-양당이 갖지 못한 어젠다를 중심으로 해서 '그 부분은 이 당이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길이 굉장히 험난할 것 같다.
그렇다. 그래서 제가 항상 제3의 정당을 하시는 분들께 하는 얘기가 있다. 제 전공이 미국 정치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제3당이 성공했던 실험을 보면, 주류 정당들보다 훨씬 더 프로페셔널하게 선거운동을 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진보적인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한국 정치의 특징은 성공한 상대에 대한 연구를 잘 안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준석 대표는 규범적으로는 논란의 소지가 크지만, 최소한 선거에서는 이준석 대표만큼 프로페셔널한 선거운동을 한 사람이 최근에 없다. 그러면 연구를 해야 한다. 진보가 이준석 대표를 비판하려면 그것보다 더 나은 규범적 가치와 더 프로페셔널한 어젠다를 결합시켜야 한다. 저는 그 점이 다소 아쉽다.
-지금 양당 모두 강경 우파, 혹은 개딸(개혁의딸들) 같은 세력이 있다. 그런데 이런 팬덤에 의해 당이 좌지우지되는 모습이 전체 국민과 나라를 위한 길과는 엇박자가 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고, 또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데 이 지점에서 어떻게 나가야 할지. 꼭 넘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사실은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과거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쟁이 있었다. 유럽적 지향성을 가진 분들은 유럽식 정당 모델을 주장했고, 미국에서 유학한 분들은 미국식 프라이머리를 주장했다. 저도 한때는 미국식 프라이머리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프라이머리 제도를 수정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내 정치학자들조차 정치양극화를 야기하는 프라이머리에 좌절감이 크다. 그래서 저는 이제 미국이든 한국이든 미국식 프라이머리나 그 변형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라이머리는 결국 양당 내에서 극단적인 세력들이 팬덤을 통해 영향력을 확보하기 가장 좋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헌이라는 이슈가 제기됐을 때 호주식 선호투표제라든가, 혹은 한국 정치학자 다수가 주장하는 보다 내각제적인 방향을 이제는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미국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선호투표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선거 개혁이 쉽지 않은 나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해내는 나라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너무 아쉽다. 21세기에 친청, 친명이라는 표현이 기괴하지 않은가? 가치를 놓고 싸워야 한다. 가치기반 정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선거법과 개헌에 대해 공론을 모아나가야 한다.
-이건 미국식, 어찌 보면 뒤섞여 있다.
그래서 이제는 가치기반 정치를 향한 개혁 어젠다를 전면에 내걸어야 되지 않을까 한다. 저는 팬덤을 가지신 분들의 절실함, 개혁에 대한 열망은 이해한다. 그런데 그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지나친 팬덤 정치로 중도를 잃고 선거에서 졌을 때 어떤 꼴이 되는지를 우리는 윤석열 정부에서 경험해 봤다는 점이다. 제가 그때 선거 때 윤석열에게 진다는 얘기를 경고했던 거 기억나는가. 그때 민주당에서 낙관이 팽배했다. 그런데 결국 윤석열 정부는 엄청난 퇴행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중심을 잘 잡아야한다. 팬덤 현상은 불가피하겠지만 극단적으로 흐리지 않고 중도까지 포괄하는 넓고 단단한 연합을 만들어야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고 선거에서도 실용적으로 승리한다. 그리고 그 이후 어떤 정부가 오던 단기간에 할 수 없는 중장기 구조개혁들이 가능해진다. 향후에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더 용기있게 목소리를 높이길 희망한다.
[폴리뉴스 김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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